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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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눈과 상상력과 마음으로만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상상력으로 생각하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기를 원한다. (17쪽)

우리 가운데 평생 진정한 독서가로 살아온 이들은 여간해서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재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작가들 덕분이다. 좀체 책을 읽지 않는 친구와 대화해 보면 이 점이 제대로 와닿는다. 그는 아주 선량하고 사리 분별력도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작다. 우리라면 아마 그 속에서 숨이 막힐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다가 결국 자아 이하가 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21쪽)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30쪽)

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 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38쪽)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54쪽)

쉰 살 때도 똑같이(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물론 정보 도서는 예외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 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62-63쪽)

"이야기에 불과한" 책 즉 인물이나 사회가 아니라 가상의 사건이 주관심사인 책을 두고 논할 때면, 거의 누구나 책이 주거나 본래 주어야 할 즐거움은 "흥분"뿐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흥분은 가상의 불안을 대신하는 긴장과 해소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는 잘못이다. 독자와 책에 따라 또 다른 요소도 개입된다. (82쪽)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 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 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87쪽)

현실의 풍경이 식상하거든 거울에 비추어 보라. 빵이나 금이나 말이나 사과나 길을 신화에 담글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한 현실은 더 현실다워진다. 이 책은 빵이나 사과만 아니라 선과 악, 우리의 끝없는 위험과 고뇌와 기쁨까지도 그렇게 다시 보게 해 준다. 신화에 담그면 더 똑똑히 보인다. (113쪽)

과거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특정한 시가 당신의 현대적 감성에 남기는 첫인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시 외적인 요소를 공부하고, 다른 시들과 비교하고, 지나간 시대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시 속에 다시 들어가 좀 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알고 보면 당신이 고어에서 연상한 의미는 잘못되었고, 실제 함의는 당신의 짐작과 달랐을 수 있다. 당신에게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그때는 평범했고, 평범해 보이는 부분이 그때는 이상했을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최대한 이러한 독서를 돕기 위해서다. (122쪽)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137쪽)

우리는 의식이 있는 존재인 만큼, 날마다 종일 우리 삶을 구성하는 정수는 암시와 직유와 은유와 감정을 통하지 않고는 소통될 수 없다. 어떤 감정은(그 자체로는 썩 중요하지 않지만) 삶을 엿보는 단서가 된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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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사서가 자신의 일을 일지처럼 담담하게 쓴 글이다. 그녀는 금방 끝날 줄 알았는 데, 이게 전부라고 여긴 일들을 아끼지 않고 온전하게 마음을 쏟아 부어 '사서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끝날이기에, 전부이기에 아끼게 되고 미루기도 하고 어설프게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여전히 그 일들은 남아 있고 남은 시간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녀가 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과 같다.

코로나가 창궐하는데 숫자만 세고 있고, 단계만 조절하고 있다. 안타깝다.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똑같다. 서로가 처한 곳에서 'OO의 일'을 제대로 안다면, 알려고 한다면, 어떤 상황일까,가만히 상상도 해본다.

도서관 봉사를 하다보니, 사서에 따라 도서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잠깐의 봉사지만, 가자마자 간단히 청소하고, 북트럭의 책을 제자리에 꽂고 책가방 서비스에 따른 책들을 찾아 스티커 붙이고 정리하고, 간간히 대출을 하는 시간들이 그립다. 지금은 휴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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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일 - 작은도서관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양지윤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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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숱한 사계절을 지나다 보면 유독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시절이 있다. 특정 장면만 오려서 모아놓은 스크랩북처럼 강렬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수집되는 것이다. 어릴 적 이웃집 텃밭에서 서리한 무를 덥석 깨물었을 때 입안에 번지던 흙의 향이라든가, 들판에 앉아 쑥을 캘 때 내 코를 간질이던 강아지풀의 촉감 같은 것들. 기억이 만들어내는 스크랩북은 오감을 가리지 않는 까닭에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스크랩한 기억을 꺼내 펼쳐보고 싶어진다. (91쪽)

구매욕을 자극하는 책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내게 허락된 공간은 한정된 현실 속에서, 나 같은 츤도쿠(책을 사서 쟁여두고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작은도서관은 소장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직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133쪽)

