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2박 3일의 가족 번개모임에 다녀왔다. 오가는 길에는 예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대청호를 지나 탁트인 강물을 앞에 두고, 장작불 타는 냄새까지 풍기는 'THE LEE'S"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다. 식사하는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는 올만한 사람들이다. 참으로 웃긴 말이지만 괜히 우쭐해진다... 우리 8명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하룻밤을 꼬박 새었다. 그것도 순전히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우아함을 즐기기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번씩 도시로 와야 한다는, 남동생네는 서울보다는 조금 못한 백화점으로 갔다. 도시에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익명성이다. 누구에게도 눈目과 말言과 소문에도 간섭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이도시에 남겨졌을까가 아니라 나는 이 도시에 남아있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바로 옆에 누가 있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이곳, 한편으론 쓸쓸하고 외롭기에, 가끔씩 가족모임을 해야 한다. 봄이 와도 같이 나눌 수 없는 이들이 있는 곳이지만, 도시는 무지 매력적이다. 온갖 색색의 꽃들이 봄을 알려도, 도시가 발산하는 매력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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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도시에 남겨졌을까
김지수 지음 / 홍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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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모여 함께 밥먹는 것이 '음식 정의'의 시작이다.-43쪽

냄새의 기억의 터널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것은 과학계의 정설이다. 브라운대 심리학과 레이첼 헤르츠 교수는 "냄새에 의해 떠오른 기억은 시각적인 자극에 의한 것보다 그 기억을 상기하는 과정 동안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후각과 감정이 근본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83쪽

만약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상류가 명품과 고급 취향의 문화와 가문과 배타적인 주거 공동체 같은 고만고만한 것들을 동종 교배해 만들어진 스노비즘으로 전락한다면, 유일한 신종 우생학의 조건은 어쩌면 '베풀고 나누는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92-93쪽

결혼식엔 주례사가 있고 장례식엔 조사가 있다. [강아지 똥]의 작가 고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은 눈물 나게 웃기고 동화처럼 천진하여 모범이 될 만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아! 정신과 육체가 얼마만큼 한통속으로 발효되면 이토록 코믹한 유언장을 쓸 수 있을까? 유언장을 쓴 뒤 16일 지나서 그의 몸음 화장되었다. -109-110쪽

나는 삶이 여행처럼 느껴졌고, 내가 다니는 길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호기심이 차올랐따.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묻고,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타인의 도움과 친절'로 살아간다는 관계의 이치를 체득했다. 그건 돈을 내고 당당하게 요구하던 레스토랑의 서비스와는 다르다. 최첨단 내비게이션의 전자 음성 대신, 사람들은 내 눈을 맞추고 손을 들어 그들의 경험적 계량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현대의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와 몸이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 걷기의 육체성과 걷기의 정신성, 걷기의 개별성과 걷기의 개방성, 그리고 그 두쌍의 대립적 국면들이 서로 공존하면서, 몸은 활력과 생명을 되찾아갔다. -145쪽

'쿨한'이라는 형용사는 명확한 카테고리나 계급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나르시시즘),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역설적 초연), 인생을 즐기는 방식(쾌락주의)이기 때문에 유행이 변한다 해도 결코 사라지거나 조롱받을 염려가 없는 영원 불멸의 형용사인 것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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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전국적인 워크숍을 했다. 갈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용은 별루라는 거다. 그 정도야 공문을 날려도 될 건데... 암튼 그곳에는 목련과 개나리가 폈다는 거다. 무채색의 옷을 벗고 바바리, 원피스, 스타킹, 구두, 가방까지 봄날의 색으로 갈아입고 갔다. 너무 멋을 냈나, 기차를 놓쳤다. 커피마시며 다음기차를 기다렸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전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봄냄새로 들떴다. 세미나실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천천히 뚜벅뚜벅 지하철을 타고 대전역으로 왔다. 여행을 했다. 광화문에 들렀다. 괜히 기분이 우쭐하다. 수많은 책사이로 난 길을 다니는 기분은 아무도 모르리라. 몇권의 책을 사서 돌아왔다.  

-책속에 나오는 그림이 하도 예뻐, 이 봄날과 어울려 스캔떠서 올린다.

운수평 '방오병절지도' 종이에 채색, 27.5x43cm 17세기,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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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절판


사람들의 삶은 내게,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길 없는 길을 어떻게 걸어갔을까.-79쪽

살다보면, 인생은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날보다 비 내리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비 또한 잠깐 쏟아지고 마는 소낙비가 아니라 몇 날 며칠 동안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장맛비라는 것을.-95쪽

'날이 추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의 푸르름을 알게 된다'는 [세한도].-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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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 다양한 분야의 학문까지 범위가 아주 넓다. 그야말로 백과사전이 따로 없다.  관점이 새롭다. 곳곳에서 발상의 전환이 보인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야가 고정되고 머리가 굳어지고 마음에는 억지가 생기는 거다. 지나침이 없고 발끝으로 사뿐사뿐 걸어 '빨래 너는 여자'가 생각난다. 이참에 찾아적어 본다. 

 

빨래 너는 여자

-강은교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 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어 빨래통에 담겨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어물거리는 바람, 어물거리는 구름들.

그 여자는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무용수처럼 발끝을 곧추세워 서서 허공에 탁탁 털어 빨래줄에 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여자의 무용은 끝났다. 그 여자는 뛰어간다. 구름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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