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기 위하여 그 간 노력한 실패와 성공에 대한 솔직담백 좌충우돌 고군분투한 서민의 글쓰기 분투기를 읽으며 글을 쓴다는 거에 대한 나의 목적을 생각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하여 여러가지 동기가 있겠지만, 삶을 바꿀 수도 있다로 말한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내가 뭔가를 끄적끄적 하며 글을 쓰는 이유가 뭐지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거 같다. 몇번이나 블로그를 닫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 온 건 일말의 위로가 있기 때문인데, 그 위로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우선 나아가 보기로 한다. 글쓰기는 분명 삶에 영향은 준다, 주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이때껏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면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까.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노인들의? 지혜같은 건 아닐까. 책 때문이 아니라 가끔 그런 생각도 들지만, 만약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 독서가 나에게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이 읽은 책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도, 그러면 엄청 큰 변화를 바랐는가 그거도 아닌데. 잴수없는 측정불가능하고 주관적인 만족감의 정도는 어디까지여야 하나. 등등은 제대로 된 목적없는 독서였을 수도. 변화를 원하는가. 글을 잘 쓰기 위한 것인지. 글쓰기를 통해 변화를 원하는지는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을 수도.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가 같이 맞물려 고민과 생각할 재료가 떠오르는 게 마음을 한뼘씩 넓혀 가는 변화라고 위로한다. 굳이 글을 잘 쓰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 쓰다보면 스스로에게 위로되는 거로 만족하면 안될까. 그렇게 노력해서 글을 잘 쓰게 된 서민의 글에서 나도 노력해서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같은 느낌이 들어, 잠시 우울했었다. 그래도 블로그를 하는 목적과 동기를 다시 고민할 필요는 있다. 

"글쓰기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할 수도 있다에 유의해야 하지만. 바꿀 수도 있다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믿는다. 분명 바꿀 수 있다. 태도든. 글쓰기든. 잘사는 삶이든, 어느 쪽으로든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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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6-04-0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의 목적과 동기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책에 대한 선호가 가장 큰 이유이고, 좋은 데 무슨 이유가 있겠나. 책읽기가 나의 생필품이라면. 글쓰기는 차후의 일이고. 더불어 글을 잘 쓸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냐마는. 블로그는 예전부터 독서 후에 공책에 끄적대는 것을 여기로 옮겨 쓴다는 의미로. 가끔 내밀한 부분을 가려야 하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블로그에 대한 이유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쉬운 점은 없어야 하는데.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들어가는 듯. 그런데 스마트한 세상에서 전혀 스마트하지 않고,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태도로 보여주고 그렇게 사는 듯. 밍밍하고 심심한 나의 삶에 블로그가 조금의 일탈이라고 여기면 될까. 당분간 읽고 끄적끄적 하는 것에 만족하련다. 찾아와 읽어주는 이에게는 그저 감사하고, 좋아요 또한 감사하고. 좋아요다.
 
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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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다는 것이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되 그걸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을 뜻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쉽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92쪽)

글을 잘 쓸 마음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글을 잘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종이신문 읽기를 권한다. 신문 속 사건들은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신문에 실리는 사설과 컬럼은 그 자체가 글쓰기 교본이다. (130쪽)

글을 쓸 때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재료와 관점이다. 재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재료를 모으기 귀찮다면 기존 재료를 가지고 관점을 바꿔서 쓰는 방법도 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려면 한 사건을 가지고 여러 관점으로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하라.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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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계를 못하는 내게 동일한 일이 되풀이 되고, 그리하여 잠을 설치고, 다크써클 내려오고, 연필 꽂아 둔 책을 펼쳤다. 뒷 표지에 "일도, 사랑도, 관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답은 가족에게 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 온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에는 분명 가족의 목소리와 가족사와 연관이 있다는, 그렇다. 현재 나의 모든 행동에는 원가족과 관련이 있다. 상처받기 쉬운 부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것도, 가족은 삶의 원동력도 되지만 상처도 된다. 그래서 삼대까지 가계도를 그리다 보면 전부 보인다. 이 어처구니 없는 나의 행동까지 이해하게 된다.

