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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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거창한 이름이 붙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누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어나갔다. 특히 임산부는 누(Fistula)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 1959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저자는 캐서린 햄린은 3년의 봉사일정을 계획하고 에티오피아로 온다. 정력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친 햄린은 봉사기간을 마친 후에도 그곳을 떠나올 수 없었다. 그의 양 눈에 누환자의 참상이 가득 들어왔다.

 

누란 '임산부가 사산을 하면서 입게 되는 대장과 요도 사이의 상처를 말하는데, 상처는 순식간에 구멍으로 뚫리면서 대소변을 제어할 수 없이 흘러내리게 만들고 결국 산모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여성은 임시 헛간에 버려진 채 죽어가야 했다.

 

책에 소개된 14세 소녀 에나타네시도 같은 경우. 그녀는 진통 후 6일째 되는 날 사산했다. 누에 걸린 그녀는 구멍을 통해 흘러내리는 대소변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를 본 남편은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헛간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냥질을 하며 차비를 모은 그녀는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수술을 받았다.

 

자료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임신과 출산 과정 중에 죽는 여성이 매년 53만 명이다. 조혼풍습으로 10대 초중반 임신이 잦고 대부분 난산에 의료장비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는 이미 선진국에선 자취를 감춘 질병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햄린에게 이 사실은 고통과 같았을 것이다.

 

결국 햄린은 3년 봉사 계획을 접고 영구히 그곳에 눌러 앉는다. 그리고 그녀가 에티오피아를 껴안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누로 고통받는 3만 2천명의 여성이 질병에서 벗어났다. 수치로 보면 많지 않은 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를 앓는 여성들이 평생을 가족과 떨어져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수치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그녀가 끊어냈다는 점에서 그녀의 활동은 기아와 질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에 생명의 소중함과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운 '작지만 힘있는 행보'로 기록될 것이다. 


기부를 호소한 그녀에게 록펠러재단은 "우리는 우간다 북쪽으로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연을 하면 관중들은 열광을 하고 기부를 약속했지만 밤새 모두 그 사실을 잊었다. 더군다나 서구사회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세를 보이는 아프리카에 불임시술이 적합하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의료활동은 그와 같은 악조건에서 이룩한 것이었다.

 

익히 알려진 구호단체나 사회단체조차 주판알을 퉁기며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나서길 꺼려하는 행태는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한다. 학교를 세우는 일과 병원을 설립하는 일은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교육의 중요성에 이의를 달지 않는 사람도 병원이라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이 인구증가에 곱지 않는 시선을 받는 지역일수록 불임을 통한 인구억제라는 반인권적인 처방을 강요하기 쉽다는 점에서 햄린의 누치료 전문병원 같이 산부인과 병원을 설립하는 데 행·재정적 지원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은 누라는 치명적인 질병에서 놓여나 기쁨의 눈물을 보이는 에티오피아 여성에게서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보람을 찾은 한 의사의 평생에 걸친 진료 기록이자 인류애로 똘똘 뭉친 부부의 인도적인 사랑을 정밀하게 그린 르포다. 우린 필연코 이 책을 통해 부끄러운 자화상을 바라보게 된다.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란 이름을 알리는 데 있지 않으며, 무한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있지 않다는 무언의 충고 앞에 그녀를 따라 다니는 '살아있는 마더 테레사' 라는 호칭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캐서린 햄린은 지금도 외진 곳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보듬고 애틋한 마음으로 돌보는 수많은 봉사자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이 다시금 그들의 존재를 돌아보는 데 크게 쓰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누질환의 정의 출처 : 예스24의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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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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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향유하는 사람의 소유입니다. 자연을 소유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마는 자연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자연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좋다한들 그것을 제것으로 누리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평소엔 그 고마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불현듯 곁에 있음이 사무치게 고마운 경험은 애인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오래 전, 전 산악자전거를 타며 계절이 오고 가는 걸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달력이 넘어가야 1년이 가는 줄 알았던 루틴한 직장 생활에 활력을 넣어줬던 게 자전거 타기였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로도 좋았지만 들과 산을 달리며 꽃과 나무들을 실컷 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특히 봄철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걸 경이감으로 눈에 담았고 나뭇잎이 연초록에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에 경탄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전 윤행(輪行)을 통해 맘껏 누렸습니다.

