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절판


자식이 실패한다면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일까? 부모의 헌신과 격려 또한 그저 괜한 짓이 되고 마는 것일까? 만약 자식이 실패 앞에서 부모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면 그동안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 준 것은 사랑도 헌신도 아닌 그저 '투자'였을 것이다. -31쪽

만약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그것은 내가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때도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어야 한다. 부모의 기대와 나의 욕구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절충할 필요가 있다. 나의 선택에는 무기력하게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기대에 존중과 이해를 보내면서도 나의 상황과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 또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48쪽

가족 간의 대화는 바로 그 순간만의 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간의 말이나 행동은 단지 현재의 맥락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해 온 과거의 경험을 포함한다. -67쪽

우리가 가족 간의 관계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가족 관계라고 해도 어떤 상처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 또 그것을 밖으로 내보일 준비가 되어 있느닞 아닌지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감각으로 각기 다른 모양의 상처를 느끼기 때문이다. 설사 그 상처가 가족이 함께 겪는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경험하고 느끼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대가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 버린다면, 친밀한 가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자주 그러고 있다. -73쪽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난 후의 느낌이 언제나 부족하고 무언가 불만족스럽다면 그렇게 느끼게 된 시작이 언제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94쪽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못난 부분과 잘난 부분을 함께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의 균형을 잡으며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왕자, 공주의 환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과정을 잘 헤쳐 나갈 수가 없다. 나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진 '어른'이 되는 것을 미룬 채,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면서 영원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여기면서도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온 신경이 쓰인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애초에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 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시작된 일일 것이다. -103쪽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마땅히 내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았을 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오래 반복되었을 때 분노는 '원망'이 된다. '원망'이란 어떤 감정이나 사건을 되풀이해 생각함으로써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신적 과정이다. 이것을 원망하는 당사자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자꾸만 상황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간다. 누군가는 그래서 원망을 '독은 자기가 마시고 병은 다른 사람이 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원망은 원망을 품은 사람만 힘들게 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33쪽

가족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과, 그래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간절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는 안타까운 행동을 계속 한다. -163쪽

누군가 나의 자아와 긍지에 흠집을 내고 있는데도 그것을 묵인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그들이 나를 함부로 하도록 내가 허락한 것이다. -173쪽

부모가 아이에게 불행을 호소하면 아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또 가까운 사람에 대한 흉을 지속적으로 듣다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185쪽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마치 창문을 열고 방안의 탁한 공기를 신선한 공기로 바꾸는 것과 같다. 고여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받아들일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된 나의 생각을 볼 수 있다. 또 나의 마음을 열어 놓은만큼 상대의 마음도 그만큼 더 잘 보이게 마련이다. -214쪽

반복되는 가족과의 부정적인 경험은 우리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봤다면 더 이상은 자신을 상처 입는 상황에 내버려 두지 말자. 이것은 '가족'이라는 이름 전부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어떤 관계를 포기하라는 말이다. 더 이상 나아질 가망이 없는 관계가 누구와의 것인지는 아마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족 관계를 연애 관계라고 생각해 보며 조금 더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 노력이 언제나 수포로 돌아간다면 그때가 바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226-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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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의 부족한 지식때문인지, 번역때문인지 난해한 문장들이 많았다. 아는 만큼 읽고 이해했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책을 펼쳐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글을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또 다시 쓰는 것이 가장 위대하다. 최소 '0.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면 이기는 싸움(p276).'이라고 말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글을 쓸 때의 상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겨우 서명이라도 하는 인구를 식識자者라고 할때, 그들은 총 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단다. 그런데, 푸시킨이 [대위의 딸]을, 고골리가 [죽은 혼]을, 도스토엡스키가 [가난한 사람들]을, 톨스토이가 [유년시대]를, 투르게네프가 [사냥꾼의 수기]를 썼다. 그들이 있었기에 인류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살아남을 거다. 

2)미루다, 미루다, 드디어 한번도 입지 않는 옷은 몽땅 버렸다. 잘 버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많이도 가지고 있었다. 미련없이 버렸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진 물건이나 만나는 사람이나 마음이 조금씩은 가 있다. 가끔씩 버릴 필요가 있다. '홀가분'하다.     

