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강남을 사회프리즘에 갖다 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책,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는 대담하게도 강남을 우리 사회의 현상과 결과를 진단하는 창으로 설정하고, 현재 그 강남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격정적으로 그려낸다.

그에 따르면 더 이상 강남은 지역으로 남지 않는다. 강남은 이미 잘사는 동네를 지칭하는 브랜드이자 부요를 희망하는 자들의 이상향이다. 강남을 향해 침을 뱉고 백안시하는 한 그 강남이 표상하는 가치나 부산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강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것. 그것이 저자의 주문이다. 바른 현실 인식이란 바탕이 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직시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생기는 덕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자가 강남이라는 다소 제한적인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그토록 힘있게 끌고 갈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알게 된다.

저자는 강남이 겨누는 칼끝을 애써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는 좌절감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정신의 심장을 누르든 개의치 않기로 작정한 듯 하다. 눈을 돌린다고 강남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일관된 의식이 토대가 되어 이런 주제도 책이 될 수 있다는 낯선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1장부터 제6장에 걸쳐 통시적인 관점에서 강남의 변천사를 한눈에 조망하고 있다.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곳곳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양념처럼 끼여 있어 읽는 데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동시대 장면을 영화처럼 보고 있는데 따르는 폭넓은 감정이입과, 저자의 내공 깊은 필력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것 같다.

1932년 서울에 최초의 아파트가 등장한 이래 2002년 10월에 완공된 타워팰리스에 이르기까지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의 아파트는 코리아 드림의 환상과 환락을 대표하면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강남은 사대문 밖에 위치한 변두리였다. 도농이 혼재하면서 묘한 심상을 불러일으키곤 하던 그 강남이 개발정책의 중심에 서면서 한국인들의 부의 욕망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 2000년대 급기야 그 욕망은 상류층의 구별짓기로 특징지워졌다. 물론 그 정점이 타워팰리스다. 이 강남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극찬과 극렬 반대의 이분법으로는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냉정하고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미 1인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창시하고 실명비판의 장르를 개척한 그다. 더욱이 야전 경험을 두루 섭렵한 터라 글의 토대를 깔고 집을 세우는 데 거침이 없다. 어느 땐 그가 마치 광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글을 도구로 독자와 만나는 것만 다를 뿐 상대를 울고 웃게 만드는 면에 있어선(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 있어서) 여느 광대 못지 않다. 무엇이든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했다는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의 손처럼 그가 글을 벼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의 말대로, 강남은 한국의 얼굴이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완료형 어미로 종결된 강남. 강남 진입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나 강남에 비판적인 이들 모두에게 강남은 제대로 알고 덤벼야 할 ‘뚜렷한 섬’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하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현대인이라는 용어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시간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하루 24시간 이상을 가진 사람이 없을 만큼, 공평한 것으로 치자면 그것만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24시간을 365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의 경우엔 마치 1시간만도 못하게 쓰는 사람이 있긴 하겠습니다. 학생시절 도서관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네가 허비한 하루는 오늘 죽은 누군가가 그렇게 고대했던 내일이다.” 숙연해졌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 하는 반성이 크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더군요. 습관의 관성이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자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았다고 하는군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보유한 자산에 대해 자신이 35년의 시간을 빚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불쑥 찾아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쓰고 싶을 때면 언제든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랬습니다.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비친 시간의 빚은 그에게 절망적인 수치였던 것입니다. 발벗고 나섭니다.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특허를 내고 판매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웠고 판로마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시간이라니요? 얼마나 근사한 사업 아이템입니까? 그는 생각대로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시간을 팔 수 있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의 5분 짜리 휴대용기를 구입했을까요? 여기에 현대인의 불안심리가 있습니다. 활같이 날아가는 시간을 붙들어 맬 수 있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건 어떨까요? 이 남자처럼 누군가가 시간을 팔아준다면 시간을 조금씩 사모아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예가 되고 있듯이 실제 살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살 수 없는 것, 그것이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고 인간성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사랑, 정 같은 것 말이죠. 그것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지탱해 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 돈은 사라지고 말 것이나 그런 가치야 어디 값없이 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습니까? 표면적으로 잠시 지위를 내주고 있을 뿐 그것들이 이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힘임에 틀림없습니다.

