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눈치를 채든, 모른 척 하든, 그러면서 사랑이 만들어져 간다. '건축학개론'을 봤다. 그 남자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그 여자는 조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기대볼 수 있는 첫사랑, 예전의 집을 살려 새로이 건축되듯 그들은 서로의 첫사랑을 확인한다... 첫.사.랑은 현실에서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고 힘을 준다. '모르는 여인들'은 각자의 고립된 삶에서 어색한 타인과의 관계맺기 위해 노력하는, 각자의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결국은 시간과 공간의 끝간데 까지 가봐야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만이라도 그녀와 그에게는 서로에게 사랑의 존재였음을 말하고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그게 첫사랑으로 건너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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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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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지면 그 사람 신발에 발을 몰래 넣어보고 싶다. 소녀 시절엔 내 또래 여자아이들의 운동화 속에. 처녀 시절엔 그 남자들의 구두 속에 내 발을 몰래 넣어보았을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젊은이거나 나이든 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와 친밀하게 지냈거나 지금 그렇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도 모르게 이미 내가 그들의 신발에 내 발을 가만 집어넣어봤다는 것을 알는지. 내가 특별히 신발을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26쪽

다시 한 사람을 향한 격정 속에 빠져서 매 순간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욕심내는 일은 격정만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함께 준다. 그래서 가차없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버리기도 한다. 그 격정과 절망 속에 다시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232쪽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막힌 인생을 듣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편하게 기대고 있던 등이 나도 모르게 곧추세워져요. 내가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을 두고 뭐가 이렇게 시시하담, 싶어 권태를 느꼈던 것을 상대가 알까 싶어 미안해지는 때가 그런 때예요. 어제 같은 오늘이란 말의 뜻이 권태나 무료가 아니라 별일 없이 무사하다는 뜻이란 것을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구요.-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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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치고 있다. 울고 싶다. 쉬고 싶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좌절될 때, 인정받지 못할 때, 비교 당할 때, 부러움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같이 있을 때, 바보 같을 때, 무력할 때, 모가지 위까지 올라오는 목소리를 눌러야 할 때, 엉덩이를 덜썩 들고 일어나 걸어 나가지 못할 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비합리적일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여러가지 많기도 하다. 이게 나의 모습이다. 또한 방어, 외재화, 투사, 동일시, 역전이로 점철된 모습이다. 때론 생뚱맞게 울고 싶기도 하고, 다운되어 우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타인에게 끌려가지 않기, 가만히 머물러 있기, 모른 척하기가 필요하다. '하던 일 하지 않기' 와 '하지 않던 일 하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난 아직도 도상(道上)에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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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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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은 '정신분석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working-through)'을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이다. 훈습은 유식 불교(唯識佛敎)에서 따온 용어로, '지각과 의식을 통한 경험이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배어들어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정신분석 작업은 '분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과 저항을 철두철미하게 극복하여 치료에 성공하는 것'을 뜻하므로 훈습보다는 '철저 작업'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미국 심리학자 스콧 펙은 그 과정을 '훈련'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훈련 과정을 통해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절제력, 정의감, 용기 같은 가치를 위에 책임감을 발달시킨다고 제안한다. -8쪽

프로이트는 [끝낼 수 있는 분석, 끝낼 수 없는 분석]에서 훈습과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훈습은 우리가 외면해 온 것을 되찾는 작업이며, 부정했던 것을 수용하여 온전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과거에 묻힐 뻔했던 것을 현재가 되게 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경험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마크 엡스타인은 [붓다의 심리학]에서 훈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이 아닌 정서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면 단기간의 성취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회피하려 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감정에 매인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26-27쪽

사랑한다느 것은 의존 욕구가 있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애착이나 원망의 감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리되고 자립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74쪽

입장차이, 진실 부재, 자기 이익. 세상의 모든 갈등은 그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갈등의 삼 요소는 틀림없이 나르시시즘과 불안의 심리 위에 꽃피는 현상으로 보인다. 정신분석가들의 기법 중에 '모르는 채로 머룰기, 불분명한 지대에 머물기'가 있다고 한다. 내담자의 혼란스럽거나 단편적인 일상 이야기 속에서 무의식적 진실에 도달할 단초를 발견할 때까지 모르는 채로, 불분명한 상태로 기다린다. 이해되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 소통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의미를 인식할 준비가 될 때까지 혼돈 속에 머문다. 내담자의 무의식이 떠올라 분석가의 무의식에게 말을 걸 때까지.-112-113쪽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존성, 결핍감, 시기심, 자동 강박 반복 추구와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불안, 분노, 공포, 방어기제 등의 감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자유다.'는 인정 지지 욕망, 존재 증명 시도, 내면의 감독관 등과 관련된 문장이었다. 세 범주의 감정들은 인간이 고통받는 내면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고 있었고, 유아기에 잘못 만들어 가진 생존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150쪽

치료란 어린 시절에 위험하다고 느껴 억압하고 회피해 둔 감정을 다시 느끼는 일이고, 그것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1쪽

투사적 동일시와 역전이가 어떻게 다른지도 경험 속에서 구분하게 되었다. 역전이가 상대방의 감정을 다만 거울처럼 비추는 작용인데 반해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의 감정이 아예 이쪽으로 건너 오는 것 같았다. 역전이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상대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헤어진 후에는 서서히 흐러졌다. 투사적 동일시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면에 별다른 동요가 없지만 헤어진 다음 날 아침 내면에서 올라오는 낯선 감정과 맞닥뜨리곤 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역전이보다 열 배쯤 강한 강도로 느껴졌고, 구체적 에너지처럼 건너오는 힘이었다. -207쪽

유아기 전쟁 트라우마를 처리하지 못해 노년이 되어서까지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망상을 짓는 노인들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이유 없이 분노와 불안에 처하게 된 젊은이들을 보는 일은 더욱 안타깝다. -221쪽

진정한 이타 행위가 가능하려면 내면의 결핍과 요국들이 철저히 점검되어야 한다. 결핍감이 있는 상태에서 행하는 이타 행위에는 보상을 기대하는 무의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행위 뒤에 좌절과 분노를 만나기 십상이다. 심지어 타인의 선행에 대해서 의심하고 비난하게 된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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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서울 곳곳의 역사'를 생생하게 목도한 이야기를 담담히 읽었다. 알면 알수록 분통과 무력감이 동시에 올라온다.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아니 핑계에 불과할 지 모른다. 과거와 맞물려 현재에 머물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곳을 제각각의 이익에 편승되어 윤색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꾸 되물어 아닌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무늬만 있다. 

-동창회에 갔다. 더도 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된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 자체가 그저 즐거웠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엇갈린 기억들, 추억들을 꺼내어 다시 맞춰보았다. 소박한 모습들, 만날 때마다 주름과 흰머리는 하나씩 늘어나 있지만 우린 사십여년전의 그 얼굴로 만났다. 그래서 헤어지면 늘 아쉽고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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