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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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9-10쪽)

소박한 삶의 상징들에 결부된 지적 허영은 종종 감미롭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시골풍의 사치다. (23-24쪽)

이것은 모순적인 사치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평화 속에서, 진한 커피 향 속에서 온 세계와 소통하는데, 그 세계가 담긴 신문에는 전쟁의 참화, 사건 사고가 난무하다. 똑같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면, 연신 휘몰아치는 말 때문에 주먹질을 당한 듯 벌써 스트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리라. (중략) 하지만 그 폭력에서는 까치밥나무 열매 시럽과 코코아,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신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31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중략)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40쪽)

엉겁결에 초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몹시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다. 초대 받은 집의 검은 고양이가 무릎 위로 기어올라 앉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입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삶은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47-48쪽)

그러나 사과 냄새는 예전 기억 이상의 그 무엇이다.(중략) 지하 저장고나 어두운 곳간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곳에 살아 서 있기에 옛날 일을 떠올린다.(중략)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78쪽)

때마침 괜히 바나나 스플릿을 주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후회의 감정이 당신을 어쩌면 따분한 단맛일 수 있는 바나나 스플릿을 끝까지 먹게 만든다. 건강해진 타락이 나약해진 식욕을 부추기러 온다. 어린 시절, 찬장 속 잼을 몰래 꺼내 먹던 기분처럼,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부적절한 쾌락을 훔쳐온다. 규범에 의해 마지막 한 스푼가지 배척당하는 쾌락. 바나나 스플릿은 우리를 죄악에 빠뜨린다. (104쪽)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일까? 여하튼, 길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고 있는 이 무빙워크는 나에겐 하나의 긴 공백이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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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집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추리소설이 최고다. 

그 안에서는 반드시 밝혀지고,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역사와 버무린 미스터리,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거다로 알 수 있다. 

누군가 권력을 취하는 상황에서 누구는 편익을 취하고, 누구는 고통을 당하면서 개인의 삶은 달라진다. 

그러한 틈새에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선택지가 아주 미비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알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요즘 애정을 갖고 보는 메이저리그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연장전은 있지만)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 명언)'가 나왔으니, 우리 시간도 끝날 때까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다. 

최근 LA다저스 팀의 믿기 어려운 퍼펙트 경기가 9회말 2아웃에서 뒤집혀진다, 이런 거 보면 최선을 다해도 어렵더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거 같다. 

오늘 어디에서 날아 온 돌멩이로 생긴 자동차 앞 유리 돌빵 복원 수리했다. 멀쩡한 도로에서, 이런 게 인생 같다. 밝힐 수도 없고 드러나지 않는 일로 인해 아까운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추리 소설 내용에서 옥의 티라고 생각되는,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 나온다. 굳이 아들로 연결할 필요까지,,, 그리고 13살 소년의 생각이 그 정도로 깊다니, 놀랍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위로와 위안이 된다.

글의 내용이 뒤죽박죽, 소설 내용과 작금의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하니 이렇다.   

가을이 옷 자락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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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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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사촌 사이 같지 않은 사촌인 그들은 싸움에 휘말려 서로를, 그리고 잉글랜드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연중의 농사, 철이면 철마다 해야 하는 쟁기질과 씨레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영혼의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이곳 수도원과 교회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17쪽)

내 경험하기로, 산다는 게 편하고 평화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네. (34쪽)

죽음과 유사한 수면의 상태와 깨어 있는 삶이 엇갈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마다 그의 기억을 차단하고 있는 장막이 얇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장막은 얇아지기만 할 뿐 결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148쪽)

극단의 상황에 처할 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생존에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이다. (167쪽)

해야 할 의무 이상의 첵임을 스스로에게 지워서는 안 되지.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야 마음껏 후회하고 고백하고 참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는 건 다른 얘기요. 하느님의 평가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185쪽)

지난 다섯 세기 동안 누군가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세상은 달라졌겠지. 하지만 그 세상이 지금의 세상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만일이라는 가정은 아무리 해봐야 의미 없는 것이오. 그보다도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지. (186쪽)

왕가의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서로 치고받는 곳에서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인간들이 제 이익만을 쫓아 조금의 망설임이나 자비도 없이 시류를 이용하리라. 캐드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열한 인간들이 날뛰는 곳. 범죄가 만연하고 정의가 실종된 곳에서는 근방의 집집이 온갖 악행의 제물이 되는 법이다.(306쪽)

사실의 한 토막만을 가지고 어떤 사태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거든. 비록 그 한 토막의 사실이 자백처럼 명명백백한 것이라 해도 말이지.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지 않느냐.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해야 해.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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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케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고에 꽂힌 '식물스케치'가 눈에 띄어 바로 집어 들었다.