시간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내면을 파고드는 이 소설은 심층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시간이 표상하고 있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의 가치에 눈을 뜨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입니까? 가치가 전도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라고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래적 가치가 상실된 곳에는 이기심만 남습니다. 세계 인류가 공유하여야 할 연대와 돌봄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10억 명의 인구와 의약품을 구할 수 없어 죽어 가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 상황입니다.

이제 돌이켜야 합니다. 본래의 가치를 찾아 이제 바삐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5분 짜리 휴대용기를 사러 나선 사람들처럼, 비록 그 5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술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단순한 소설 이상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때때로 비현실적인 것과 상황이 현실에 눈을 뜨도록 만듭니다. 우화가 그 속에 내장된 비인간적 요소를 고발하듯 이 소설은 시간을 판다는 허무맹랑한 현실의 설정을 통해 인간적 가치를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판 남자가 창업 홍보 문구로 삼았던 “T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여기서 T는 시간(Time)과 가치(Value)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가치와 그것을 회복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강 콘서트
데이비드 나이븐 지음, 임성묵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건강콘서트』는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건강에 관한 몰상식과 반드시 알아야 할 건강상식을 100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있다.

각각의 내용이 두 쪽 반을 넘기지 않아 우선 읽기에 편하다.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만한 사람들의 실패담과 성공담이 간간이 소금역할을 하고 있어 책의 내용에 감칠맛을 더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아울러 각 장의 끝에 구체적인 데이터를 실어놓아 앞서 설명한 내용에 관해 이해를 돕고 있다.

짧게 소개하다보니 세세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층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건강에 관한 한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올곧은 기조를 흔드는 것은 아니니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마구잡이식으로 제공함으로써 독자가 잘못된 상식을 구축하도록 만들고 더 나아가 그것을 무슨 비결인양 맹신하도록 이끄는 건강 서적이 자주 출현하는 때에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면밀한 연구의 결과물’을 잘 정리된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한번 잃은 건강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면 건강 서적에 관한 한 여타 책과 다른 잣대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정보는 독소다. 생활 태도와 습관, 행동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건강한 식생활과 적당한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뚜렷한 원칙이 시종 관철되고 있는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돋보인다.

건강은 규칙적인 운동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얻어질 수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칙적인 운동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루 이틀 미루다 제자리를 반복하는 것에 신물이 난 현대인들에게 72세에 시작한 규칙적인 운동으로 비만과 관절염, 신경통에서 해방된 리 할아버지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건강에 딱 들어맞는 말도 없다. 건강한 삶이 주는 달콤한 미래,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건강한 삶에 첫발 디딘 사람들과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책 속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는 것은 과거 그들의 실패가 오늘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확인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건강한 삶이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공감 때문이리라 믿는다.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마시라. 이 책은 건강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운동 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각성제다. 몇 장만 읽어도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깨닫고 집밖으로 나서게 추동하는 각성제다. 모쪼록 각성제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흥, 성령의 축제
라인하르트 본케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오랄 로버츠의 책, -『내 안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선택한 전후로 시작된 성령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초자연적 삶을 살라』(신디 제이콥스)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중단 없이 계속되는 실제 역사임을 새롭게 알고, 내친 김에 『부흥, 성령의 축제』마저 읽어 내려갔다.

『부흥, 성령의 축제』는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성령 치유의 역사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가슴은 감격으로 쿵쾅거렸다. 그것은 내 안에 자리잡았던 모종의 두려움, 곧 악한 영에게 미혹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통념이 은사를 사모하는 것마저 백안시하는 그릇된 형태로 나타난 현실의 높은 장벽을 서서히 깨뜨려 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 안개가 일순 걷히듯 그것 또한 머지않아 빛 앞에 제 모습을 완전히 감추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임을 알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탄의 집요한 고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두려움을 주는 악한 영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되어 내게서 떠날 지어다.”

