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거리두기, 방콕하기, 냉장고 파먹기, 라디오 듣기, 수세미 뜨기, 붕어빵 만들기, 콜라비 깎아 먹기, 말린 비트와 여러가지 넣고 물 끓이기, 콩나물 봄동 부침개, 쇼핑... 좋아하는 원피스는 설겆이할 때 입어야 하나, 점점 불어나는 듯한 외모, 거울 속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하게 되는, 간간히 오던 전화도 없고, 마스크사려고 줄 서는 것이 싫어 천마스크와 거즈를 잔뜩사서 가끔씩 동네 한바퀴 돌 때 사용한다. 실컷 잠자고 실컷 먹는 중인데, 총량의 법칙에 따라 이때껏 건너 띈 식사를 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의 이 생활이 나이 들면서 지속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간히 여행을 떠나고 연중 행사로 만나는 서너명의 친구들이 전부이니, 책 읽기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 같다. 소설 읽기에서 우리는  '소박한 독자' 이거나 '성찰적인 독자' 일 수 있다. 소설 쓰기 또한 소박하거나 성찰적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동시에 둘 다일 수 있다. 소설 읽기는 소설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환원하여 세부사항에서 점차 중심부를 찾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인위적인 면을 성찰적으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에 의해 묘사된 풍경들을 우리와 동일시하여 다른 세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설을 통하여 세상을 만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소설의 내용이 실재일까 허구일까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을 때는 다른 의미로 -성찰적으로- 남게 된다. 그림은 보여지는 소박한 면에 치우친다면, 소설은 상상하면서 소설 속에 들어가 성찰적인 면을 훨씬 더 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림이 우리집에 걸려 있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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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12쪽)

소설 읽기의 진정한 희열은 세계를 외부가 아니라, 안에서, 그 세계에 속한 등장인물의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그 어떤 문학 형식도 제공하지 못하는 속도로, 전체 풍경과 찰나의 순간을, 일반적인 생각과 특별한 사건 사이를 오갑니다. (18쪽)

우리는 소설이 사실만큼이나 상상에도 의거한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 아니라, 소설이 독자들에게 이런 착각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이것을 위해. 실재와 상상을 혼동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 순간 우리가 느낀 것은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성찰적이 되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읽기는, 마치 소설 쓰기처럼, 이러한 두 가지 정신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입니다. (중략)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관찰로부터 출발하여, 처음에 약속했던 감춰진 진실로, 중심부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48-49쪽)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풍경을 소설 주인공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소설 주인공이 풍부한 풍경의 일부라는 것을 압니다. 이후 주인공은 그가 속해 있었던 풍경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잊지 못할 기호, 일종의 상징으로 변합니다. (중략) 주인공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전체 풍경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개는 내가 ‘풍경‘이라고 불렀던 소설의 윤곽이나 대략적인 줄거리가 우리 뇌리에 남지만, 우리는 주인공을 기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의 이름은 우리 상상 속에서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풍경의 이름이 됩니다. (74쪽)

우리 자신의 감정과 우리 삶의 작고 세부적인 것을 통해 전체 풍경에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유가 생깁니다. (중략) 나에게 소설 쓰기는, 풍경 속에서(세계에서) 소설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 감정, 생각 등을 포착해 내는 것입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어떤 소설 속에 있다면 사물, 가구, 방, 거리, 나무, 숲, 풍경, 창밖 경치,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주인공의 생각과 느낌의 일부로 보입니다.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는 소설의 전체 ‘풍경‘ 속에서 형성됩니다. (84-85쪽)

주제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 차이를 일반화시켜 봅시다. 어떤 작가들은 ‘단어적‘이고, 어떤 작가들은 ‘시각적‘입니다. 이 말은 어떤 작가들은 주로 독자의 ‘시각적 상상력‘에 호소하고, 어떤 작가들은 주로 ‘단어적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모든 작가는 시각적 상상력과 단어적 상상력에 동시에 호소합니다. (90-91쪽)

