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역, 협신사서점, 장춘당약국, 일직교회, 문화회관, 스쿨서점, 마리스타, 봉화춘양, 완행열차, 연탄, 주일학교, 정호경신부, 이현주목사, 최완택목사, 김종상시인, 판화가 철수, 전우익할아버지, 어릴 때 읽었던 새벗잡지와 계몽사, 창비... 익숙하고 그리운 안동이다. 

"얘기 중에 자주 양반 이야기가 나오고, 안동은 양반 도시라는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더군요. 못마땅한 것은 양반이란 실체가 어떤 것인지 깊이 파고들지 않고, 왜곡되어 있는 점잖은 양반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을 가진 것입니다. 양반이란 어디까지나 착취계급의 존칭어로써, 안동이 양반 도시라면서 그 몇몇의 양반 밑에 빼앗기며 종노릇을 했던 상놈들의 생각은 하나도 하지 못하더군요. 오히려 안동은 그렇게 수탈당한 노예들의 고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면 싶었습니다.(311쪽)" 그곳에서 자라면서 그곳에서 교회를 다닌 나에게는 양가감정이 있다. 양반과 종이라는 계급의 추체험을 하지 않았기에, 추상적인 이야기만, 그 중에도 낭만적인 추억과 기억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구 하나님을 믿는 거에 대해서도, "권 집사님, 새벽종 칠 때 나는 일어나 쇠죽 낋이고 마당 씰고, 밥 먹고 들에 가마 캄캄하두록 일해야 사니더. 내 보고 예수 믿으라 카지 마이소. 나는 믿을 끼 없니더. 하나님도 못 믿고, 예수님도 못 믿고, 목사님도, 장로님도 못 믿니더. 나는 새북에 일나서 점두룩 삐 빠지게 이래야 먹고사니더. 내가 하리만 놀아도 우리 아들은 굶어 죽니더. 주일도 일해야 되고 놀아서는 못 사니더. 누가 내 대신 꼬치밭 한고랑 매 줄 이가 있니꺼? 기도를 백 분 천 분 해도 하나님은 안 들어 주니더. 속이 상하만 술 먹고 고래고래 소리 질르고 나면 쪼매는 풀리니더. 우리 긑은 거 이루구루 살다가 죽는 거지 어야니꺼........(220쪽)" 그때 이 분을 만났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울 반응을 했을 것이다. 

동화와 동시 작품과 돈과 병마, 추위와 아픔을 넘어서는 안팎이 똑같고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 간의 소통, 편지와 만남이다. 펼쳐 읽으면 된다. 부끄러운 마음이 넘치는데 토닥토닥 따뜻한 위로가 전해진다. 이 정도의 관계를 하고 있는지, 위로가 되고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와 권정생님을 뵈려고 몇번을 애썼던 기억이 난다. 가까이에 계셨던 권오덕선생님께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아쉬움도 내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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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7-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안동에서 자라셨어요? 저도 안동이 고향이예요. 괜히 반가워서....교학사, 롯데리아, 떡볶이 골목, 신시장 , 구시장 등등의 냄새와 풍경이 생생하게 생각나네요. ( 스마일 중 ㅎㅎ )

JUNE 2015-07-2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교학사의 책냄새도, 신시장과 구시장의 골목도... 편지에 나오는 장소들이 철없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몬스터 2015-07-23 22:10   좋아요 1 | URL
와...반갑습니다. 일 년이 다 되었네요 안 가본지가... 그대로겠죠? 추억은 큰 재산인 듯해요. 반갑네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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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잔인한 훈련만을 강요하면서 아주 멋진 교육을 하는 것처엄 꾸며 보이는 일에 온 정신을 소모해야 하는 `교육 공무원`인 저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22쪽)

건강한 사람은 병든 사람의 괴롬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 자신의 고통이며, 어디까지나 그 한 사람만의 불행인 것입니다. 그 불행의 가장 큰 요소는 육신의 병 때문에 정신적인 병까지 앓게 되는 것입니다. (39쪽)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사전을 펼쳐 놓고 봐야 되니, 글 한 편 쓰는 데야 말할 나위 없지요. 그래도 자꾸 틀립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말로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60쪽)

자신이 왜 이렇게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못 배운 것도, 그리고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제 잘못이라면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런데도 역시, 책임은 제게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132쪽)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151쪽)

생산이라는 것, 소유라는 것, 그리고 내 것을 나눠 준다는 자선이란 말들이 쓸데없는 빈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가진 것을 `준다고`하지 말고, `되돌려 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생산한다는 말은 아예 버리고 `받는다`는 말이 옳겠지요. (188쪽)

요즘 젊은이들은 사물의 깊은 곳까지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의 분단 원인을 너무도 단순하게 취급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교육이 그랬으니 도리가 없을까요. 그중엔 진지한 젊은이도 있는데 금방 한계가 드러나고 말아요. 특히 가톨릭이나 교회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은 한결같이 획일적이고 모방적입니다. 개성이 뚜렷하지 못한 건 결국 그만큼 인간을 도외시한 때문일 것입니다. (204쪽)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 (207쪽)

요즘 자신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생각이 시시각각으로 엄습해 와서 정신이 흐트러집니다. 용기가 없었다는 것, 주체 의식이 약했다는 것, 무식에 대한 솔직성을 감추려 한 것, 지식인들의 흉내르르 내려 했던 것에 부끄러움이 가장 억울해집니다. 자신의 건강관리에 너무도 소홀했다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새삼 일어납니다. 환경과 여건이 그랬지만 언제나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 자포자기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일을 못 한 것이 죄스럽습니다. (214쪽)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보고 있듯이 아동문학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고 있으니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24쪽)

