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전하여 공부해 보고 싶은 '가족세우기' 심리치료법이다. 개인의 문제를 영혼의 언어와 대리인을 통하여, 여러세대로 부터 전수되어 온 가족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여, 개인의 느낌과 신념이 변하여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치료법이다. 진실된 언어에는 힘이 있다. '한 사람이 믿고 있는 진실이 실제와는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p35)' 우린 서로에게 아주 많이, 자주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있다... 진실이라고 여기면서... '진실에 대한 정의, 혹은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물음은 마치 사막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모래더미나 다를 게 없다. 매일 매일 진실의 모래 물결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어떤 때는 개인적인 진실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모래성을 이루기도 한다......그와 같은 한 알 한 알의 모래들이 곧 단순한 진실들이다. 우리가 세운 구조물이 소멸하고 나면 남는 것은 낱낱의 모래뿐이다.......인류 공통의 가장 단순한 진실은 바로 사랑이라는 진실이다.(p9)' 지금 여기서 스토리를 진실처럼 말하지 않기. 머리가 이해하고 가슴이 느끼는 영혼의 언어 사용하기. 어렵다...          

2. 명동에 갔다. 그곳에 가면 길을 많이 잃는다. 그래도 걷기에 딱 알맞는 운동화를 샀고, 충무김밥을 먹었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층창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유독 외국인들이 많았다. 비가 조금 오다가 해가 나왔다. 신발끈을 매고 호수공원에 갔다. 초겨울같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옷깃을 여미고 스카프로 감싸고 가볍게 걸었다. 파카를 입고 와야 했다. 바람을 뒤로하고 걸으면, 내가 갈 곳과 점점 멀어져갔다. 바람과 맞서서 걷기도 했다. 균형을 이루는 것, 머리와 가슴, 진실과 스토리, 나의 앞의 바람과 뒤의 바람, 해와 비, 외국인과 내국인, 겨울과 봄, 우리집과 호수공원, 걷기와 타기, 사랑과 미움, 소통과 막힘, 영혼의 말과 입술의 말, 너와 나 등등. 양극으로 치달리든지, 이거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이끝에서 저끝까지 이어져 있는 어느 지점에 있는거다. 이게 지금의 나의 진실이다.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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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세우기 - 버트 헬링거의 놀라운 심리치료법
존 페인 지음, 풀라 옮김 / 샨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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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주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가 바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8쪽

어린 시절, 부모의 한마디는 어린 아이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부모가 베풀어주는 사랑과 양육은 아이로서는 붙잡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의 끈과 같다. 당연히 부모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 그 사랑과 인정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아이의 마음에 새겨진다. 자연스러운 생존 본는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학습한 내용은 어른이 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때 하나의 모델로 기능한다. 이 모델은 흔히 우리로 하여금 진실과 직면하기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상처 그리고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입힌 상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스토리를 꾸미도록 우리를 종용한다. 그러니 만큼 우리가 해온 온갖 거짓말과 스토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열망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보존은 곧 생존의 확신으로 되돌아온다. 이 세상에 어떤 피조물이 사랑 없이 살 수 있겠는가?-25-26쪽

하지만 거짓말과 스토리가 사랑의 보존이라는 열망에서 기인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가 한 가지 더 있다. 우리가 더불어 살다시피 해온 거짓말. 그리고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서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했던 거짓말과 스토리는 결국 책임 회피라는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26쪽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나 느낌을 제대로 살피지 않을 때, 우리는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55쪽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진실. 증류하고 남은 진실이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패턴을 놓아버리지 않고 꽉 움켜지고 있을 때마다, 그릇된 행위를 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혀 있을 때마다, 그 가해자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명료성을 잃어버리고 사물이나 상황의 실제 모습을 온전히 볼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다. -77쪽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때 혼돈에 빠진다. 그런 까닭에 마음은 언제나 앎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 논리와 합리의 잣대로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마음은 이성적인 분석을 시작하고 심지어 진실도 담겨 있지 않으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87쪽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행위는 책임을 수반한다. 내가 한 행위로 인한 죄책감은 나 스스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나 내 몫의 죄책감을 감해주거나 대신 지고 갈 수 없다. 또 자신의 짐을 당당히 지고 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엄성과도 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나는 내 몫의 죄책감을 혼자서 지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존엄성'을 잃지 않는 태도이다. -116쪽