 

어릴 적 흔히 봐온 꽃과 나무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 건 도시의 삶이 그만큼 퍽퍽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야 과거보다 월등히 나아졌지만 마음과 몸을 제대로 누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 다음에야 나아졌다고 단정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자연은 누리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나갔습니다. 계절이 오고가는 걸 해마다 보았니 하고 제게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하는군요. 반타작을 겨우 면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마음껏 자연을 가르던 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최병성의 생명편지'라는 부제를 단 〈알면 사랑한다〉는 저자가 서강의 아름다움으로 소중한 생명을 찾아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글과 카메라에 담은 수많은 글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는 숲을 거닐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작가의 말' 제일 앞에 쓰인 이 글이 저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의 행복이 오롯이 전해져오는 통에 한동안 이 문장에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말을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 앎이란 대부분 지식적인 것이지요. 과연 내가 그 말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지 묻는다면 몇 사람이 '예'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사랑스런 아내와 자녀들이 당신 곁에 있다면 행복하십시오. 부모님께서 든든한 버팀목으로 당신 곁에 서 계시다면 행복하십시오. 언제든 내 편인 친구의 얼굴이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행복하십시오. 행복하다는 인상은 심상에서 불러내지는 것입니다. 없던 것이 새로 생겨서 행복하다기보다 늘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잘 보지 못한 걸 본 데서 오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저자는 감사의 마음을 숲에서 찾았습니다. 어디서곤 상관없겠지요. 새롭게 보이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게 있을까요? 저자가 숲을 찾은 이유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문뜩 마주친 새싹에서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신비감에 넋을 놓은 저자가 세상의 시끌벅적함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야단이냐는 질책을 받고 크게 깨달았을 것도 같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였지 않았을까요? "쇠딱따구리, 노랑턱멧새, 달맞이꽃, 들국화 .......  숲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다름'과 '더불어'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인간의 제자리를 배웠다"고 그는 썼습니다.

 

1999년,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 건설이 불거지자 이를 막기 위해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던 그가 서강의 아름다움에 눈 뜬 건 '다툼 없이' 살아가는 서강을 속속들이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글은 머리 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숲속 친구들이 놀랄세라 사뿐사뿐 걷고, 행여 그들이 곤한 잠에서 깨랴 카메라 앵글을 조심스럽게 돌린 정겨운 마음의 산물입니다. 잔잔한 물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꽃잎처럼 물살에 순응하며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필력의 힘은 그런 데서 온 것입니다. 손수 찍은 사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글편에 놀다 오는 일은 당신이 잠시 잊은 행복을 기억케 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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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멘토링 - 오프라 윈프리의 상담 코치 필립 맥그로의 특별한 인생 상담
필립 C. 맥그로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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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도 간이역에서만큼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춘다. 길어야 20여분 정도의 짧은 정차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탑승객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우동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삼삼오오 모여 기타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일삼던 청년들은 부푼 방광을 덜어내려 화장실을 분주히 오고간다.

 

그 시각 기관사는 계기판을 재차 점검하고 각종 기계장치의 작동상황을 체크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을지도. 잠시 간이역 철로변에 내려 뻣뻣해진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던 승객들의 입에서 싱그런 계절, 5월을 마주하는 탄성이 터질 때쯤이면 아쉬운 정차시간은 아쉬운 대로 접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적은 양의 쉼일지라도 그 쉼을 통해 긴장을 이완하고 조금 다른 생각에 여유롭게 빠질 수 있는 시간. 살다보면 실제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간이역은 쉼의 자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달려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내려놓음의 자리. 그 자리는 간이역에서 승객들과 기관사가 한 행동과 같이 몸을 누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재충전의 자리이기도 하다.

오프라 윈프리 소송사건을 승리로 이끌어 유명세를 탄 저자 필립 맥그로는 미국 최고 인기 토크쇼인 '닥터 필'의 진행자로 활동하며 「인생 멘토링」을 비롯해 「똑똑하게 사랑하라」, 「인생의 전략」 등을 낸 대표적인 인생 전략가다.

 

저자는 이 책, 「인생 멘토링」에서 자주 자기와 남을 혼동하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는 현대인들의 현 상태를 적절히 지적해내기 위해 자기주도적인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풀어내는 데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서서히 간이역에 도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이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감속이 필수적이듯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이생을 계획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 위한 일종의 철학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장치를 통해 내 인생이 과연 제대로 기획된 인생인지, 또는 절망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동인을 갖게 될 수 있다.

