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만들고 당신이 키워온 두려움에 대면하라. 그때 당신은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책뒷표지에 크게 적힌 글을 읽으면서 내가 키워온 두려움을 하나씩 직면했다.

최근 본 연극 'liar liar', 듣고 있는 이적의 노래 '거짓말거짓말거짓말', 톰새디악의 글 '두려움과의 대화'는 묘하게 어울린다.

보여주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또한 거짓일까.

뭔가를 대하기 전 올라오는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또 내가 키워낸 두려움이 나를 넘어뜨리기까지...

담양 죽녹원과 소쇄원을 다녀왔다.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대숲의 오솔길을 거닐며 머물고 싶었는데 사람들에 치여 몰려서 흙먼지 일으키며 왔다.

사진만 보고 예약한 예쁜 한옥 펜션에서 박노해의 사진집을 챙기고 사진에세이 다른길과 이권우의 여행자의 서재까지 챙겨가서 읽고 싶었는데, 보자마자 되돌아왔다. 직접 보지 않는 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말을 믿으라고, 거짓말이고 거짓이다...

 

그러지 않을까가 그렇게 되어버릴 때 맞서서 다시 시도하고 돌아오고 극복하는 것, 내속의 진리의 말에 귀 기울리고 그 목소리를 따라 사는 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진리의 입을 아직까지는 막고 싶고, 귀도 막고 소위 '편하게' 살고 싶다. 불편이 진리라는 말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 우리는 연대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 공유해야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거다... 콕콕찌르며 전해주는 진리의 말, 불편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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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의 대화 - 돈만 외치는 망가진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나’로 사는 법
톰 새디악, 추미란 / 샨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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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학살, 탐욕, 경제적 불평등, 환경 위기, 인종주의, 노예제도, 집단 내 괴롭힘, 학교 총기 난사 사건 같은 모든 문제는 사실 단 하나의 근본 원인, 바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실재reality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근본 원인이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신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경쟁적이고 부패했다는 이야기, 우리가 서로의 형제자매가 아니라는 이야기, 모든 창조물과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이야기들 말이다. (72쪽)

성장과 수익을 위한 문화의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타적인 노력을 부정적인 용어들로 표현하곤 한다.-비非영리, 비非정부 기관이라는 말이 이 대표적인 예이다.-마치 같은 인간을사랑하거나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며 공동체에 봉사하는 일이-아주 이득이 많은 일임에도 불구하고-`비영리`인 것처럼 말이다. (133쪽)

모든 것이 교육에 달려 있다. 우리의 행복은 교실의 수업 계획에 달려 있고, 우리의 경제는 교육이 빚어낸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더 잘해야 한다. 표준적인 학생은 아무도 없다. 모든 학생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펼쳐보이게 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의 배움은 새로운 사실들을 머릿속으로 부어넣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교육이 하나의 열쇠가 되게 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않게 하자. 인간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우리 안에 늘 있었던 무한 원인Infinite Cause, 신성의 불꽃, 천국 그 자체를 여는 열쇠 말이다. (216쪽)

문제를 피하고 싶은 욕망, 고통을 피하고 싶은 바람, 바로 그것들에 대한 우리 문화의 뿌리 깊고 파괴적인 중독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시련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이 단련이 없다면 우리의 끝은 무딜 뿐이다. 우리는 감각을 무디게 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약을 복용한다. 현실을 무시하기 위해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슬픈 사실은 윌가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 산만한 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여야 한다. 불안할 때 우리는 뭔가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 행복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알기 때문에 분리와 상실의 고통이 주는 유익한 힘을 받아들인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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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사람들은 계속 타고, 복잡했다. 기사님은 아주 조용히 다음 차가 바로 뒤에 올건데 등등 중얼거리며 천천히 운전했다. 2012년에 발급받은 면허에 관한 내용이 사진과 같이 붙여져 있었다. 다른 버스와는 달리 끼어들기도, 재촉하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애만 태우는 거 같았다. 그분이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책읽기도 이와 같다. 특히, 시 읽기는 집약적으로 축적된 새로운 경험들을 미리 맛보는 거다. 시를 읽는 게 이처럼 괴로울 줄은 몰랐다. 오감이나 오감을 통합한 감각을 사용하기 보다는 주로 시각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의 옷을 벗고, 내부의 깊은 곳과 막 닿으려는 노력, 사물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 부여, 부여잡은 찰라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 순간, 이미 사라지고 죽은 그 차이와 간극을 최대로 줄이고 표현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시인들을 철학자의 마음으로 읽었다. 그들이 표현한 언어는 생생히 살아 숨쉬어 답답하게 했다. 불편하게 했다. 차라리 경험하지 못했다면 불편하지 않았으리라. 