요즘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 상황에 자꾸 집착하고 상기시키니, 상대도 그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하게 되는 거 같다.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게, 그 어떤 기미도 없이 연결 점과 선에서 뚝 끊어진, 사라진 느낌이 감당하기 힘든다. 그래서 관계를 잘 못하고 연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근한 예로 분명 연락이 와야 하는 데(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쓴다. 누가봐도 연락이 와야 하는 상황) 오지 않을 경우, 이 막막함을 견디기가 아주 어렵다. 대부분 관계를 파기해 버리는데, 내 마음이 많이 가 있는 아주 괜찮은 사람일 경우는 두세배로 어렵다. 충분히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 아기일 때 잃어 버릴 뻔 했다며 가슴을 몇번이나 쓰다듬으며 해주신 엄마의 말이 기억에 남아서일까. 벤치에 포대기에 쌓여 누워있는 한달도 안된 아기의 공포가 몸에 새겨져 있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의 자그만하고 그냥 있을 수 있는 거절이나 잠깐의 단절도 견디기 힘든 걸까. 그 사이 내가 없어지고 사라진 느낌이 드는 걸까. 암튼, 그러한 상황에서는 공포에 가까운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다잡아 부탁하고 부탁하려 한다. 진짜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상담과 분석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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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사랑, 관계, 불안, 벗어날 수 없는 나와 가족의 심리 연대기
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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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반복의 매듭에 구속되어 있거나,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탓에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정체성 위기, 관계의 어려움, 심리적 혹은 심신증적 질환 발병, 중독,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은 많은 경우 이처럼 충족되지 못한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사실 이와 같은 생활 패턴은 이미 여러 세대 전에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16쪽)

부모의 요구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자녀는 그것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이라고 여기며 수치심을 느낀다. 부모가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소망을 접고 자녀의 약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녀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부모가 충족되지 못한 기대에 집착할수록 자녀는 부모의 애정이 조건부이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소망이 고스란히 복사된 존재로서 사랑받을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녀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감정을 점점 키워가게 되며, 이런 검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부족해. 너는 가치가 없어.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신념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76-77쪽)

대부분의 경우 사랑에 빠진 초기에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가치가 얼마만큼의 중요도를 갖고, 과거의 규칙이 어느 정도까지 유효성을 가지며,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유연하고 분리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극단적 충성심을 요구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빈번히 파트너와의 새로운 시작에 실패하고 원가족에 대한 충성심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기 못한다. (163쪽)

부모의 트라우마적 경험은 자녀의 감정 세계로 침투한다. 부모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입 밖에 내지 않더라고 그렇다. (205쪽)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고 다른 길을 보여주는 좋은 부모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반드시 가족의 일원일 필요는 없다. (247쪽)

변화로 나아가는 길은 어렵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최선의 부모가 되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자신의 부모와 아무리 다르게 행동한다 하더라고 과거는 시시때때로 원치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52쪽)

여기에는 "곧은" 길도, "평탄한" 길도, "올바른" 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분명하다. 자기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가족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오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끈을 약간 느슨하게 푸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박한 과제다. 끈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보다"([심연들]). (303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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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처럼 "어머니는 지금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연결 고리"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다면, 그 막막함과 보고 싶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좋은 봄날, '어머니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17쪽)'이 든다면, 그녀는 말을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까지, 한 여자로서의 모습과 자신과의 연결된 부분을 가감없이 모두 보여 주고 있다. 친척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삶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분노한다. 딸은 어떻게든 어떤 모습이든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고, 계속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는 것을... 엄마의 모습이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엄마는 나를 이 세계로 보내준 통로이기에. 나의 엄마, 애보다는 증이 더 많은, 그 엄마를 다시 떠 올려본다. 어제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동생과 살고 있는 아가씨의 문병을 갔다. 혼자서 스스로 병수발을 하고 있다. 그녀의 심정을 조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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