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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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당도한 바람으로 머리채를 묶은 후
당신 무릎에 머리를 대고 처음처럼
눕겠네 꽃의 은하에 무수한 눈부처와
당신 눈동자 속 나의 눈부처를
눈 속에 모두 들여야지
하늘을 보아야지
당신을 보아야지
花, 飛, 花, 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

-[花飛, 그날이 오면]중에서(11쪽)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처럼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선지의 비탈을 한 칸씩 짚고 오르듯 후후 숨을 불며.
햇빛 달빛으로 욕조를 데워 부스러진 데를 씻긴 후
성탄 트리와 어린양이 프린트된 다홍빛 담요에 당신을 싸서
가만히 안고 잠들었다 깨어난 동안이라고 해야겠다.

-[이런 이별]중에서(19쪽)

나는 알 수 없어요. 기억이 사라지는 것과 몸이 사라지는 것. 둘 중 어느것이 덜 잔인한지.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남은 생이 얼마건 상관없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지 내가 결정한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타락천사, om 12:00]중에서(39쪽)

방금 내가 만진 시간, 그거, 당신이었지요?

내가 만진 시간, 당신

을 사랑하는 일

에 정성을 다하는 것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이것이 나의 신앙

-[게이트리스 게이트]중에서(44-45쪽)

이 순간이 전부인 게 어때서?
사랑이 변하는 게 어때서?
지금 이렇게 전부 주고 싶은데
내 전부를 주어 당신을 활짝 꽃피우고 싶은데
사랑이 아니라면 뭐겠어?

-[om 4:00, 사랑이 변하는 게 어때서?]중에서(92쪽)

얼마나 다급히 너에게 가 닿고 싶으면
화살 같다고 못하고
기도가 화살이라고 쓰는가.

내 기도는 화살,
네가 맞을지도 모르는 화살을 쫓아가
쪼개려는.
너를 꼭 껴안고 내 등을 내주어
먼저 화살을 맞으려는.

-[화살기도]중에서(111쪽)

인연 맞는 때가 오면 다시 만날 거예요. 사람으로건 사람 아닌 것으로건 숨결 있는 모든 세상 어느 작은 조각으로든 하아, 강가 모래 속 반짝이는 한 점 비늘 같은 당신을 나는 알아챌 겁니다. 가만히 당신옆으로 가 한 손을 잡을 거예요. 그때 당신, 나를 알아보길, 왔군요...... 그래요......

-[보칼리제, om 0:00]중에서(158-159쪽)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그 나무 아래서
꽃잎을 묻어주는 너를 본다

지상의 마지막 날까지 너는 아름다울 것이다
네가 있는 풍경이 내가 살고 싶은 몸이니까

-[花飛, 먼 후일]중에서(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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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게 나와 있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욕망과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한 사람이다. 견고하고 차이가 있는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오랜 시간으로 좁힐 수 있는 기다림을 견뎌 내어야 하고, 안된다고 믿으려 하는 나약한 마음을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으로 바꾸는 게 사랑이란다.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대상의 편재, 여기도 저기도 사랑하는 사람이 보인다는 거. 또 사랑은 과잉과 잉여의 감정으로 넘쳐흐를 수 밖에 없는데 쾌락과 연관되어 있어 끝이 없다는 거. 그래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를 시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그녀가 진짜로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불안은 상대의 모자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이라는 거. 등등.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만큼 어려운 글이었다. 타인의 욕망과 시선을 나의 잣대로 상상하여 나의 사랑을 보는 게 아니라,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밀당과 스토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결국 나의 욕망과 결핍의 결과라는 것. 결국에는 건강한 나의 심리구조가 관건.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려고 지금의 사람과 이별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만 다를 뿐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을 되풀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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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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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낭만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무성한 소문 혹은 신화와는 다른 사랑의 나체, 초라하지만 진실한 알몸, 슬프기 짝이 없지만 슬픔의 존재를 알아야 담담해질 수 있다. 인생에 슬퍼하지 않으려면 인새잉 원래 슬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허술하고 누추한 국면을 알아야 비탄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15쪽)

