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홀릭's 노트 - 집에서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 레시피
박상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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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테스팅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한 종류의 원두라 해도 입자의 굵기, 물 온도의 차이, 물 붓는 속도 등 아주 미묘한 차이에 의해서 다양한 맛과 향을 경험할 수 있다.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규정짓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난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커피의 이런 점이 너무 좋다. 그 작은 콩알 속에 무수히 많은 빛깔이 숨어 있다니,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31쪽)

내 주변에는 여자들보다 오히려 남자들이 커피에 대한 조예가 더 깊다. 여자는 커피를 분위기, 감성의 맛으로 접근한다면, 남자는 정보와 기술에 의한 객관적인 맛으로 접근한다. 물론 나는 그 두 부류와는 또 다른 차원, 즉 특이한 도구나 기자재의 사용면에 혹하는 편으로, 다양한 커피 추출 기구와 방법에 매료된 유별난 경우이긴 하지만. (34쪽)

커피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로스팅 레벨이 있기도 하고, 취향이나 상황에 따라 그 레벨이 적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커피를 모든 로스팅 레벨로, 그리고 모든 추출 방법으로 테스트해 보지 않는 한 감히 `이것이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새로운 커피의 맛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저 즐길 뿐이다. (61쪽)

케맥스를 사용할 때는, 필터를 깔때기 부분에 넣는다. 중간 꿁기의 일반 드립용으로 분쇄된 커피를 한잔 120ml당 7g 준비하고 필터 안에 넣는다. 끓는 물을 준비하고 적당한 온도로 내려갈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완벽한 온도의 물이 준비되면 먼저 약간의 물을 부어 커피를 적신다. 30초 정도 뜸을 들인 후 나머지 물은 2~3번에 나누어 부어준다. 핸드 드립 커피의 다른 드립 방식과 같다. 커피가 다 추출되고 나면 필터를 꺼내 버리고 따라 마시면 된다. Enjoy your perfect cup of coffee! (115쪽)

그렇다면 우리가 아메리칸 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를 미국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간단했다. 가장 일반적인 커피인 레귤러커피Regular coffee가 바로 아메리칸 커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레귤러커피를 찾지 마라. 영국에는 레귤러커피란 메뉴가 없다. 필터 커피가 기본 메뉴이다. (178쪽)

비알레티 제품이 유명한 이유는 오래된 역사 외에도 다양한 제품,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카푸치노를 만들 수 있는 비알레티 모카 익스프레스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에스프레소의 생명인 크레마를 만들어내는 비알레티 브리카가 비알레티의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143쪽)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희석시킨 커피를 주로 마신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페 아메리카노이다. 커피를 엷게 마시는 미국식 스타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방식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미국인들을 위해 고안하였으나, 실제 미국에서는 스타벅스와 같은 전문 커피 하우스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카페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싱글 샷에 약 2배가량의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커피로 레귤러 머그잔과 비슷한 농도지만 더 깊은 맛을 낸다. (153쪽)

