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가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이런 재앙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이 번에 읽은 글은 제주도에서 알게 된 장정일과 한영인이 주고 받은 문학 관련 편지 글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시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곁들여 세상사와 서로의 기호품과 일상까지, 결론은 차이가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와 존중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삶을 다르게 하고, 천양지차의 결론에 다다른다. 말의 맥락보다는 표면을 보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고... 하지만,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고 판을 치는데, 본인들이 한 말이나 글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나의 잘못을 세상의 잘못으로 치환하지 않기, 후안무치, 자립 등등의 단어가 남아있다.


동생들과 가을 단풍을 즐기자고 만나서,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하면 안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의당을 찍었다는, 그건 사표라는, 최악과 차악의 후보자 등, 진보와 보수, 교회와 목사, 종교생활, 교회출석, 헌금 등까지 밤을 새웠다. 각자의 생각에서 그게 아니고, 틀리고가 아니다로 서로 인정만 하면 된다. 그 중 소주 몇 병을 더 마신 이도 있고, 누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불을 토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   


나는 분명히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점검해 본다. 기준점도 없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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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 문학과 삶에 대한 열두 번의 대화
장정일.한영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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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인데, 막상 정치라는 게임(노름판)에서는 주인이 아닌 겁니다. (중략) 투표를 독려하는 말 가운데, 선거는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최악과 차악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의미죠. 그런데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다시 읽으며 참 재미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차이란 같은 것das Gleiche이나 마찬가지다"(13쪽) 이런 명제가 나오게 된 책의 전체 맥락을 깊이 살펴야겠지만, 저 명제는 어디서든 써먹는 게 가능한 ‘스위스 칼‘ 같은 명구군요. ‘차이‘가 중요한 정치적 동기이자 자원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생각하면 반시대적이기까지 합니다. (51-52쪽, 장정일)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한영인)

문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는 것‘에 대한 ‘믿는 것‘의 우위가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문학을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학 대신 옛 신문과 잡지, 영화, 드라마 등을 들여다봅니다. (중략) 문학에 대한 ‘앎‘이 문학에 대한 ‘믿음‘을 초과하게 되는 순간 문학의 죽음은 시작되는 것이겠습니다. (137쪽, 한영인)

조국 사태의 핵심은 조국이라는 고유명일 수 없죠. 그런데도 계급 사이의 불공정은 물론, 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조국 사태‘는 조국 부부의 인격과 그들이 법정에서 받게 될 ‘유죄냐, 무죄냐‘의 문제로 축소되었습니다. (중략)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학창시절 준비할 수 있는 ‘스펙‘이 차이가 나고, (중략) 그가 드러낸 사태의 본질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난생처음 받는 공포스러운 질문이 있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 어느 족을 선택해도 뒤끝이 좋지 않으리란 것을 아이는 직감적으로 압니다. 그런데도 기어코 한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 아이가 처한 조건 또는 우둔함이죠.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해야 해요. "나는 피자가 좋아!" 우물가에서 당장 숭늉을 마실 수 없듯이, 피자를 먹으려면 화덕부터 만들어야죠. 화덕을 만드는 게 진보죠. (157쪽, 장정일)

위악적인 사람은 거짓의 휘장을 벗고 가장 취약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지만 위선적인 사람은 오직 남에 의해 까발려질 때만 자신의 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이처럼 위선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립적으로 관계할 수 없기에 도덕적 능력 또한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172쪽, 한영인)

눈에 보이는 오보로 인한 피해보다 ‘아무 생각 없음‘에 의해 발생하는 피해가 더 막대한데 언론중재법으로는 그와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레거시 미디어가 자신들이 쓴 기사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을 가지지 않듯 트위터리언들도 자신이 과거에 했던 트윗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서이제의 작품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혐오를 세상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며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말만 내뱉을 뿐,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해본 적 없는 인간들"(44-45쪽)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이지만 이런 부류들에 대한 아주 정확하고 인상적인 소묘라고 생각합니다. (225-226쪽, 한영인)

‘뻘짓‘은 ‘행위로의 이행‘이라는 지젝의 용어로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형도 알다시피 행위로의 이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 혹은 주체의 무기력을 감추기 위한 과잉 행동을 가리키죠. (중략) 그런데 전후 한국소설의 기본 바탕이 모두 이랬습니다. 거의 모든 작가가 행위로의 이행을 일삼습니다. 대표적인 작가가 손창섭이죠. 못나기 짝이 없는 가족과 친구들끼리 서로를 조롱.학대하고 시기.질투합니다. 적을 똑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임현의 "멜랑콜리적 죄의식" 역시 행위로의 이행으로 볼 여지는 없을까요. 한국의 근대 문학은 전후는 물론 4.19 이후에도 오랫동안 자신을 억압하는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과 정면 대결하기를 회피했습니다. (중략) 적을 놓치고 적을 외면하면 할수록 증상으로서의 죄의식은 깊어지지요. (276-291쪽, 장정일)