영혼의 언어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아이처럼 귀한 선물을 저에게 주셔서 고맙습니다")을 구체화시켜 준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상황을,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남은 진실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시 말해 영혼의 언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하지만'과 같은 낱말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는 언제나 진실과 책임감이 결여된 스토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이라는 낱말을 가운데 넣어 둘로 나눈 문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두 문장 중 한 문장만이 진실 또는 실제의 모습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하지만'으로 나누어진 문장은 약간의 진실만을 담거나 전혀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에 대한 존경심은 별로 없어요" 같은 문장을 보라.-193쪽

여기서 나는 중독과 관련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고 싶다. 만일 당신이 지금 약물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다면, 우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서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가?" 어쩌면 팀의 사례를 읽어가는 동안 이미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을 수도 있다. 혹시 답을 찾지 못했다면 종이 위에 가족 지도를 그려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누가 가족에게 속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적어본다. 즉 이른 죽음을 맞았거나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ㄷ르에 대해서 당신이 알고 있는대로 그 이름과 관련 상황을 적어본다. 그런 다음, 각각의 이름을 차례차례 보면서 당신 몸에서 어떤 반응이 느껴지는지 잘 살펴본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아주 효과적이다. 당신이 유산처럼 물려받은 상실의 슬픔과 당신 이전의 세대에서 시작되어 죽 이어져온 트라우마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237쪽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줄 의사가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방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되묻고 싶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상대방이 우리가 기대한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거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별 차이는 없다. 상대방의 태도나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정직하게 말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곧 그릇된 행위로 그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명료한 상황 설명이 어디에 있는가? 이미 잘못한 일을 놓고, 무엇 때문에 온갖 스토리와 합리화를 그 아래에 갖다 붙이는가? 어쩌면 더 많은 변명을 늘어놓고 더 많은 말을 쏟아낼수록 상대방에게 용서를 받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변명이 길수록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우리의 사과를 받아줄 가능성도 줄어든다. -276-277쪽

우리가 스토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좀더 나은 이유를 댈수록 죄책감이 줄어들고 '나쁜 아이'로 낙인찍히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바로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 같은 두려움의 원인은 가깝게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고, 멀게는 몇 세기 동안 인류의 의식을 지배해 온 종교적인 원죄 의식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으며, 심하면 집단에서 쫒겨날 수도 있다는 프로그램 말이다. 내쫒음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상관없이 가장 지독한 벌이다. 원시 사회든 현대 사회든 가족이나 기타 집단으로부터 쫒겨난다는 것은 최악의 처벌로 간주된다. -277쪽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왜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온갖 스토리를 지어내곤 한다. 그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 이러저러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며 자신의 그릇된 행위를 합리화하려고 든다. 나름대로의 타당성까지 갖춘 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속한 죄책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죄책감 역시 우리를 떠나지 않게 된다. 마치 그림자처럼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282쪽

치유의 길 위에서 우리는 대상화라는 기술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대상화란 "이것이 곧 나"라고 하는 동일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상황과 나 혹은 스토리와 나를 떨어뜨려놓고 볼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상황을 대상화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익히는 것이나 진배없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들은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기도 하지만 일종의 안전함을 느끼게도 만든다.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곧 현재 삶의 환경을 바굴 필요도 없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음을 뜻한다. 단지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에 스스로 발목을 묶고서 "그러므로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견지하면 그뿐이다.-285-286쪽

치유의 길은 전적으로 정직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은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에서 정직함이란 실재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영역에 대한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어디까지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고 어디서부터가 다른 사람의 몫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일에 끼어들 때마다 그에 합당한 핑계를 찾아낸다. 특히 부모님과 관련된 일인 경우에는 더하다. 예컨대 "하지만 저는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같은 표현을 보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하지만'이라는 마술의 언어를 통해서 책임을 전가하려고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이라는 낱말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모두 스토리에 불과하다. 즉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라거나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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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주제를 두고 동양화와 서양화의 관점으로 주고 받은 두 사람의 글을 읽으며 끝없이 추억에 잠겼다. '만약-------', 아련함이 밀려왔다. 받지 않을, 벨소리만 가는 전화도 걸었다. 삶의 한 순간, 함께 한 그 곳, 그 시간 모두가 그림이리라. 찰라의 그림들은 추억의 사진첩에 들어있다. 진정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일까. 그대가 원했던 건 무엇일까. 알듯 모를 듯 하다. 어쩌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게 많다. 해석자의 손과 입에서 다시 태어나는 그림들도 있으니,...         