오늘 아침 상황이 불편했던 것은, 대부분의 시내버스는 시간에 맞춰 시내를 질주하고 머리를 아무대나 디밀어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데려다 준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버스 안에서는 다른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기에, 하지만 운전자는 아직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했기에 자기만의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오늘 시를 읽으면서 느낀 불편감은 경험이 좀 있다는 의미이고 시각을 떠나 오감을 연결한 감으로 읽으려 애썼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관계에서 관심과 유혹의 자세를 자동적으로 취하고 있는 나를 확인했다. 북콘서트를 연다는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시집을 낸 친구의 글에 아는 채를 했다.

시는 과거를 돌아보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게 하고, 현재를 반성하고 조금씩 나아지도록 힘을 준다. 미래를 꿈꾸며 다짐하게도 한다. 결국은 타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라는 연대를 통하여 "활동하는 주체(264쪽)"가 되어 단독적인 삶을 사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휴유~ 읽으면서 짬짬히 기록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각각의 행간에서 더 많은 걸 느꼈는 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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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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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사유는 낮이면 낮이고 밤이면 밤으로 이분법적이고 논리적으로 작동하지만, 여성의 감수성은 모든 시간이 어느 정동의 밝음과 어느 정도의 어둠이 공존하는 것으로 경험합니다. 이처럼 모순이란 바로 차이 혹은 타자와 공존하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삶의 중요한 대목은 대부분 논리적이기보다는 애매한 것입니다. (79쪽)

내 자신이 타자의 타자라는 사실, 이로부터 바흐친은 우리 자신이 타자가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모든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존재하는 나의 바라보기, 앎, 소유의 잉여는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가 갖는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118-119쪽)

누군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외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유래한 겁니다. 그러니까 "연애는 자유"라고 할 수 있지요. 문제는 님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 나에게 님의 자유는 치명적인 데가 있습니다. 님의 자유에는 다행히 나를 사랑할 수도, 혹은 불행히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님의 자유`는 타자란 나로 환원되지 않는 그 만의 고유한 사유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타자의 타자성을 전제하는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184쪽)

타자에게서 느껴지는 아와의 다름, 그것이 바로 차이difference입니다. 그러니까 타자를 낯선 존재로 느낀다는 것은 그로부터 차이를 느낀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와 관련된 한가지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타자가 반드시 타인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풀도, 꽃도, 바위도,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타자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239쪽)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세계 혹은 타자들과 직접 부딪쳐야만 합니다. 설령 체제가 제공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계와 직접 부딪치면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제스처가 나의 삶에 어떤 행복과 힘을 주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물론 모방하고 있는 제스처를 시험해본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흉내 내고 있는 제스처는 스펙타클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고, 당연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기능을 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활동하는 주체"가 되는 순간, 우리에게 붙어 있던 제스처들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264쪽)

세계의 모든 것은 불가능한 교환, 그러니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겁니다. 들판에 핀 이름 모를 들꽃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애무하는 한 줄기 바람도, 하늘을 여유롭게 떠다니는 구름도 모두 그렇습니다. 오늘 본 들꽃은 작년의 들꽃이 아니고 내년에 필 들꽃도 아닙니다. 지금 맞고 있는 한 줄기 바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솜사탕처럼 뭉글거리는 저 구름을 다시 보는 일도 아마 영원히 없을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단독적인 것, 그러니까 교환 불가능한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 우리와 함께 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번쭌인 소중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단독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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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에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274쪽)" 사전적 의미의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뜻이다. 좋은 시대는 찬란하고 완벽했던 시대였다. 너무 완벽해서 사람들은 불안했다. 저자는 100년 전의 좋은 시절을 소개하면서(실제의 내용들은 나쁘고 슬프고 아프고 걱정과 불안이 더 많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지금의 불안과 불확실, 불편감 또한 삶의 과정이고, 인간만사 새옹지마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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