3)책읽기는 계속 할거다. 변화의 속도가 느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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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구판절판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접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거지반 카프카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42쪽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5쪽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반복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75쪽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나고, 문학을 잃어버린 순간 혁명은 죽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문학을 폄하하고 문학부를 대학에서 추방하려고 할까요? 왜 문학자 스스로가 문학을 이렇게까지 업신여길까요? 그것은 바로 문학이 혁명의 잠재력을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14쪽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는 책을 읽거나 써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죽임을 당하면 곤란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더 좋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명한 전제가 아닙니다. 읽고 쓰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었던 날들-그것은 역사상 실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나날, 우리의 장소가 다소라도 그런 자유를 주고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라 부를 만합니다. -128쪽

지금까지 우리는 장황하게,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폭력은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188쪽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 것입니다. 즉 고쳐 쓰는 것, 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묘한 사태가 떠오릅니다. 읽는다는 것에서 '믿는다는 것'이 어디까지고, 읽는다는 것은 용해되어 간다는 것임을 몇 번이나 묘사했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읽고 있는 자신과 세계가 동시에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쓴다는 것에 대해서도 '신앙'은 사라집니다. 그 한 행을 믿지 않는다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쓰는 것'은 지우고 고쳐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을 지우고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행을 쓸 때 자신은 그것을 정말 믿는 것일까요? 한 행을 지울 때 자신은 그것이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믿지 않는다면 고쳐 쓸 수 없지만,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信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 같이 완전히 사라집니다.-236쪽

최초의 러시아 인구 조사가 1851년에 이루어졌으니까요. 그것에 따르면 러시아제국의 인구는 4000만 명이었습니다. 대충 양보하여 10퍼센트인 400만 명이 도스토엡스키를 읽을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400만 명밖에 자신의 사인을 할 수 없었다는 무리한 상황에서 [죄와 벌] 같은 작품들을 차례로 쓴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단적으로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어로 문학 같은 거 해봤자 소용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파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요?-273-274쪽

여러분은 도스토엡스키나 톨스토이가 소설을 썼던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에 비해 자신들은 팔리지 않는다, 문학이 놓인 환경이 좋지 않다, 시대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지금 들었던 모든 위대한 이름에 대한 모욕입니다. 훨씬 가혹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니까요. 그래도 창의와 여러 가지 궁리를 거듭하며 말을 계속 자아내왔으니까요. 터무니없는 노력을 언어에 쏟아부어왔으니까요. 왜일까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합니다. 문학이 살아남고, 예술이 살아남고, 혁명이 살아남는 것이 인류가 살아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275쪽

예술가에게 예술은 본질적으로 그 과정만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제작하고 있을 때, 자신의 몸도 마음도 함께 부서지고 변용해가는 과정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다느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느니 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295쪽

저자가 말하길, 이 책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책인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다는 것이고, 책을 고쳐 읽는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며, 책을 고쳐 쓴다는 것은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이고, 법을 고쳐 쓴다는 것은 곧 혁명이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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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들의 입시때문에 많은 것을 경험한다. 우리 부부는 예전과 달리 성숙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 흐르듯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조금 어처구니 없는 건 공부하고 싶은 학과에만 너무 올인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학교가 우선인지, 학과가 우선인지가 앞선다. 어떤이들은 학교에 들어가는 게 먼저라고 하는 이도 있다. 수시결과를 보니 다른 과를 지원했다면 합격증을 받았을 건데... 아쉽기도 했다. 아들 왈, '내가 좋아하는 과도 아닌데 어짜피 다니지도 않을거다.'라고 위로해 줬다. 인서울부터 지방대, 해외까지 넓혀가고 있다... 놀란 건 대학교가 이리도 많다니... 

 

2. '가족을 튼튼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 심리학적으로 입증된 여섯 가지 비결(p31)'

1)헌신(commitment),  2)감사와 애정(appreciation & affection),  3)긍정적 커뮤니케이션(positive communication),  4)함께 보냄(time together),  5)영성적 성장(spiritual well-being),  6)스트레스와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ability to cope with stress and crsis) 

-이것이 튼튼한 가족이 공통적으로 지닌 여섯 가지의 특징이다. 매우 간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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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가족 만들기
Nick & Nancy 외 지음, 제석봉 외 옮김 / 학지사 / 2004년 10월
품절


그러므로 헌신은 애정의 특별한 종류이며, 흔들리지 않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의식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나는 당신이 누구이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떻게 느끼든 당신을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72쪽

우리가 진실되게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인정이다. 우리가 집안을 가꾸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벌기 위해 수고하는 것은 배우자가 인정해 주고 감사해 하기를 바라서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한 일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치!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거나 감사를 표할 때, 그 속에는 "당신은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 당신의 좋은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것은 강력한 메시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자기-가치'(self-worth)가 강화된다. -81쪽

우리는 생일이나 기념일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좋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그러나 최상의 선물은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포장을 잘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이 당신의 삶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삶의 일부가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그야말로 고귀한 선물이 된다. -170쪽

"큰 참나무를 쓰러트리는 건 세차게 휘몰아치는 폭풍이 아니라 작은 벌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삶에서 거대한 폭풍이나 위기는 잘 뚫고 나가면서,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을 냄으로써 행복과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닌가?-211쪽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헌신'과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면, '애정'이 깊어지고 '헌신'이 높아진다. '영성적 성장이나 복지'는 스트레스나 위기대처, 상대방에 대한 가치부여,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 서로에게 헌신하려는 마음을 강화시켜 준다.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257-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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