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 세 편의 에세이와 일곱 편의 단편소설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정미현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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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는 무기력 상태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소설가는 궁극의 고요함과 질서를 이어가는 삶을 원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똑같은 얼굴을 보고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쓰고 있지요. 그 무엇도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환영을 깨뜨리지 않도록, 낯가림이 심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이라는 기운이 비밀스럽게 뭔가를 캐고 다니고 여기저기 더듬거리며엄습하고 돌진하고 불현듯 찾아내는 그런 여정을 그 무엇도 방해하거나 동요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상태는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소설을 쓴다고 상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손에 펜을 쥐고 앉아 있는 한 소녀를 마음속에 그려 보세요. (29쪽)

여전히 여성의 주변에는 맞붙어 싸워야 할 환영이 널려 있고 넘어서야 할 숱한 편견이 포진해 있습니다. 죽여야 할 환영이든 부딪쳐 깨뜨려야 할 바위든 맞닥뜨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책을 쓰기까지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리고 여성이 몸담은 모든 직업군 중에 가장 자유로운 문학계에도 이 상황이 적용된다면 이제 여러분이 처음 발을 내딛는 새로운 직업 세계에서는 상황이 어떻겠습니까? (31쪽)

요즘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질문에 시달리고 있음을 밝혀야겠습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도로 한복판에서도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같습니다. 교회, 선술집, 의회, 상점, 확성기, 자동차, 윙윙대며 구름 속을 스쳐가는 비행기, 남자고 여자고 전부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혼자 질문을 던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질문은 사람들 있는 데서 공개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질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있지요 바로 부자들입니다. (36-37쪽)

질문 끝에 나오는 갈고리 모양의 기호 때문에 부자들의 심사는 뒤틀립니다. 권련과 명성이 잔뜩 무게를 잡고 질문을 나무랍니다. 그 때문에 민감하고 충동적인, 또는 대체로 바보 같은 질문들은 응당 질문 장소에 대해 눈치 보게 마련이지요. 그 질문들은 권력, 부, 전통이 조성한 분위기에 위축됩니다. 대형 신문사 문턱에서는 여러 개의 질문이 죽어나갑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내빼고 맙니다. 형편이 좋지 못해 줄 게 없고 권력이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이 사는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으로 말이죠. (37쪽)

맞습니다. 일탈은 최상의 즐거움이에요. 겨울의 거리 유랑은 최고의 모험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현관 앞 계단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오래된 물건들과 낡아빠진 편견을 감지하고 거기서 안도합니다. 거리 모퉁이마다 바람을 맞고, 접근할 수 없는 수많은 가로등 불꽃에 나방처럼 두드려 맞던 자아는 피난처를 찾아 보호받습니다. (69쪽)

그녀는 돈 한 푼 들일 필요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박물관도 무료, 국립미술관도 무료, 자연도 무료, 물론 아닌 것도 있지. 그녀도 안다. 빨래는 누가 하고 밥은 누가 하고 애들은 누가 보겠는가. 그러나 진리는 있는 법. 다들 입밖에 내길 두려워하는 그것은 바로 행복이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공찌로 행복을 얻을 수도 있다. 아름다움도 그렇다. (90쪽)

우리 생각이란 게 얼마나 쉽게 새로운 대상으로 우르르 몰려가는지, 개미떼가 지푸라기 하나를 세상없이 열광적으로 옮기다가 금세 놓고 가 버리듯...... (108쪽)

그 순간 거울이 그녀를 향해 빛을 쏟아냈다. 빛이 그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 빛은 비본질적이며 피상적인 것을 뜯어내고 오직 진실만 남겨두는 무슨 산성 물질이라도 된 듯했다.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그녀에게서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갔다. 스카프, 원피스, 바구니, 다이아몬드, 덩굴이며 삼색메꽃이라 불리던 모든 것이 떨어졌다. 그 이면에 단단한 벽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있었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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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임을 알 수 있는 것은 타인의 기준으로 드러난다. 외모로, 태도로, 재산으로, 성격으로, 친분 등등으로 구분된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우째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란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화들짝 놀라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이성과는 저만치 떨어진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이란다. 그래도 그래도 진짜일까, 설마, 하지만 맞단다. 진실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구별하기도 만만치 않다. 기억의 한계도 한 몫한다. 당최 누가 누구이기에 맞다라는 진실이 있을까, 법이란 테두리로 복잡한 인간의 삶을 가둘 수는 무리이고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법이 보호하는 증명(서)을 통해서야 그나마 정리가 된다. 결국에는 각자의 입장에서 진짜와 가짜의 분분한 의견에서 너는 누구다라는 판결이 내려지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주변의 모든 이들이 '너는 OO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존재라는 자체는 혼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그 안에서 순응과 적응으로 나아간다면.. 꼬리를 무는 생각들, 만약, 마르탱 게르가 삼촌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진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진실은 추측으로 가늠할 수 밖에... 약속있어 방독면쓰고 외출해야 한다.   

