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시간에 쫓기며 사는 사람'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하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현대인이라는 용어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시간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하루 24시간 이상을 가진 사람이 없을 만큼, 공평한 것으로 치자면 그것만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24시간을 365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의 경우엔 마치 1시간만도 못하게 쓰는 사람이 있긴 하겠습니다. 학생시절 도서관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네가 허비한 하루는 오늘 죽은 누군가가 그렇게 고대했던 내일이다.” 숙연해졌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 하는 반성이 크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더군요. 습관의 관성이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자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았다고 하는군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보유한 자산에 대해 자신이 35년의 시간을 빚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불쑥 찾아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쓰고 싶을 때면 언제든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랬습니다.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비친 시간의 빚은 그에게 절망적인 수치였던 것입니다. 발벗고 나섭니다.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특허를 내고 판매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웠고 판로마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시간이라니요? 얼마나 근사한 사업 아이템입니까? 그는 생각대로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시간을 팔 수 있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의 5분 짜리 휴대용기를 구입했을까요? 여기에 현대인의 불안심리가 있습니다. 활같이 날아가는 시간을 붙들어 맬 수 있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건 어떨까요? 이 남자처럼 누군가가 시간을 팔아준다면 시간을 조금씩 사모아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예가 되고 있듯이 실제 살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살 수 없는 것, 그것이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고 인간성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사랑, 정 같은 것 말이죠. 그것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지탱해 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 돈은 사라지고 말 것이나 그런 가치야 어디 값없이 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습니까? 표면적으로 잠시 지위를 내주고 있을 뿐 그것들이 이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힘임에 틀림없습니다.

시간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내면을 파고드는 이 소설은 심층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시간이 표상하고 있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의 가치에 눈을 뜨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입니까? 가치가 전도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라고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래적 가치가 상실된 곳에는 이기심만 남습니다. 세계 인류가 공유하여야 할 연대와 돌봄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10억 명의 인구와 의약품을 구할 수 없어 죽어 가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 상황입니다.

이제 돌이켜야 합니다. 본래의 가치를 찾아 이제 바삐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5분 짜리 휴대용기를 사러 나선 사람들처럼, 비록 그 5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술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단순한 소설 이상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때때로 비현실적인 것과 상황이 현실에 눈을 뜨도록 만듭니다. 우화가 그 속에 내장된 비인간적 요소를 고발하듯 이 소설은 시간을 판다는 허무맹랑한 현실의 설정을 통해 인간적 가치를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판 남자가 창업 홍보 문구로 삼았던 “T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여기서 T는 시간(Time)과 가치(Value)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가치와 그것을 회복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