진행되는 연애에서 두 사람의 자아의 장벽은 얼마나 두터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 베일에 가려졌던 상대의 마음은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실체를 드러낸 상대의 마음속에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것들만이 웅성거리고 있다. 문제는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초기의 장벽이 `알 수 없는 너의 마음`과 `좌충우돌 상상만 하는 나` 사이에 세워진 것이라면, 진행 중인 연애에서의 장벽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너`와 `너를 변화시켜야만 살 것 같은 나`사이에 축조된다. (29쪽)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능한 답들은 꽤 있다. 말, 고독, 설렘, 성욕, 불안, 의심, 질투, 결핍 등. 하지만 내가 보기에 모범답안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을 견디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 (107쪽)

사랑은 아닌데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 내 마음을 분주하게 하고 때로 혹사시키는 것, 이런 것과 사랑과의 거리는 상당히 가깝다. 사랑의 옛 우리말이 상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단지 그 사람을 그리워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만은 아닐 터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아함이든 미움이든 짜증이든 누군가에 대한 상념이 많아지면, 그것은 사랑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가장 흔한 사람의 고백은 이렇다. 너 때문에 신경이 쓰여 죽겠어! 근본적으로 사랑은 리비도의 집중 현상이다. 어떤 모양으로든 집중된 에너지는 사랑으로 흐르기 일보 직전이다. (168쪽)

명료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감정은 절대로 명명백백하지 않다. 그것은 혼돈과 의심과 불안의 외피를 쓰고 기습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의 감정뿐만 아니라 제 감정도 끊임없이 의심한다. 감정의 정체를 심문하는 검사에게, 정직하게 답변할 말은 여간해서는 찾을 수 없다. 미움, 의존심, 성욕, 집착, 의심, 불안, 강박, 이런 인접 감정들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는 선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사랑과 그 인접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혼돈 덩어리를 정의하고 분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197쪽)

욕망은 결국 타인과 상관없이 원래부터 `내`안에 있었던 `나`의 욕망이다. 타인을 욕망하는 사람은 타인 자체가 아니라 자기안의 욕망을 욕망한다. 타인은 내 욕망을 환기하는 매개이자, 내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가령 내가 연인에게서 판타지를 구하려고 할 때, 연인은 단순히 내 판타지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된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연인을 욕망한다기보다 연인을 매개로 나의 판타지를 실현하려고 한다. (243-244쪽)

또한 우리는 상대에게서 `나와 닮은 것`을 찾는다. 종종 우리는 상대 안의 나에게 매혹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소망과 내 결핍이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싶은 자질을 가진 그, 내 소망을 실현한 듯한 그를 사랑한다. 박식해지고 싶은 사람은 박식해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성공한 듯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제 결핍을 의식하는 사람은 유사한 결핍을 가진 듯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누군가 묻는다. 그에게 왜 반했니? 그는 상처받기 쉬운 어린 아이 같아. 이때 생략된 말,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은 `나처럼`이다. 나의 현실, 내 소망과 결핍은 상대에게서 매력을 생산해내는 발전기다. 나의 소망을 투사할 때 나는 상대를 예찬한다. 나의 결핍을 투사할 때 나는 상대를 안쓰럽게 여긴다. 상대의 매력의 원천은 `나`이다. (262-263쪽)