냉침식 더치커피는 물론 워터 드립식과 같은 비율로 바로 마실 수 있는 커피의 농도로 추출할 수 있으나, 토디가 전통방식을 연구해 얻은 결과처럼 1:5로 커피 농축액을 만들어 마시기 직전 물과 희석하여 마시는 것이 보관뿐만 아니라, 맛도 훨씬 좋다. 또한 워터 드립 방식으로 더치커피를 추출할 때에도 토디처럼 1:5비율로 하여 농축액을 만들 수도 있다. 농축액을 만들 때에는 1:5의 비율이 중요한데, 진한 커피를 혹은 흐린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 비율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이 비율은 말 그대로 황금비율로 일단 농축액을 추출한 이후 기호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하여 원하는 농도로 희석해서 마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렇게 만든 커피는 풍미가 강하면서도 맑은 그리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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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를 다녀왔다. '커피홀릭's 노트'를 챙겨 테라로사 본점과 사천점을 들러 커피를 아주 많이 마셨다. 7번국도를 따라 도무지 알수 없는 겨울 바다와 소나무, 밤하늘의 별도 봤다. 커피홀릭책은 아직도 읽는 중이다. 오늘은 서울도서관을 뚜벅뚜벅 다녀왔다. 나이드신 어른들의 책읽는 모습이 좋았다. 책사이를 다니기가 복잡했지만, 원하는 책은 이미 대출중이였지만, 층계참에서 읽은 정이현의  짧은 글에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가득 있었다. 어쩜 순간을 그렇게 잘 포착해내는지,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지, 부러웠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힌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짧은 소설이기도 하고 콩트이기도 하고 쇼트스토리이기도 하며, 그 모두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럼 무엇이기를 바라느냐 묻는다면, 말하자면은, 좋은 사람과 보내는 오후 2시 30분의 티타임같은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단 한명에게 작은 선물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도."  그리고 도서관 앞에 커다랗게 적힌 "당신의 (   )가 좋아요, 그냥"이라는 말이 눈앞에 확 다가왔다. 시청앞 광장에서는 스케이트를 지치는 아이들이 있었고, 건너편에서는 무슨 무슨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경찰들도, 어른들도, 도서관에서는 남녀노소 책을 찾거나 고개숙여 읽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몫을 살고 있는 거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야 하고,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그래서,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은 정말로 '좋은 사람과 보내는 오후 2시 30분의 티타임 같은' 느낌이 뭔지 알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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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좋은 사람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이현 지음, 백두리 그림 / 마음산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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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불가능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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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을 챙겨 사박오일의 힐링캠프를 다녀왔다. 철원가까이에 있는 그곳은 서울의 이곳과는 많이 달랐다. 날씨. 풍경. 시간. 느낌등이다. 눈도 내렸고, 기온은 영화십도 아래에 가있고, 얼굴에 느껴지는 감은 쨍하고 달랐다. 눈길을 꼭꼭 밟으며 한, 숲명상은 먼곳의 산등선과도, 가까이의 소나무와도, 바람소리, 공기의 흐름, 물소리까지 가슴 속 깊이 들어왔다. 모든 게 예사로 보이지 않고 내몸의 세포가 하나씩 깨어나 자연에 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걷는다는 건 온전히 몸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지평을 걷는 사람들(탐험가)이야기는 아픔을 꼭꼭 누르다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듯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데 발로, 온몸으로 새로운 장소, 톰북투. 탕가니카호수. 스마라에 다다른 그들의 느낌은 경탄 그 자체였다. 면도날 위를 걸어가는 듯한 그들의 걷기에서 무엇때문에, 왜라는 묻는 건 우문이다. 우리가 가진 건 몸이 전부다. 온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오직 걷기 뿐이다. 그리고 지난해 무엇무엇을 한다고 했는데...올해는 '되도록 많이 걷기'로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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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셨겠어요.
아래 최영미의 시, 저도 좋아하는 시네요.

JUNE 2015-01-1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최영미시는 무조건 좋습니다.~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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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가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개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아니 길이 거기에 있기에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21쪽)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91쪽)

걷기는 원초적인 것, 원소적인 것과의 접촉이다. 걷기는 대지와의 만남이다. 걷기가 대자연 속에서 사회적인 특징을 갖춘 어떤 차원(길, 오솔길, 여인숙, 방향표지판 등)을 동원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공간 속으로의 침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의 공간은 사회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지리, 천문기상, 환경, 물리, 음식 문화 등과 관련된 공간이다. 걷는다는 것은 그 공간을 벌거벗은 세계 혹은 우주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108쪽)

이런 도보탐험은 면도날 위를 걸어가는 듯 지난한 것으로 매순간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끝없는 인내와 예외적인 육체적 정신적 시련을 강요한다. 이 도보여행은 나귀나 낙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물론 이때의 걷기는 걷기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탐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이런 탐험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내와 흔희 그런 탐험이 강요하는 고난을 끝장내버리고 싶은 욕구가 서로 대결하게 된다. 이때 오직 중요한 것은 더 나은 방법이 없기에 그저 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걸음을 멈추는 것은 기분전환이 아니라 시간을 허비하고 가진 것을 낭비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장애로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이지 그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176쪽)

걷는다는 것은 더위와 추위를, 바람과 비를 만난다는 것이다. 도시는 하루의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 그리고 햇빛이나 소나기로 인하여 피로해지고 뜨거워지고 때로는 더욱 생기를 얻는 개인의 육체적 상태에 따라, 피부에 변화무쌍한 촉감을 느끼게 한다. (220쪽)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힌도해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 (237쪽)

걷기는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 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외면의 지리학이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251쪽)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세상에 내놓는 것, 우리를 인정받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몸이다. 전통적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은 우리라는 개념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각자는 어떤 계통에의 소속을 통해서 자기를 확인했는데 우리들의 사회는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파악하기 어려워 질 때 그 지주로서 남는 것은 몸이다. 몸은 알쏭달쏭하여 감이 잡히지 않는 삶 속에서 살을 다시 찾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몸은 다듬는 것은 세계에 매달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변했다. 몸은 무한히 재조정되는 어떤 아이덴티티의 부대사항으로 승격했다. 회관은 가장 밀도 짙은 깊이의 장소가 되었다. 폴 발레리가 말했듯이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그래서 걷기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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