245쪽을 보면 "몽테뉴는 마르탱 게르 재판의 판결 기록에 '추측된다' 거나 '추정한다' 또는 '그렇데 될 수밖에 없다'라는 투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추측과 추정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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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장 클로드 카리에르.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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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강 건너편 버찌가 더 커 보이는 법. 그러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만나는 건 길바닥의 비참함과 알 수 없는 모진 바람 그리고 발부리에 차이는 동료의 시신뿐이다. (39쪽)

남편이라는 작자가 집 떠날 궁리만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자식도, 온갖 지극한 정성이나 어떤 대담한 행동도 그를 붙들어 잡아둘 수는 없을 것이다. 떠날 사람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다. (45쪽)

"세월은 유유히 흘렀다. 사람들 말마따나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흘렀다.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었다. 마을 전체를 뒤흔들었던 마르탱의 귀향은 조금씩 잊혀가고 있었다. (81쪽)

"자, 이제 여러분 모두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이 사람이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왼쪽에 서시오." (중략) 고등법원 판사는 큰 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진짜 마르탱 게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오른쪽에 서시오." (132쪽)

법이란, 인간이 누구나 선하고 정직하다는 것을 전재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저녁에 수도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나중에 마을에 돌아와서도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이 말에 대해 골백번도 넘게 자문해 보곤 했다. 만약 법이 인간은 누구나 선하고 정직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믿다면, 과연 인생도 그러할까? 법에서는 전제하고 있지만, 종교에서는 문제 삼고 있고 경험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천성적인 선함에 도대체 무슨 변고가 생긴 걸까?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내 보잘것없는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 속에 어떤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회의를 겪었을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182-183쪽)

"태피터를 이중으로 댄 흰색 반바지 말이군. 하지만 그걸 네게 말한 건 바로 나잖아." "아니지! 내가 너에게 말했지." 피고가 응수했다. "어떻게 감히 내가 말해준 걸 네놈이 역이용할 수 있어!" (중략) "잠깐, 자네는 자네가 저자에게 이야기했다고 했지?" "네." 그는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숨을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저자가 그걸 역이용하고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판사가 말을 다시 이었다. "저자가 법정에 들어왔을 때, 자네는 말하지 않았나.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고." (212-213쪽)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 황제 하드리아누스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 철학제 에픽테투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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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모두 부산에서 모였다. 그때의 사진을 함께 보면서 서로 다른 기억들을 맞췄다. 그리고 누군가 가지고 온 기타로 MT 기분을 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는 참 많이도 늙었구나. 교장, 교감, 장학사 등 나처럼 퇴직한 이부터 모두 그때로 돌아갔다. 그 사이 어디론가 숨은 친구도(아무도 모른단다. 잘못된? 결혼으로 사라진), 이미 하늘 나라에 간 이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다닌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이도 있다고... 기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 읽었다. 난다에서 2017. 2018 출판한 이런 형식의 책을 이어서 읽은 셈이다. 장석주의 글에만 눈이 많이 갔다. 박연준은 자꾸만 장석주와 같이 살고 있다는 표를 내려했다. 서로가 주고 받는 연애편지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직접적인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러했다.

그 사이 무슨 투자를 하라는 이가 멀리서도 찾아왔고, 축하인지 뭔지 모를 전화를 친구도 없는 내게도 몇통이 와 본인 이야기만 한 시간씩 한 이도 있었다. 이러이러한 사람들로 슬펐다. 가려서 전화받고 만나야겠다.

오랫만에 꿀잠을 잤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펼치고 하루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형식의 글을 읽는 이유는 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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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읽어본다
장석주.박연준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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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쓴 책을 읽는 행위는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기, 그의 시선으로 보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와 같다. 책읽기는 누군가의 관점을 빌려 세상과 사물을 보고, 감정 이입empathy을 하는 행위인 것이다. 타인이 빚어낸 이 앎의 집적체를 뒤적이고 읽는 것은 낯선 사람, 나와 다른 감각의 존재, 즉 외국인, 탐험가,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며 편협한 주관성을 벗어나서 타자와의 공감 능력, 타자의이해와 앎을 내 것으로 취하면서 문해 능력을 확장한다. (30쪽)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비참할 정도로 많은 ‘거짓‘이 필요하다. 진실이라니. 진실이라니. "얼어죽는" 진실 따위. (97쪽)

물질적 풍족이 반드시 다를 테다. 지혜, 사랑, 올바름, 고요함, 영성, 초월 따위의 가치를 좇고 따를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바란 것을 창조적 활도오가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삶이다. (124쪽)

학습 기억이 줄면 대뇌피질이 굳어지고 뇌의 사고 기능에서 유연성이 사라진다. 그 결과로 회의가 없는 자기 신념과 강화된다. 따라서 신념 기억의 이상 비대화는 사고의 빈곤, 생떼쓰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학습 기억이 준 이들의 전형적 행태가 말의 무질서함과 생떼스기다. (160쪽)

내가 원하는 것을 못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에 해피하게 지낸 시절이 있어. 아, 나는 어쩌면 이리 운이 좋은가 음미하다가 그 비결이 떠올랐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만 원했다는 거야. 가지 못할 것은 아예 원하지 않았다는 것. (195쪽)

벗이 죽는 것은 기억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것. 아는 이들이 다 죽으면 기억은 ‘제로‘로 돌아가 존재의 영도로 전락하는 것. (250쪽)

내게도 노화, 쇠락, 다가오는 죽음은 다 낯선 경험이다. 마흔을 넘기면 ‘늙어감‘과 마주친다. 피부는 탄력을 잃고, 성욕과 기억력은 감퇴한다. 신체의 쇠락과 마주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이다. 늙음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불가피한 것.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살아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죽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았던 세월의 길이가 아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가 중요하다. (280쪽)

책읽기는 "기호 해독 행위"이고, "망막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이 좌측 후두측두열구의 가장자지로 전달되고, 해독"되는 과정이다. 이때 뇌는 화들짝 깨어나 반응한다. 책은 재미, 위로, 교양, 기쁨, 고요, 휴식, 자기성찰의 계기들을 준다. 오늘의 문명사회가 점점 더 책과 멀어지게 하는 것은 "동시다발적인 자극에 중독돼서 두꺼운 책을 읽는 데 필요한, 고도로 집중되고 한결같은 주의력이 부족"해진 탓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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