한 편의 소설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단어에서 그림으로 전환해야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실 읽기를 그림 보기보다 더 참여적이며 사적인 일로 만듭니다. (98쪽)

소설 독자들이 느끼는 희열은 박물관 관람객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소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우리의 지각이 만나는 순간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색깔, 소리, 말, 풍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기록하고, 최소한 어느 기간 동안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에게 속한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삶에 소설에 기록되어 보존된다는 느낌입니다. (130-131쪽)

중심부는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 일종의 통찰입니다. 깊은 곳에 있는 실재 또는 상상의 신비로운 어떤 지점입니다. 소설가들은 이 지점을 탐색하고 그곳이 함축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 소설을 씁니다. (147쪽)

소설 쓰기와 읽기는 우리 삶에서, 상상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 소재, 이야기, 주인공은 물론 사적인 세부 사항까지도 이 빛, 이 중심부와 통합시키는 것입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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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게 된 [사피엔스], 시간이 많다고 금방 읽히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다양하게 적용하며 읽을 수 있다. 

 

여러 호모 중에서 사피엔스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신화, 문화, 화폐, 제국, 윤리, 종교, 법, 돈, 국가, 사상 등)을 믿을 수 있는 종족, 그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의 행복은 발전되는 혁명으로 점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혁명이 진화되고 힘이 더해질 때마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지나간 곳에는 모든 종들을 사라지게 하고, 동물들을 멸종시켰듯이, 우리의 유전 코드에는 처음부터 없었던 조건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인지혁명으로 협력이라는 상생은 경쟁으로, 농업혁명의 잉여생산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의 소유로, 과학혁명은 동물과 생태계 파괴로 나아갔다.

무지를 깨달아서 시작된 과학혁명은 우리의 욕망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며, 전지전능한 신이 되려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무책임하다. 개인의 즐거움만 추구하고 있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비혼주의도, 코로나도, 만약 간디가 불가촉천민이라면(204쪽) 적용해 봐도 된다.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586쪽)’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옥의 티: 노아의 아들인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 은 그 아버지로부터...(206쪽) 

            HAM 함으로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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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중략)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48~49쪽)

인지혁명 이래 사피엔스에게는 단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문화적으로 선택하느냐라는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78쪽)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117쪽)

상호 주관이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사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중략)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 중 다수가 상호 주관적이다. (176쪽)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193쪽)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266쪽)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독립성을 잃고 있다.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심지어 국내 문제도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운영할 수 없을 지경이다. (295-296쪽)

특정 시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실제ㅣ로 실현된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사후의 깨달음을 근거로, 어째서 그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이론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해당 시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은 경과를 훨씬 많이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338쪽)

상황이 바뀐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결국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이 풀기 힘들었던 문제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적용함으로써 어떤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은 인류의 피치못할 운명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375쪽)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439쪽)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480쪽)

현대 이데올로기와 정치 프로그램 대부분은 무엇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531쪽)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중략)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5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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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핸폰의 낱글자를 톡톡하고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떠오르는 태양과 아침인사를 나눈다.
만남의 약속들은 모두 미뤄졌고, 기다림이 막연해지는 시간이다.
내용과 포장의 간극을 최소화 하고픈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얼토당토 않는 과대포장으로,  뜻밖의  횡재와 아쉬움을 자아낼 수 있는  책 표지들, .
우리가 입은 옷부터, 드러내고 있는 모든 게 자신을 나타내듯이, 처음은 속일수 있으나, 점차로 알게되면 거리가 만들어 지듯이, 책 또한 멋진 옷을 입은, 또는 교복을 입은 모습에서 구분되고 구별될 수 있다. 다만, 첫인상에서 선택의 당락이 많이 좌우되니, 그래서 표지가 중요할까... 

일단 책이 선택당하고 펼치기 전까지는 내용물을 알 수 없으니, 무조건 믿고 보는 줌파의 글, 이건 어떻게 생성된 믿음일까, 분명 처음 본 줌파의 책에서 호감을 끄는 뭔가가  책 표지였을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였을 터, 그래도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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