알랭 바디우에 다르면, 사랑은 "불가능한 무엇처럼 나타나게 만드는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랑은 불가능을 극복한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을 그는 복잡하게 말했다. 극복해야 하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라, "불가능한 무엇처럼 나타나게 만드는 무언가"란다. 이 무언가가 무엇인가. 무엇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 즉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리는 나약하고 비관적인 마음이다. 견고한 두 자아의 치명적인 차이를 극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상대의 충격적인 배신을 용서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관계의 숙명적인 균열을 메꾸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사랑이란다.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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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여성 멘토를 만났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제약을 갖는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배제되고 또한 남성, 연인에게 조차 함께, 동지라기 보다는 보조, 도와주는 이로 자리 매김이 된다. 이러함에도 그녀들의 공통점은 책이다. 책속의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에 동참하고 재현하고 탐구해서 현실로 나왔다. 현실에서 싸우고 진보하고 실천해 나아갔다. 거기에는 감히 여자주제에 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사랑은 제인오스틴과 주드주 상드을 통하여, 내몸의 주인공은 사강으로, 얽매이지 않는 관계의 가능성은 실비아 플라스로, 외로운 인생은 버지니아 울프와 바흐만의 이야기로, 사회와 국가의 금지된 것에 대한 조금의 반항은 로자 룩셈부르크로, 타인의 아픔에 울수 있고 자신의 존재방식은 손택의 글에서, 아주 평범한 우리가 몰랐다, 모른다는 미명하에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악의 형태들은 한나 아렌트로, 여자들의 진정한 독립, 특히, '남편과 남의 편(타자)들의 시선 속에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272쪽)'에서 진짜 자기 찾기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서 배워야 한다. -그녀들의 사랑과 관계와 주장과 혁명은 남성들이 지르는 소리보다 몇백배나 커야하고 천둥 벼락같은 방법으로야 세상이 듣고 알게 된다. 그렇다고 제대로 알아 듣는게 아니라 감히 그런 주장과 혁명을 하다니, 그녀들은 힘들게 하는 외부의 타자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방법까지 택하게 된다. 나 또한 그녀들을 따라갈 수 없다. 지금의 삶에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의 고통없이는 지금 이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조금의 움직임도 아파야 가능하다. 멘토들의 말이 귀에 들릴지라도 나의 아픔이 크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기꺼이 현상을 알아야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 알아야 되는 거 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현실에 안주해 있고 불편을 감수하는 게 싫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부분을 버리고 싶지 않고 유지하고 싶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손택의 '우리의 겉모양새가 사실은 우리의 존재방식(203쪽)'이라는 스타일과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보부아르의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실존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서는 몇번 곱씹어 볼 생각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씩 삶의 모양을 바꿔가도록 노력을 하겠다. 끄적하다 보니, 데모를 했던 젊은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삶이 달라졌으니, 주장도 이념도 달라야 하나.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모두 함께 잘 사는 방향으로 연대하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개개인의 삶에 초점이 간다. 내가 나의 위치를 좋은 곳에 잡고 잘 살기 위해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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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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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고 위험한 일로 치부하는 영국 젠트리 계급(중산계급의 상층)의 엄격한 오스틴 가족은 제인의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감정의 콜레스테롤은 당장 베어내야 할 잉여로 치부되었고, 감사으이 지방은 이성의 칼날로 도려내야 할 과잉으로 여겨졌다.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의 로데오에 올라탈까 봐 전전긍긍했던 어린 제인은 비난받지 않으려고 감정을 숨기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했다. 감정은 `그른 것`이고, 이성은 `옳은 것`이라는 배움은 그녀를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너무나 신중하고 방어적인 소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소녀는 어렸지만 인생과 인간관계의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성찰, 행동의 숨은 동기와 의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갈고닦았다. 낭만주의자가 되기보다는 합리주의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영향으로 제인은 열 살 무렵부터 지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22-23쪽)

코카인을 소지했다는 협의를 받고 두 차례나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던 그녀는 결국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외쳤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타협없는 개인의 권리장전을 외치는 사강을 비난하고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도박 중독자에 마약 중독자라는 불명예는 그녀의 말년을 집어삼켰다. 작가의 순수한 명예와는 대척점에 서버린 그녀에게 세상은 공격과 탄핵을 퍼부었다. 프랑흐의 한 극우 정치가는 사강의 부도덕성을 개탄하면서, 단두대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강은 무자비한 타격을 받았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끝까지 운명을 건 생의 도박을 멈추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언제든지 가치를 잃고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능이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던 손바닥으로 순식간에 뺨을 후려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16-117쪽)