 

인생에서 실패하게 되는 주요인 중의 하나는 프레임 설정의 잘못에 있다. '타인에게 비친 나'의 프레임으로 자신을 보고 그렇게 투영된 모습대로 살아간다.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 자신은 온데 간데 없고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타인의 얼굴을 한 자기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어버린 뒤다. 손쓸 새도 없이 막 뒤로 쓸쓸히 사라질 준비를 해야 하는 때. 그 때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저자가 말하는 '자기주도적 삶'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 자리에 자신을 복원해 놓는 일이다. 그 일은 또한 자기결정권을 회복하는 길이며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방책이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인생이 자기주도적 삶으로 화려하게 꽃필 인생임을 자각하는 순간 인생 제2막이 서서히 열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간이역에 도착했다면 이제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볼 시간이다. 이곳엔 '지난 시절, 삶을 변화시킨 결정적 사건들'과 '인생을 바꾼 일곱 가지 선택', '내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주제어로 등장한다. 인생은 '관계'와 '선택'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환경 또는 타인과 수없이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그 가운데서 특정 환경과 타인을 선택한다. 때론 그 선택이 인생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결정적이기도 하고 때론 치기 어린 행동에 불을 지피는 한낮의 화약고와 같기도 하다.

 

간이역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데 유용한 시간을 제공한다. 바야흐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결단한 사람이라면 지난날 과오는 털어 버리는 의지적인 노력을 앞서 해야 한다. 일종의 자기와의 솔직한 대면 행위와 같은 이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선택을 적게 한다는 의미와 일견 통하는 면이 있다. 많지 않은 선택이 '신중하다' 또는 '집약적이다'라는 형용사와 잘 맞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부분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중년 남성 이상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그 카피가 의식을 바꿔놓는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자기암시가 필수적이다. 한동안 긍정의 힘을 강조한 책들이 봇물 쏟아지듯 출간되기도 했다. 그 책들이 실천이라는 부분을 균형있게 다루지 못한 점에서 비판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표현에 대한 통찰력은 곱씹을 구석이 적지 않다. 저자 또한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성찰에 충실했다면 이제 당신에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실천 메뉴얼'이 주어질 것이다. 저자는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실천 매뉴얼'을 다섯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1단계, 인생 사슬의 첫 고리를 찾는다. 2단계, 그 사건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본다. 3단계, 자신의 내적인 반응의 진정성을 평가한다. 4단계, 참되고 정확한 대안을 생각한다. 5단계, 최소 효과 반응(투입요소는 적지만 효과는 만점인 행동)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인생이 특정 단계별로 진행된다면 단계별 맞춤식 진단과 처방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인생이란 없다는 점에서 저자의 5단계 실천 매뉴얼이 지닌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생이라는 계획을 재구획하고 재조정하는 데 채용할만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는다는 점은 현대사회가 결과한 또 다른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회 구성원이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한 이치는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생 실패자와 낙오자가 많은 사회란 절망적인 사회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조금 더 일찍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아갈 여지를 보다 일찍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자의 통찰이 구체적인 실천의 문제에 근접하지 못한 이론적 측면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성찰과 긍정적인 미래상을 기획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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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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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법관이 각종 매스컴을 들끓게 하고 있다. 촛불집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며칠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 처분을 받는 등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그의 거취문제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법관의 경고 처분에 맞춰 그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진사퇴 의사가 없는 사과문에 반발한 판사들이 판사회의의 소집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의 추이는 앞으로 주시해야겠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사법권의 독립'에 있다. 신 대법관은 애초 대법관의 신분을 넘어 부당하게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행동을 보여왔다. 이는 사법관의 내부 독립을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비춰졌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태에서 판사들의 분노는 예상보다 컸다.