산다는 것은 각자 살아온 시간만큼의 이야기를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다. 평소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불쑥 그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떤 이에겐 음악으로, 또 어떤 이에겐 그림으로, 종종 누군가에겐 말로써. 그리고 내겐 글을 쓸 때 그 순간이 찾아온다. (209쪽)

살아갈수록 ‘갓김치‘ 같은 것들이 늘어간다. 꽤 좋아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드러내기 망설여지는 것들이. 그것은 특정 사물일 때도 있고 독특한 취향이거나 내 생각이 담긴 글일 때도 있다. 그리고 점점 이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날로 강해진다. 집에서만 먹던 갓김치를 당당히 바깥에서도 꺼내서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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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을 이리 자로 잰 듯 쓰다니, 정말로 가지런하고 단정한 글이다. 표지에 나온 연필로 쓴 글같다. 뭔 말이냐,고 묻는다 해도 표지의 사진처럼 뭉뚱한 연필심과 몽땅연필들이 이 글을 드러내고 있다. 기억을 끄집어 내어 각각의 항목 안에 일목요연하게 5부로 나눠져 말끔하게, 그러나 깊이가 있어 울림이 있는 글이 들어 있다.   

동년배라서 그런 지 저자가 읽은 시, 소설, 배운 선생님들, 그가 생각하는 작가들, 종교에 관한 글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일상에서 마음의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글을 읽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 돌아보니 더 이상의 바랄것도 욕심낼 것도 없다는 것 기억하기. 세월만큼 계속 비워내기,등의 다짐을 한다. 

수백권의 책,등을 정리하면서 대대적으로 집정리를 했다. 버린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커튼으로 마무리했다.  

규칙적인 일터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에는 한낮의 새로운 경험을 동반한다. 내가 경험하는 부분에서 내부와 외부의 새로운 질서와 규칙 또한 정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예전에 중얼거렸던, '저 사람처럼은 늙지 말아야지', 했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혹시 그들과 다를바없는 나일까, 설마~~

하늘은 가을이다. 2021년 여름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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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기억 - 유성호 산문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유성호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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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생의 가치는 이처럼 ‘추억‘의 부피만큼만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구라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명료한 척도로 계측할 수 있겟는가. 다만 자신의 시간 속에서 길어올린 ‘추억‘이 불러주는 꿈을 통해 이 불모의 결핍의 생을 견뎌가는 힘에서 생은 갈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의 가치는, 분주한 일상이나 만나는 사람들의 머릿수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추억 속에 살아 움직이는 ‘흔적‘의 활력과 온기에서 입증된다. (23쪽)

나는 근대문학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리를 ‘기억‘으로 보고, 그 ‘기억‘이 고고학자의 시선처럼 현재의 지층 속에 화석의 형식으로나 있을 법한 오래된 질서들을 발견하고 재현하는 어떤 힘임을 발견하고 있다. 특별히 그것을 근대문학을 통해 발견하면서, 형이상학적 중심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시대의 척박함과 가벼움을 극복해가는 기율과 비의가 그 안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작가나 시인들에 대한 ‘기억‘에 정사와 야사가 따로 있을 리 없지 않은가. (84쪽)

문학은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궁극적인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이를 접하고 누리는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게끔 하는 문화예술의 한 영역이다. 그 점에서 아무리 영상매체가 주도적인 예술로 자리잡아간다고 해도, 문학을 통해 경험과 생각을 계발해가는 과정은 전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문학은 인간이 깊이 생각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데 더없이 필요하며, 언어를 통해 감동과 사상을 키우는 데 변함없는 중심 역할을 할 것이다. (122쪽)

미당(서정주)은 일그러진 역사에 참여했던 자신의 한때를 시대의 압력에 순응한 결과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어쪄면 그가 시를 쓰면서 정말 중요했던 건, 역사나 독립 같은 것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건 오히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요, 그후에 찾아오는 근원적 초월과 달관의 직관적 순간을 아름다운 언어로 잡아채는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아니 그것만이 그가 꿈꾸는, 그리고 꿈꿀 수 밖에 없었던 ‘시‘였다. (184쪽)

따라서 종교는 그 성격상 인간의 자기 인식 및 자기 성찰과 떼어질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적 삶이 이성적 합리주의와 영적 초월이라는 두 경계선을 부단히 오가야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곧 종교적 인식에 토대를 두고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포함한 인간의 역사와 현실에 관심을 투사하는 일과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의 양 측면을 아울러 이름하는 것이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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