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구판절판


부부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해서 하거나, 도저히 부부관계가 힘들어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더욱 개연성이 높다. 전이감정을 일으키기 쉬운 사람들 즉 '높은 전이감정 경향성(high transference liabilities)'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다.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내면아이가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자연히 상대방을 탓하는 식으로 전이감정이 생긴다. -18쪽

불행을 되풀이하는 강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정한 불행의 반복성이 발견되면 그러한 행동을 멈추기 위해 자신을 설득시켜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려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불행을 반복하려는 행동을 멈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자신에게 이제 '스톱'이라고 외쳐야 한다. -48쪽

남녀가 서로를 낯설게 여기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 법칙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형적인 모습에만 끌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능력, 외모, 성격, 학벌, 집안 배경, 종교 등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78쪽

대인관계의 어려움, 배우자 선택의 혼란, 만성적인 부부 갈등, 가정 폭력, 중독, 아동 학대, 만성적인 가난 등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가족관계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은 우리를 세상으로 인도하며, 수많은 인간관계와 만남 속에서 중요하게 작동할 기대치를 형성한다. 그래서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아이는 세상을 살기도 전에 세상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 세상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갖는 아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기 쉽다. -92쪽

현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지성적으로 가해지는 학대이다. 이렇게 지적으로 학대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판단으로 내리는 모든 결정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쉽다. 늘 생각과 감정을 부정다해 왔기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어이 없이 사기를 당하거나 미신과 사교집단에 잘 넘어가는 유형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120쪽

어린 시절 부모가 부당하게 파괴적 권리를 행사하여 고통받은 자녀들은 이로 인해 죄책감, 분노, 수치심, 우울, 격분과 같은 감정들을 내면에 쌓는다. 이 자녀는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자신의 권리가 부당하게 착취되었다고 느끼고 무고한 상대에게, 즉 자신의 배우자 또는 자녀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방식으로 파괴적 권리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파괴적 권리는 세대 전수로 이어지며 다음 세대로 가정의 불행을 전수시킨다. -152쪽

매력남들은 대개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을 지닌다. 이런 존경과 열망은 아들에게 사회적 성취동기를 제공하며 유연하고 풍부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길러 준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은 신뢰와 안정감이 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높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연히 타인들에게 주목과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다. -176쪽

부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결혼생활에 가지고 온다. 방어기제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고통스런 감정을 해겨랳 주는 것이 아닌 무뎌지게 하는 임시 수단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191쪽

"이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을 보니 나는 분명히 나쁜 아이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분명히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야." 이러한 생각을 하는 아이는 상처를 더욱 깊게 입으면서 뿌리 깊은 수치심을 갖습니다. 가족치료사인 브래드쇼(John Bradshaw)는 수치심의 감정이 중독의 원이이라고 말합니다. 죄책감은 우리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지만 수치심은 자신 스스로가 실수라고 느끼게 합니다. 이런 수치심의 감정에 외로움, 슬픔, 불안, 두려움, 분노, 우울 같은 다른 감정이 따라붙습니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감정은 분노입니다. 상처를 받은 아이는 자기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믿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깊은 분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분노는 깊이 파묻혀 있다가 중독을 통해 표출됩니다. -196쪽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깨어진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내 생각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통의 출발이다.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자. 과연 자녀가 이야기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묵살하지는 않았는가. 언제나 내 말을 하려고, 내 생각을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언제나 내 말을 하려고, 내 생각을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훈계하고 소리치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들에게는 훈계하는 부모보다 경청하고 성찰하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진실한 소통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화가 났다는 것을, 부끄럽다는 것을, 외롭다는 것을, 힘들다는 것을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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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집중력과 지속력'으로 달리면서 '달리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약 왜 달리냐고 질문한다면, 달리고 싶어서라고 말하겠지요.... He said,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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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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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달리는 일" 사이에는 그처럼 서서히 권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불한 만큼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이 있었고, 열려 있어야 할 문이 어느 사이에 닫혀버린 듯한 폐쇄감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러너스 블루(주자의 우울)'라고 이름 붙였다.-29쪽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37쪽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 나간다. 그리고 일단 해제된 기억을 다시 입력할 경우에는, 또 한 번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한다. 물론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는 필요하다. 그러나 레이스를 눈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는, 근육에게 착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건 말이야.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펑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흔들림 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두어야 한다. -104쪽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128쪽

수면은 나날이 미묘하게 변화하고, 색이나 파도의 형태나 유속이 변해간다. 그리고 계절은 강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변모시켜 간다. 여러 크기의, 여러 모양의 구름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가는 사라져가고, 강은 햇살을 받아서 그 하얀 구름이 오가는 것을 어느 때는 선명하게,어느 때는 애매하게 수면에 비춘다. 계절에 따라서, 마치 스위치를 전환하는 것처럼 바람의 방향이 변화한다. 그 살결에 닿는 감촉과 향기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실감을 동반한 흐름 속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자연의 거대한 모자이크 속의 미세한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다 다리 밑을 지나는 강물처럼 교환 가능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140쪽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감은 떨쳐낼 수 없다. 한 순간 내 눈앞을 스쳐간 검은 그림자는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것은 지금도 이 몸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으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 큰 저택에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고 숨죽인 채, 집 안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교활한 도둑처럼. 나는 내 몸의 내부를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본다.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무엇인가의 모습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이 미로인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또 하나의 미로인 것이다. 도처에 어둠이 있고, 도처에 사각死角이 있다. 도처에 무언의 암시가 있고, 도처에 이중성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다. -202쪽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햇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228쪽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의 편린 같은 것이 보일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 상공에 덩그러니 떠 있는 무심한 여름 구름이 보일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선을 향해야만 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안쪽인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깊은 우물의 바닥을 보는 것처럼. 거기에는 친절한 마음이 보일까? 아니,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229쪽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258-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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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이 부르는 '언젠가는'를 몇시간째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꽃샘추위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상쾌한 길을 달리고 있는, 그저 묵묵히 달려가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작사, 작곡, 노래 : 이상은 "언젠가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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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삶과 시가 들어 있는 책. 한때 접시꽃 당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 후 오해를 샀던, 그 이유가 모두 들어있었다. 그래서 말을 하든지, 글을 쓰든지 뭔가로든 남겨야 한다. 그러나 이미 생긴 오해는 한참을 지나야만 이해할 수 있다.   

비가 왔다. 오가는 길이 멀었다. 옆차선의 차가 내게로 미끄러져 왔다. 아뿔싸, 한참을 추운데 떨며 서 있었다. 그냥가면 될 거 같은데. 이미 녹슬어 오래된 긁힌 자국까지 지금 생겼단다. 조금 지나서는 그건 아니고 이쪽이란다. 이말과 저말을 바꾸어 가며하더니, 경찰서 가자 하니, 그제야 꺽인다. 이상한 사람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더니, 뻔히 잘못한 걸 알면서 시침을 떼다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느리게 왔으니 망정이지. 목덜미라도 잡고 내려야 할까, 그저께 삔 발목을 디밀어야 했던 걸까. 이미 알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건 아무리 소리쳐도 안된다. 오해의 여지가 없다.

오해와 이해. 꽃은 비에 젖지만 향기는 젖지 않는다. 아무리 예쁜 보자기에 생선을 쌌더라도 냄새는 숨길 수 없다.

기분나쁘다. 분명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을거다. 생각하니, 화난다. 

주차하고 아메리카노와 핫도그를 샀다. 얼마 이상되니 뽑기한장을 줬다. 핫도그와 콜라가 당첨되었다.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비오는 날은 내가 좋아하는 날이다. 내 특별히 용서하고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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