천지 창조 때부터 모든 목숨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고, 그 경쟁 속에서 항상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참(진실)이 아니라 힘이었던 것입니다. 최고의 고등동물로 자처하는 인간도 역시 힘에 의한 도전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268쪽)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넘치지 않게 필요한 만큼 고루 나누어 쓰는 인간 세상은 오지 않는 것일까요? 제가 그토록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래도 잃지 않는 한 가지 오기는 자신의 값어치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값어치를 너무 헐하게 내던지고 맙니다. 왜 그토록 고귀한 자신을 물건처럼 상품으로 만드는지 안타깝습니다. 노력보다 결과에만 마음을 쓰다보니 출세라는 저속한 계산을 하고 인간은 매몰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것보다 어렵고 고달픈 길입니다. (308쪽)

요새 와서 저도 세대 차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심각한 고민이란 정신적 고민보다 물질적 고민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들 시대에는 가난 자체가 오히려 정신적 힘이 되어 주었고 훨씬 건강했습니다. (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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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그림과 같이 열둘, 스물여섯, 서른넷, 서른아홉, 마흔둘, 쉰, 예순셋의 여자들의 팩트를, 나의 이야기처럼 다뤘다. 그림을 보면서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고, 글을 읽으면서는 또 다른 내가 듣고 말하는 거 같았다. 나는 지금 기억력이 조금 사라짐을 느낄 정도의 오십대를 지나고 있고. 그래도 아직 뭔가를 할 수 있을 거같은, 다만 시도하지 않을 뿐이라는 변명아닌, 그 쯤에 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게 성숙과 성장을 의미하는 건 아닐거다. 저절로 철이 드는 줄 알았다. 지나온 이야기는 데자뷰같고. 앞으로의 이야기는 분명 나도 겪을 내용이 들어있다. 이 책에서는 예순셋의 시간만 내 앞에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 중이다. 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낼건지. '힐링 미술관'과 '그녀의 시간'은 분명 닮아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와 연관된 그림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시간에서 훨씬 더 위로를 받았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글과 나와의 역동, 아주 사소하지만 글씨체와 배열, 작가의 글솜씨 또한 등등이다. 아주 쫀쫀하고 깊이있고 치밀하게 드려다 보게하여, 내가 피하고 싶어도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촘촘하게 지금의 나를 생각의 생각을 하도록 한 부분도 한목한다. 순전히 나의 선호의 따른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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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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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는 늘 과잉이거나 결핍이다. 과잉이면 허영이 되고, 결핍이면 자기협오가 된다. 그 어떤 경우이거나 잉여다. 그러니 거울을 본다는 것은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잉여를 본다는 의미다. (45쪽)

모녀가 슬픔을 함께한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같이 산다는 의미다. (67쪽)

여자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남자를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잠시 눈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랑 자체가 지속되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늘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72쪽)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나`사이의 소통이
끊어지면서 생긴다. (93쪽)

어른이 되어 회상해 보면 우리의 소녀 시절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소녀 시절에 이미 지금의 우리를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했기 때문에 더 꿈꿀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더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165쪽)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은 슬픔이라고 했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진을 보면서 애상에 젖는 것은 사진이 바로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슬픈 사진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찍은 것이다. (202쪽)

강한 남자란 근육으로 온몸을 갑옷처럼 싸서 내면이 전혀 가늠되지 않는 남자가 아니라, 약간 피로한 듯한 근육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내면의 고뇌가 엿보이는 남자다. 근육과 피로가 만든 음영이 이 남자를 강하고 지적인 남자로 보이게 한다. (231쪽)

중년이 바라는 노년의 삶은 이런 것이다. 부부가 마주 앉아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것. 남자는 책을 읽고, 여자는 뜨개질을 한다. 집 안은 정돈되어 있고 마당에선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일을 하다가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가 같이 낮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269쪽)

하지만 나는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많이 알고 있다. 아이 때문에, 양육비 때문에, 위자료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번거로워서 그냥 사는 것이다. 내가 이 웬수 때문에 이런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것이 설령 이혼이라도 웬수 같은 배우자와 함께 하기엔 너무 귀찮은 것이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데,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 굳이 이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혼하지 않고 살 때의 불행은 충분히 가늠된다. 하지만 이혼했을 때의 불행은 예측할 수가 없다. 많은 부부들은 예측 불가능한 불행보다는 예측 가능한 불행을 택한다. 예측 가능하다면 극복도 쉬울 것이다. 그러다가 혹여, 나중에 죽을 때쯤 돼서는 "당신에게 미안해"하면서 마른 손을 부어잡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289쪽)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라모가 사람 사이 소통에서의 비극은 말에 대한 오해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이해 못할 때 시작된다고 했다. 상대의 침묵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과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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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성경인물을 만난 '힐링미술관'에서 그들도 그랬구나, 그들도 아팠구나, 그들도 나와 같구나...

실수와 갈등, 고통, 아픔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그들에게서 지금의 나를 본다.

밑바닥을 치고서야 새로운 인식과 통찰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여지를 남겨두신 그분의 손길을 느낀다.

과거로 들어가 후회, 슬픔, 아픔으로 빠져드려는 감정을 현재로 끌고 오면서 자꾸만 그렇게 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한다. 이유와 왜를 붙여서, 운명과 우연의 틈에서, 아니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그렇게 해야지만, 그런 상황이 되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그럼 좀 더 나은 모습(?)이면 좋았지 않았을까..

자라면서 나와 연결된 사람과 환경에서, 내가 선택하고 조율할 수 있는 부분에서, 서로 괜찮은 쪽으로 나아갔더라면,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하면 할 말이 없지만... 돌아보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게으르고 모른 척하고 방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어찌어찌 그냥 흘러보내 버린 거 같아... 그런 기억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데, 힐링미술관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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