『부흥, 성령의 축제』엔 성령의 역사가 놀랍게 기록돼 있다. 총 12가지 사례 모두 가까이서 목격한 듯 생생하다. 첫 번째 사례는 ‘희망으로 일어선 앉은뱅이 여인’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활달하고 재기 발랄한 여인에게 닥친 척추손상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척추수술을 앞둔 어느 날, 그 여인은 두가지 꿈을 꾸게 되었다. 수술 후 죽는 꿈과 안수기도를 받고 치유되는 꿈이었다. 어찌나 생생했던지 두 번째 꿈은 안수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행동이 기억될 정도였다.

2주 후 집회가 열렸다. 대관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전도자의 눈에 이 여인이 들어왔다. 전도자는 집회가 있는 날 아침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특별한 임재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감지했고, 이어 집회 당일 하나님이 치유하고자 하시는 대상이 바로 이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미골 골절에 척추손상, 여러 차례의 수술로 디스크마저 녹아 내려 이 여인에겐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도 없는 상태였다. 안수기도를 받고 쓰러져 들것에 누워있는 동안 골반 뼈가 맞춰지고 짧은 한쪽 다리가 자라는 것이 목격되었다. 마침내 일어선 여인은 실내를 한바퀴 빙 돌아 단상 위에 올랐다. 이 기적은 1988년에 일어났다.

“저자는 1975년부터 전도자로 사역하는 동안 1억 명의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했고, 특히 지난 3년 반 동안 3,400만 명이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성령의 역사가 마가의 다락방에 한정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저자는 ‘당신도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도전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통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들을 통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으로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그때, 순전한 아이처럼 성령을 구하는 그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동일하게 임할 것이다. 비록 저자와 같이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내 주변에 흩어진 잃어버린 영혼 몇몇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작은 결실조차 성령이 아니고선 될 일이 아니다.

나만을 위한 초라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래서 상한 심령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을 구하자. “주여,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세기 문화 지형도 - 동시대 문화의 이해를 위한 코디 최의 대중을 위한 문화 강의 1
코디 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대했던 바로 그 책과 맞닥뜨렸을 때의 심경이 어땠을까요? 20자나 되는 제목이 가져다 준 피로감(?)과 고전적으로 보이는 표지가 쏟아내는 생경함(!)을 단박에 물리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바로 이 책이야’ 라는 감탄사를 동반케 한 뜻밖의 조우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여기에 10년 만에 만난 친구의 경우를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이 책, 『동시대 문화의 이해를 위한 20세기 문화 지형도』는 문화에 관한 한 생각해보았음직한 본류와 지류가 여기서 갈라졌다 싶으면 저기서 만나고 저기서 흩어졌다 싶으면 여기서 다시 모이는 지적탐험의 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십 수년 전 서울 근교의 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좁다란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풀과 나뭇가지에 어린 갖가지 이야기들을 주워 담는 맛도 일품이었지만 8부 능선의 평원에 펼쳐진 억새풀 군락을 부지불식간에 마주하고 머릿속까지 탁 트이는 듯한 탄산수 맛을 연상했던 일은 지금도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프리즘이 뿜어내는 현란한 스펙트럼에 지적 호기심이 무한 침몰해 가는 즐거운 비명을 이 책은 가없이 선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책엔 모던한 사회의 모던한 문화사와 그런 문화사의 근간으로서의 이즘, 그리고 그 이즘을 창설하고 계승한 예술가들의 이름과 행적들이 촘촘히 기록돼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담아내려다 이것저것도 아닌 섞어찌개 모양새가 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 책이라고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을 담고 있는 이 책이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틀에 짜 맞추듯 기계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모더니즘과 그 이후’에 관한 모든 내용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부’ 담아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현학에 빠지지 않은 이유가 되겠지요. 한 두가지 정도의 굵직굵직한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려는 강박에 문장과 문장을 해체하고 조합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선생의 태도를 보이지도 않습니다. 시시콜콜 가르치려 드는 데서 오는 거부감을 불식시킨 이유입니다.  

머리 속에 이리저리 흩어진 문화와 관련한 각종 지식들을 큰 틀에서 한꺼번에 조망하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