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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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쓰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그녀는 실존의 고통과 즐거움과 복잡함을 적나라하게, 뼛속까지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6쪽)

내게 하나의 텍스트는 생각과 욕망의 미끄러짐과 겹치기를 통해서 조직되는 무엇입니다. 내가 글을 쓰던 순간에는 모호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던 것을 차후에 해명하고 그 맥락을 잇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러한 미끄러짐과 겹침을 설명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 텍스트를 정성들여 조탁하는 과정에 투여되는 삶의 작용, 즉 현재의 작용을 무시하도록 내게 강요하는 셈이될 겁니다. (20쪽)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군요. 이것들은 내가 내 출신 사회계층을 배반하고 있다는 감정에 깊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치스러운‘활동을 하고 있어요. 비록 역시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글쓰기에 바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치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이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떤 안락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것, 내가 손으로 한 번도 노동해보지 않은 만큼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써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68-69쪽)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중략)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적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79쪽)

내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활동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세상의 베일을 벗기고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다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97쪽)

내게 글쓰기란 철저하게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삶의 즐거움보다 우월한 어떤 즐거움을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아름답고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곧 ‘멀리‘ 있는 것,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던 그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과 동일시되었죠. (중략) 갑자기 정치적 행위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욕망을 갖게 된 것도 아닙니다. 아니, 나는 삶과 인식의 차원에서 험난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도정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이 명백한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어요. (중략) 이러한 삶의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글쓰기에 관한 나의 관념 혹은 직관을 전복시켜버린, 문학과 현실 사이의 일종의 정면 대질이라고 할 과정을 겪었습니다. (98-99쪽)

바르크는 어디선과 말한 바 있습니다. "글쓰기는 작가가 자기 언어의 본질적 성격을 어느 사회 영역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선택을 명료하게 인식했고, 그 인식은 나를 ‘거리 두고 글쓰기‘로 이끌었습니다. (중략) 지배자들의 언어도구,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인 문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데, 내가 선택한 글쓰기는 그러한 언어도구를 사용하여 피지배자들의 관점을 문학 속으로 침입 혹은 난입시키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102-103쪽)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똔ㄴ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글쓰기에는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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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추천하여 구입하여 읽은 책이다. 빌려 읽어도 충분하거나 아님 안 읽어도 된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일일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를 폄하하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라마에 녹아 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그래도 다른 삶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띠끌 같은 나 일 수도 있고, 수많은 티끌이 모여 나를 이루기도 한다. 티끌은 삶의 조각조각일 수도 있고, 현재의 나의 형편일 수도 있다. 너무 비관적일 수 있지만, 주인공 안젤라는 그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이 주관하여 살려 한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또는 선택의 종류도, 그러한 선택지에서 선택조차 당함을 못한 이까지 살고 있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누구는 능력이 있어서, 누구는 환경이 좋아서, 등등은 핑계댈 수는 없다.

이왕 태어났으니,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온전히 본인 몫이다.  

어쨌든, 지금 자족하며 살고 있다. 후회와 아쉬움과 욕심이 여전히 밀려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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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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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은 없다.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단점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수도없이 갈등하게 된다. 옷으로 비유하면 리더십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출복이고 인품은 평상복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27쪽)

온 가족이 타원형 식탁에 둘러앉았다. 부모님, 레나 부부, 자식들과 손녀까지 4대가 함께 모인 자리였다. 전통을 중시하며 예의를 갖추고 말이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괴로워했다. 노인들은 늙고 병든 몸 때문에 힘들어했다. 젊은 부부는 부모님의 간섭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했다. 레나와 니콜라이는 애정 결핍으로 힘들어했다. 두 사람 모두가 사랑을 원했다. 그들의 옛사랑은 닳고 닳아서 구멍이 났는데, 새로운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고,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62쪽)

"얼굴 표정이 달라. 얼굴 표정이라는 건 가정교육으로 결정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지." "그런 거라면 노력해서 얻을 수 있겠네요." 안젤라가 지적했다. (64쪽)

니콜라이는 문든 ‘존재하다‘와 ‘존재하지 않는다‘를 구별하는 경계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깨달았고, ‘해야 한다‘와 ‘하면 안 된다‘라는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누구도 뭔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쓰나미가 그를 쓸어가 버릴 수도 있었고, 비행기와 함께 추락할 수도 있었고, 병에 걸릴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남자는 수명이 짧다. (88쪽)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96쪽)

우리는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염탐한다. 물론 가상의 삶이었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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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암에 걸린 엄마의 병상을 지키며, 엄마와의 소원했던 관계를 돌아본다. 죽어 가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엄마와 연대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오랫동안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와 딸이 죽음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넓혀지면서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다. 

해설자가 밝힌 '아주 편안한 죽음'은 '타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화해하기'이다. 딸이 대변하는 나-정신-삶의 영역과 어머니가 대변하는 타인-육체-죽음의 영역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영역이 서로 조화롭게 혼합되는(182쪽) 과정을 볼 수 있다.

확장되어 가는 자문자답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죽음의 의미, 호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 살아남은 자를 위한 화해, 아주 편안한 죽음은 남은 자의 몫, 죽은 자는 말이 없음, 언젠가는 죽기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인간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고 연대하기이다.


추가로 쇼미더머니에서는 문자 투표 보낸 이영지(Hug/Dejavu)가 우승했다.  내가 기뻤다.    


시간은 나이별로 다르게 흐른다. 올해는 그렇게도 화가 많은 줄 몰랐던 나와 정말로 화해하는 한해였다. 벌써 내년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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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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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엄마는 바닥을 기어가면서 생각했다고 한다. 넘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 거라고. (19쪽)

엄마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걸 태평스럽게 승낙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더 불쾌하게 했다. 엄마가 평생 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금지 사항이나 지시 사항을 벗어던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엄마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벗어던진 결과 엄마의 몸은 한낱 몸뚱이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고, 그 결과 시체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 셈이었다.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26쪽)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인 셈이었다. (53쪽)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58쪽)

평소 같았으면 자기가 없을 때 남이 집에 들어오는 걸 참지 못했을 것이다. 병으로 인해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과 오만의 껍질이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체념이나 희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가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회복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면서 마침내 엄마는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났다. (83쪽)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 못 하는 법이지. 하지만 자식도 부모를 이해 못 하기는 매한가지란다......" (97-98쪽)

죽음을 삶과 통합하려는 건, 그리고 합리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일에 직면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는 건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각자가 나름대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풀어 나가야 한다. 나는 유언을 남기고자 하는 모든 이의 심정을 이해한다. 또한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심정 역시 이해한다. (142-143쪽)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146쪽)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죠." 이 말은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또 그들을 유배된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략)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중략)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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