제가 써왔던 비평이나 에세이에 거짓이나 허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진실을 말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죠. (중략) 거짓되진 않지만 동시에 진실도 없는 이야기. 그에 비하면 소설은 허구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거짓을 초과하는 진심이 들끓곤 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마땅히 분석과 비평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죠. (420쪽, 한영인)

저는 한국어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한국문학의 내부자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너무 아이러니합니다. (중략) 제가 한국문학을 읽는 것은 업계에 있어서라는 말이죠. 바로 이렇기 때문에 업계에 포획된 사람, 형 같은 평론가에게 절실한 것이 내부를 대타화할 수 있는 능력이고 거리 두기죠. 형 말처럼, 요즘 세상에 "거짓되진 않지만 동시에 진실도 없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이 지점에서부터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446쪽,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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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본인의 이야기, '단순한 열정'을 읽다. 밝힐 수 없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동사의 변화를 통하여 현재의 바램과 소멸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마음은 닳아지고, 기억은 사라지고, 몸은 늙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오래 전에 '사랑하는 동안'의 기억들을 모아모아 보려 애썼다. 유물처럼 주고 받은 수 백통의 편지와 전화 카드가 흔적으로 어딘가에 남겨 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너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었는데, 모든 것들이 너를 제하고는 의미가 없었는데, 그러한 기억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사랑도 사라졌다. 너무 오래되었다. '쿵쿵'은 의미 다른 '쿵'으로, 이제는 전우애로 다져진 남사친, 여사친 정도로 살고 있는 우리다. 


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사보다는, 행여, 여전히, 아직도, 하마나, 지제나저제나, 벌써, 아주, 매우, 등등의 수많은 부사들이 그리운 마음에 쌓이고 쌓일 때,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반복하여 읽은 게 떠오른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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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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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쪽)

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중략)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26-27쪽)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는 고통수러운 밀의 괘락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39쪽)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중략)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47쪽)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중략)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대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52쪽)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이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59쪽)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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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로 예쁘다. 책도 이렇게 예뻐야 하는구나... 눈에 띄어 단번에 집어든 책, 사강이다. 

블라블라, 동의하지 않지만, 감정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다. 연애할 때가 기억난다. 

계절별로 나눠져 있다. 


*봄: '난 이제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볼 수가 없고, 마음이 아프지 않고는 네가 떠나는 걸 볼 수 없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는 다른 사람 앞에서 너한테 얘기할 수 없을 거야(71쪽)', 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봄 

*여름: 지난 몇 십년간 서로를 모른 채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걸 믿기지 않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그러나 행복했지만 두려웠던 찬란한 여름

*가을: '나는 모든 존재가 행복할 숙명이라는 걸 알았다. 행동은 삶이 아니라 어떤 힘을 허비하는 방식, 무기력이다. (195쪽, 랭보)', 서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삶의 태도가 서로 다름을 알게 되는, 행복을 말하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런 자잘한 패배들이 디딤돌이 됨을, 삶은 구질하다거나 쪼잔하거나 등등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모른척 하면, 그를 기다림이 단지 충만함에서 빈 시간으로 바뀌면, 떠날 때다. 가을이다.  


*누군가는 이런 방식의 삶을 원한다. 

.....무위야말로 우리의 모든 미덕과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우리의 모든 자질 - 명상, 한결같은 기분 유지, 게으름, 활발한 정신적, 육체적 소화력 -을 드러낸다는 걸. 먹기, 배설하기, 육체관계 맺기, 햇볕을 쬐며 빈둥거리기. 이보다 더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이것과 비교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극히 일부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숨쉬기, 살아있기, 그것을 인지하기. 이보다 더 나은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213쪽)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또는 이룬 것이 없음.

                자연() 그대로 되어 있고, 사람이 힘들여 함이 없음. 


*'숨쉬기, 살아있기, 그것을 인지하기', 이 사이 사이에 정말로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인의, 유의'로 살고 싶다. 
*사족으로 애런 저지는 61년 만에 61호 홈런뿐 아니라 62호로 새역사를 썼고, 스맨파는 댄스를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진행 중이고, 조만간 쇼미더머니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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