똑같은 책이 `위대한 책` 또는 `무가치한 책`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평가받기에, 예차노가 비난은 똑같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며, 그녀는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격려한다. `실재Reality`라는 것도 먼지투성이의 길가에서, 때로는 거리의 신문지 조각에서, 때로는 햇빛 속의 한 송이 수선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므로,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지라고 다독인다. 미움없이, 쓰라림 없이, 두려움 없이, 항의 없이, 설교 없이 써보라고, 10년만 지나면 하잘것없는 폐지 조각이 될 그런 책일지라도 써보라고 말하낟. 그저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글을 쓴다는 건 가난과 무명 속에서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137쪽) *그녀=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는 나쁜 세계에 대해 회의하고 절망할지라도, 신생의 언어로 꽃을 피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종이에 그녀가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그녀의 말처럼, 문학에는 결승점이 없으니까, 왜냐하면 살밍란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넘어지 ㄴ곳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과 새롭게 출발을 시도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일상의 현실을 초월할 길은 오직 쉼 없이 삶을 향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길밖에 없으니까. 유토피아란 실존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절박한 종말과 한계를 느낄 때 꿈꾸는 지향성이니까. 불가능이 있어야 가능을 강렬하게 욕망하니까. 타락한 기존 언어에 대한 절망이 있어야 새로운 언어를 갈구하니까. (172쪽)

그럴 때마다 그녀는 홀로 다짐했다. "나는 혼자다. 사람들은 나를 증오한다. 따라서 내가 옳다"라고. 당을 위해서도 척후병처럼 나서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펜과 머리밖에 믿을 게 없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사랑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로자 룩셈부르크. 비로소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여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궁금하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육체의 장애를 이겨내고,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게 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운명과 철저히 대겨랗게 만들었던 것일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각오를 어떻게 끝까지 고수할 수 있었을까.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조국이며, 자유 평등 박애 앞에서 어떤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에선 매호긍ㄹ 넘어서 불온함마저 느껴진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정의에 불감증으로 일관하고 불의를 보면 꾹 참아내는 사람이다. (178-179쪽)

조금만 힘들어도 존재 방식을 홀라당 뒤집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가면을 가차 없이 뜯어내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흉측하면서도 볼품없는 민낯을 대면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이제껏 쌓아왔던 스타일을 일거에 무너뜨리며 타인에게 생지옥을 맛보게 하는 인간을 접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 진정성이라는 말을 입에 다록 다니는 사람을 만나며, 손이 오글거리고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숨김없이, 툭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걸 즐긴다는 사람을 보면, 일단 의심부터 든다. 문학이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해 은유의 방식으로 가면을 쓰는 이유가 단지 미학적 효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겉모양새가 존재 방식이고 가면이 얼굴이라고 주장한 작가답게, 손택은 생애 전반에 걸쳐 끝없이 환골탈태하면서 자신에 대한 일방적 해석에 저항했다. (204-205쪽)

같이 살되 홀로 존재하기. 함께하되 책임지지 않기.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다시 사랑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여러 번 사랑하기. 세월이 흐르면 식고야 마는 사랑의 중력 법칙을 거부하기. 서로에게 내재하면서 필사적으로 초월하기. 두 개의 존재로서 하나 되기. 둘 사이에 파고드는 어떤 타자의 사랑도 마다하지 않기.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온리 원Only One의 사랑보다 너에게만 언제나 넘버원No.1인 사랑을 하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연장하기. 그들이 세운 관계와 사랑의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법칙은 명성과 추문, 편견과 비난, 추앙과 힐난, 경이와 경악, 공감과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256-257쪽) *그들=샤르트르와 보브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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