펼치니, 웬걸, 스케치가 없다. 뭐지, '식물스케일'이다.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서 한 말, '식물이 주인공이 아니다. (중략) 식물 자체가 갖는 물리적 속성, 혹은 식물을 통해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에 더 경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명과 성장, 결실과 죽음을 성찰하게 하고, 말없이 위로와 행복을 주는 대상으로서 식물이 갖는 경이로운 지점을 말해보려 했지만, 나의 눈과 발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기에, 식물을 앞에 두기보다 옆이나 뒤에 두고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식물이 언제나 나의 지척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5-6쪽).'


식물의 크기와 비례를 고려하여 생활을 구성하고, 삶의 모양을 바로잡고, 인생의 척도로서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식물의 스케일 아래에서 다루고 있다. 건축 도면의 축소된 크기로 실제 공간을 상상해 보듯이, 저자의 주변에 있는 식물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성찰한 글이다. 

어릴 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르는 발상, 시선의 산책, 현실을 유예하면서 상상해보기, 이해하기 위해 근거를 찾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보이지 않는 숨겨둔 것을 볼 수 있다. 


박세미 글을 더 읽고 싶다. 


매일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버리기. 스케치하기. 감사기도 실천 중이다.

'숲을 읽는 사람(허태임)',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읽다가 말다가 하는 중이다.

휴가를 다녀왔고, 아빠의 마지막 휴가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고, 이렇게 살면 안되는 데, 그럼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추가로 뉴욕양키스 경기 보는 낙이 있어 다행이다.

거의 매일 카페 가서 책 읽는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마구 뛰어다닌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는 데, 걱정이다, 그들의 미래가. 

또한 도서관 봉사 중이다. 책 빌리는 이가 거의 없다. 답답하다.

그리고 나의 서재 방문객이 어마 무시하다. 왜? 서재 지수가 이제야 보이네, 이 점수는 어떻게 나오는 거지, 몰라도 되고, 그냥 저냥, 나도 자주 방문해야 한다. 

벌써 구월이다. 하늘은 파랗고 높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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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스케일
박세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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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한순간이 있다. 애호의 시발점이 어디인지 추적하다 보면 강렬한 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은 대개 기억의 앞뒤를 잘라놓는다. 그래서 그 애호에는 합리적인 이우가 붙기 전에 ‘무턱대고‘의 마음이 앞선다. (40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언어를 찾는 일을 여전히 사랑하는데, 양 눈의 시력이 각각 온전해야만 강력한 하나의 초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4쪽)

보는 일은 쉽다. 자세히 보는 일은 그보다는 어렵다. 의지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대충 보았을 때보다 자세히 보았을 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고통과 슬픔의 웅크린 등을 발견할 확률이 더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등에 손을 뻗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자세히 보기‘는 보이는 것이 숨겨둔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아내개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81쪽)

빈티지란 생산연도, 제조국, 디자이너 등의 정보 위에 익명의 돌봄과 시간을 두텁게 쌓아 올린 물질이 아닐까. (85쪽)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속성이 뭘까요?" 물으니, "시간과 반복인 것 같아요. 물리적인 작용과 화학적인 작용이 반복되어서 그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돌멩이도 그냥 돌멩이로 안 느껴져요. 그런 맥락으로 사물을 보면 아스팔트의 깨진 틈의 모양도 아름다워요. 장식과 치장이 아닌 어떠한 힘의 반복이 만들어낸 명백한 논리가 있는 모양이니까요"라고 답했다.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근거를 찾는 것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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