 

정치검사와 정치판사에 대한 혐오감이 큰 우리 현실에서 볼 때 이번 사태가 신 대법관의 자리보전으로 끝날 경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혼란스럽다. 청와대가 그의 퇴진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보도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거취 문제가 예상외의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부의 일대개혁과 일반 법관의 좌절 양극단에서 사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때마침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이 나왔다. 이미 〈헌법의 풍경〉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비판을 두루 보인 저자는 이 책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 독특한 점은 그가 이 책에서 양적 연구에 기초한 일반적 방법론과 달리 질적 연구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검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가 불신 받는 이유 전반에 대해서 주변 인물과 관련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동일 맥락에서 2008년 2월 서른 명을 목표로 면담을 시작했다. 법조계와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녹취록을 담은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법조계의 대표선수라 할만한' 판사를 대상으로 녹취한 일은 이례적이다. 이런 작업에 필수요소는 객관성 확보에 있다. 저자는 이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사건 당사자와 자신을 사법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배제했다. 이는 법조계 내부와 외부의 시선을 동일 수준에서 포착함으로써 법조계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이와 같이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적 감정의 발로로 그치지 않으려면, 곧 단순한 배설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장치 마련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장치로 그가 택한 방식이 앞서 언급한 '사건 당사자와 사법 피해자'의 배제에 있었다.

 

그렇다고 당초 우려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녹취대상자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다고 봤지만 실제 면담을 하다보면 과거에 사건과 얽힌 적이 있던 사람들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할말도 많았던 사람들의 진술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 진술을 가감 없이 책에 실은 것은 사법부에 대한 직접적인 의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균형은 보다 신중한 피면담자 선택과 녹취로 메울 수 있었다.

 

저자가 들려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피면담자가 진술한 사법부와 그 주변의 이야기는 속을 뒤집어 놓는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법부 내부의 볼멘소리와 달리 사법부는 비리를 생산하고 또 잠시 비리를 벗었다해도 언제든 비리를 저지를 여지와 개연성이 충분할 정도로 검찰과 판검사가 선후배로 얽히고 설킨 '관계 중심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점을 종종 사법부 비리가 터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보았다.

 

사법고시 출신자가 고작 15,000명에도 못 미치는 '그들만의 리그'(사법 영역)에서 설혹 내부 관행이 문제가 되더라도 그것을 단번에 끊어낼 용기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잘못하다간 그야말로 찍혀서 진급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빡빡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조직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시스템의 문제였던 것. 개인이 청렴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절은' 사법부를 개혁하는 일에 이 책이 기여할 바탕이 바로 그 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겨누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상처라고 등한히 하면 크게 덧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더욱 깊어지면 그땐 치료시기마저 놓칠 수 있다. 전작 〈헌법의 풍경〉을 통해 신고식을 다소 호되게 치른 저자가 사법부의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 성역이 존재하는 한 그 성역은 부패의 연결고리가 되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 이치다.

 

이 책이 사법부에 관한 진실의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이 책이 단초가 되어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길에 놓인 암초들을 하나둘씩 치워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한 때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물질적 측면에서보다 정신적 측면에서 더욱 요망스러워야 가능할 일이다. 사회의 구조가 전반적으로 선진국화하고 국민의 의식수준에 더불어 고양될 때 바람직한 의미의 선진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믿고 있다.

 

이 책은 사법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만 그것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봄이 적절하다.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성역처럼 자리잡은 곳이 이와 같은 책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식이 확장되고 그 의식이 이 책을 통해 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 저자는 "2008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1만 173명, 판사는 2352명, 검사는 1676명 입니다. 모두 합치면 1만 4201명입니다" 라고 썼다. 그만큼 법조계가 좁은 바닥이라 구술자가 어떤 진술을 할 경우 상당수는 금방 "누구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잘한 일이건 못한 일이건 금새 소문 나는 '동네'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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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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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이 ‘잘 안다’는 말과 통하지 않는 경우를 우리가 일본에 갖는 인상처럼 제대로 짚어주는 예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자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십수년 전에 ‘일본을 알자’는 논의가 활발히 일었다. 그간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던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뒤로하고 배울 것은 배우자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탕이 됐다.

 