 

*p162  존 에버렛 밀레이, [예]. 캔버스에 유채.  : 가장 인상적인 그림, 제목 또한 '예' ,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은 "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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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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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 '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림과 그리움은 밑말이 같아서 한 뿌리로 해석하는 분이 있더군요.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라고 멋 부린 말도 귀에 들리고요. 그리움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겠지요.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일 테지요. 신선한 과일을 그린 정물화는 한 입 베어 물고 싶고, 풍광 좋은 산수화는 가서 노닐고 싶고, 아름다운 여인 인물화는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이 깃듭니다. 그림은 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드러난 자취지요. 그린 이만 그런게 아닙니다. 보는 이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 -8-9쪽

첫사랑은 봄날의 첫 개화처럼 설렘과 떨림과 오랜 기다림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고, 떨어진 꽃잎처럼 더 이상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두고두고 아프지요.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애뜻함을 안고 사나 봅니다. 장소라면 이미 그곳을 떠나와 있을 테고, 시간이라면 이미 지나버려 되돌릴 수 없이 되엇을 것입니다. 어릴 적 친구라면 모습이 많이 변했을 것이고, 천진난만한 아이였다면 이미 자라서 때 묻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 어느 하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가슴 저미도록 그리운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지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미완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늘 아쉬워한다는 뜻일 거예요. 완결되지 못한 빈자리는 계속해서 소록소록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48-49쪽

자신의 생애가 얼굴에 있고 거울에 생애가 비치는데, 백발만 어디로 보내란 말입니까. 흰 머리와 함께 우리는 늙어갑니다. 마침내 체념이 오고, 달관이 따릅니다. '체념諦念'이 묘한 말입니다. '단념'과 '득도'의 뜻을 아루릅니다. 버려서 깨닫는 이치가 노장에야 비로서 찾아 오는데, 젊어서 얻지 못한 이 각성이 늙은이의 마지막 특권입니다. -130-131쪽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라고 했던가요? 무작정 물가에 철퍽 주저앉은 그 작은 일탈에도 옷이 젖으면 어쩌지, 속옷이 젖으면 어쩌지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들에게는요, 차라리 속수무책이라는 네 글자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답니다. -193쪽

네, 취향은 남이 판단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취향의 교감이 최고조일 때 관계의 만족도는 단연 최상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폴 사강의 소설 속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물었겠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18쪽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은."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92)-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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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를 된다면 꽃샘추위 덕이다. 온종일 책. 음악. 맥주. 커피. 쿠키. 초콜렛과 함께 했다. 매일 대하고 있는 '가족의 두 얼굴'을 통해 대차 대조표를 만들어보고, 주고 받은 '관계 통장(p240)'도 확인했다. 힘을 갖기 위해 노력했던 일, 복수로 되갚은 일, 전투와 전투 속에서 함께 했던 일. 각자의 원가족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함께 부딪히며 살아왔던 시간 속에서 위태로웠던 순간들, 지금까지도 아웅대는 일이 있지만, 다행인 건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는 점이다. 몇십년을 지나도 여전히 양말 벗어 놓는 일, 책장에 옷 걸어 두기, 잠자는 태도, 탐식, 시시때때로 하는 전화, 큰소리로 말하는 거, 쓸데없는 물건 쌓아두기, 사용하지 않는 물건사기, 파카와 운동화에 대한 욕심, 과도한 애정표현, 등등이 있다. 이러한 맥락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부모에게서 받고 싶었던 물건, 애정, 인정받고 캐어(care)받고 싶었던 부분이다. 지구가 멸망하거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그냥 봐주면 된다. 처음엔 잔소리와 분노(?) 했지만, 이보다 잘하는 게 훨씬 더 많으니까... 난 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을까.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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