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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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20쪽)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들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행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의 조건을 둘러싼 굴욕적인 장벽들(<우리 집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해> 라는 의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순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57쪽)

우리 식구들은 서로 쥐어짜는 어조로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화법을 알지 못했다. 정중한 어조는 외부인들에게만 사용했다. (중략)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예절 바르게 대하는 모습은 내게는 오랫동안 신비로 남아 있었다. 또 나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간단한 인사말을 건넬때에도 극히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어조의 인사말을 듣게 되면 부끄러웠다. 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어떤 특별한 호의를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알아차리게 되었다. 몹시 관심 있는 듯한 태도로 질문을 하거나, 이렇게 따뜻하게 미소 짓는 것은 입을 다물고 식사를 하거나 살그머니 코를 푸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78-79쪽)

그가 청년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예의 바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내 부모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자질이었고, 동시에 가장 얻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어떤 노동자가 사위 후보로 왔다면 그가 용감한자, 술은 마시지 않는지 따위를 알려고 했겠지만, 내 친구에겐 그러지 않았다. 지식과 예의 바름은 내적인 탁월함, 즉 생득적인 탁월함의 표시라는 깊은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몇 년 전부터 고대해 왔던 무언가가 이루어진 거였는지도, 큰 걱정을 하나 덜게 된 거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아무나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울리지 않는 사내와 결혼한 여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신혼부부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과 사위 사이에 놓인 교양과 힘의 간극을 그저 한없는 베풂으로써 보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린 더 이상 별로 필요한 게 없어.‘ (106-107쪽)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125쪽)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료,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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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맞지 않는 상황, 내가 있는 곳과 어울리지 않음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다를 어느 순간 느끼게 되면, 나를 제대로 알았을 때야 가능하다. 일기에서조차 쓰기가 힘들었기에,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는데, 그러나 글로 풀어내어 다시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러한 일이 희석되어 치료가 된다하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은 짙게 배어있다. 분리된 나, 이전과 이후의 나의 모습을 점차 하나로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가면서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만든 내가 있게 된다. 

나와 가족, 내가 사는 곳, 내가 속한 일터가 또 다른 내가 되어 있다. 부모가, 형제의 행동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내가 사는 곳은 우리 가족 전체를 매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곳은 내가 만들 수 있다. 충분히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몸에 배여 있을지라도. 어쩌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나의 선택조차 내가 풍기는 그 만큼의 몫으로 정해졌을 수도...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다. 만약, 이러이러한 가족과 저러저러하게 살았다면, 지금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한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끄러움은 너의 몫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을 후벼파고 불편해 하고,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었다.. 십일월도 가운데를 지난다. 이렇게 빨리 지나는 시간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잊히지도 않다니, 내 참... in a peace....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 봤다. 알고 나니 죽음이 가깝고, 어쩌면 죽음을 알게되어 인생을 알게 되었을 수도. 꿈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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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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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이 장면을 글로 옮겼다. 지금까지는 일기에서조차 이렇게 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마치 징벌을 이렇게 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마치 징벌을 야기하는 금지된 행위처럼. 어떤 글이든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금기. 심지어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이런 일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26쪽)

*이 장면 :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23쪽).

예의란 일종의 보호 장벽인 셈이고, 따라서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예의는 위선이나 악의처럼 느껴져서 불필요한 것이었다. 거칠고 노골적이고 악을 쓰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 간의 대화였다. (74쪽)

부끄러움에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117쪽)

(그해 여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나는 내가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라든지 ‘나는 ~를 깨달았다‘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런 단어는 체험한 상황에 대한 명징한 의식이 있음을 상정한다. 거기에는 이 단어들을 모든 의미 외적인 것에 고정시키는 부끄러움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거움, 그 무화 작용을 내가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이 최후의 진실이다. (132쪽)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마당의 오줌통, 함께 자는 방(공간 부족으로 인해 우리 계층이 대개 그렇듯 나는 부모와 같은 방에서 잤다). 어머니의 손찌검과 거친 욕설, 술에 취한 손님들과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친척들. 술에 취한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고 월말이면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 삶에 대한 정확한 인식. 오직 이 인식만으로도 내가 사립학교의 무시와 경멸의 대상인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137쪽)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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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곳이 좋아서, 그 곳의 그 시간이 좋아서, 그 곳이라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은 저자는 동일하다. 사진이 참 많다. 예쁜 사진들이다. 글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동일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우선 눈으로 들어와 기억과 추억의 꼬리를 문다... 일단, 프랑스에서는 뛸리히에서 마냥 앉아 있기. 몽소 공원 걷기, 뤽상부르 공원 잔디에 엎드려 있기. 몽마르뜨 언덕 올라가기. 퐁네프 다리에서 캐리커처 그리기. 세느 강변 따라 걷기, 개선문 올라가기. 기차타고 지베르니 정원 가기. 베르샤유 정원에 있는 미루나무 옆에서 사진찍기. 에펠탑 불빛보고 잠들기... 언제든 갈 수 있는 것과 가고 싶어도 못하는 것의 간극이 무지 깊다.  

그리고 번역을 잘 한 책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었다. 세밀하고 탁월한 묘사...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는 나의 일상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잠이 오면 잠자고, 배고프면 먹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심플하게, 그러나 흡족하게 이어지는 생활로 나아가기다.

잘가라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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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럽은 사랑스럽고 그립다
박신형 지음 / 알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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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에는 ‘침묵의 숲‘이 있다. Silence forest. (중략) 숲 전체에 고요함이 흐르고, 바람 소리와 새 소리, 그리고 작은 웃음소리만이 들리는 아름다운 침묵의 숲. 때로는 끊임없는 설교나 말보다, 쓰다듬어지지 않는 소용없는 위로보다,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무수한 말들보다, 침묵이 무엇보다도 크고 단단한 위로임을 때때로 알고 있나 보다. (67쪽)

가보고 싶은 곳과 살고 싶은 곳에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프라하는 살고 싶은 곳,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중략) 왜 하필 프라하냐고 묻는다면, 콕 찝어서 ‘이것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좋아하는 데에, 사랑에 빠진 데에 명확한 이유를 대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까. (136쪽)

좋아하는 것은 왠지 넉넉하지 않고, 다들 원하며,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아끼게 되고,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법칙인가보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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