그 때부터 일본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었던 듯하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정도의 정보전달 위주의 책이 양산되었지만 일부 문화적 측면의 분석서도 있어 당시 출판시장에 다양한 시각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던 일반 독자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본격서가 출현했다고 보기란 일렀다. 대부분 찬양일색 또는 무조건적인 비판 등 양극단과 극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특정 지점에 그 책들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없다〉의 출간으로 그런 흐름이 전기를 맞았다. 그 책을 통해 비로소 일본과 일본사회에 대한 이성적인 시각과 성찰적인 비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일본 탐구의 붐이 일었다.  등등의 책은 그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은 없다’ 가 모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책 또한 지나치게 비분강개한 면이 있었고 책 제목에서 보듯이 고작 몇 년에 걸친 관찰을 근거로 ‘일본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규정할 만큼 관찰과 분석, 비판, 수용이라는 프로세스에 기반한 본격서로서의 특질을 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십수년이 지난 요즘이라고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배용준이 결정적으로 촉발한 한류의 물결을 따라 최근 개그우먼이 방송시장에 진출하는 등 심심치 않게 화제를 몰고 오고는 있지만 그런 사실이 과거와 달리 우리가 일본을 많이 알고 있음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별개로 여전히 정치·경제·문화계 각각에 일본에 정통한 인물을 손에 꼽기가 수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는 한 특정 국가에 대한 시각은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관성을 어느 정도 배제하기 위해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한다든지 제3자의 판단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3자의 시각이라고 해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편견을 온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경우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최근 몇 년 새 그런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또한 문제는 있다. 자국 내에서 자국을 제대로 비판하는 당사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이 점에서만 보면 이 책의 저자가 환영받을 이유로 충분하다.

 

저자 기타노 다케시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력으로 중퇴했고 신랄한 독설로 인기를 모은 ‘투 비트’를 경성해 개그맨으로 명성을 쌓았으며, 영화배우로도 데뷔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 ‘하나비’가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투 비트‘에서 보인 신랄한 독설은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장소를 옮겨 현재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낸 책이 〈위험한 일본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현 정치·가정·사회의 문제를 직설적 화법과 각인도가 높은 단문을 사용해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때때로 허무맹랑한 주장에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그가 개그맨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이 비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서의 반어법으로 읽히기에 큰 무리가 없다.

 

그의 비판은 일반적인 비판론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는 사실에 기초한 비판과 주관적인 판단을 뒤섞어 얼마간 독자의 얼을 빼놓는다. 그런 탓에 ‘경청할만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뭐지?’ 하는 의문부호를 날리게 하는 그의 화법과 언술에 익숙해지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가 당초 제기하려했던 '언제나 불행은 우리 눈앞에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행복은 늘 아주 먼 과거에만 있는' 일본의 현주소를 피해가려는 의도는 아니니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 개그맨의 자질이 그런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자국민이 자국을 비판하는 데 전통적·정서적 한계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지점에 균열을 일으키는 기제가 '주관의 객관화'법이다. 낯설게 하기, 비틀기, 거리 두기와 유사하다. 그는 그런 장치를 통해 독자가 보다 효과적으로 일본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때론 개그다운 비판에 웃기도 하고 분석적 시각에 감탄하는 동안 일본의 현실과 그 현실을 대하는 일본인의 관점에 관한 정치한 시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학술적인 비판서는 많았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여행지의 골목길을 걷듯이 내밀한 곳을 관찰하는 묘미를 주는 책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의 미덕이 그런 것이다. 반면 이 책에 대해 희화적이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종종 보이는 어이없는 주장과 지나치게 주관적인 판단이 그런 비판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의도한 '일본 벌거벗기기'의 본질적 측면을 송두리째 거부할 만큼 그 결점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책은 대부분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할애되고 있다. 일본의 총리조차 그의 필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밀입국한 김정남을 고스란히 돌려보낸 후 "적절한 조치였다"고 한 고이즈미를 정신나간 총리라고 일갈했다. 반면 우린 풀려나기는 했지만 쓴 글이 문제가 되어 미네르바가 구속된 바 있다. 글을 쓰는 데도 건드리지 말아야할 성역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런 이유로 자기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거침없는 행보가 새삼 부럽다.

 

그의 글에 담긴 함의는 반대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유효한 프레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안개 속을 거니는 우리 정치는 대내외적 측면에서 이렇다할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가정은 저자가 그린 일본의 파괴적인 양상과 같이 관계의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사회는 각종 병리현상을 부산물처럼 쏟아놓고 있다. 과연 탈출구는 없는 걸까? 저자의 다소 과격하고 어이없는 주장에 깔린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회문제를 추적하는 날카로운 지성, 정치·사회적 권위의 회복에 대한 열망이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가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과거 어느 한 때의 행복했던 지점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더욱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하게 되는 것일 게다. 과거라고 다 좋았던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좋게 기억하는 때의 기분과 분위기를 불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오늘 닥친 고통을 이겨내기도 하고 내일을 새롭게 준비할 수도 있다. 과거는 '지나갈 내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암울한 현실에 대한 고발에 앞서 과거와 현재에 가교를 놓으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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