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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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는 움직씨이고 '그립다'는 그림씨입니다. '묘사하다'와 '갈망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지요.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림과 그리움은 밑말이 같아서 한 뿌리로 해석하는 분이 있더군요.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다"라고 멋 부린 말도 귀에 들리고요. 그리움은 어디서 옵니까. 아무래도 부재와 결핍이 그리움을 낳겠지요. 없어서 애타고 모자라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은 부재와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일 테지요. 신선한 과일을 그린 정물화는 한 입 베어 물고 싶고, 풍광 좋은 산수화는 가서 노닐고 싶고, 아름다운 여인 인물화는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이 깃듭니다. 그림은 그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드러난 자취지요. 그린 이만 그런게 아닙니다. 보는 이도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그립습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공감은 그린 이와 보는 이의 욕구가 겹칠 때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 -8-9쪽

첫사랑은 봄날의 첫 개화처럼 설렘과 떨림과 오랜 기다림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고, 떨어진 꽃잎처럼 더 이상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두고두고 아프지요.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애뜻함을 안고 사나 봅니다. 장소라면 이미 그곳을 떠나와 있을 테고, 시간이라면 이미 지나버려 되돌릴 수 없이 되엇을 것입니다. 어릴 적 친구라면 모습이 많이 변했을 것이고, 천진난만한 아이였다면 이미 자라서 때 묻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 어느 하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가슴 저미도록 그리운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지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미완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늘 아쉬워한다는 뜻일 거예요. 완결되지 못한 빈자리는 계속해서 소록소록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48-49쪽

자신의 생애가 얼굴에 있고 거울에 생애가 비치는데, 백발만 어디로 보내란 말입니까. 흰 머리와 함께 우리는 늙어갑니다. 마침내 체념이 오고, 달관이 따릅니다. '체념諦念'이 묘한 말입니다. '단념'과 '득도'의 뜻을 아루릅니다. 버려서 깨닫는 이치가 노장에야 비로서 찾아 오는데, 젊어서 얻지 못한 이 각성이 늙은이의 마지막 특권입니다. -130-131쪽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라고 했던가요? 무작정 물가에 철퍽 주저앉은 그 작은 일탈에도 옷이 젖으면 어쩌지, 속옷이 젖으면 어쩌지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들에게는요, 차라리 속수무책이라는 네 글자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답니다. -193쪽

네, 취향은 남이 판단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취향의 교감이 최고조일 때 관계의 만족도는 단연 최상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폴 사강의 소설 속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물었겠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18쪽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은."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92)-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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