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그 순간을 사진 찍은 거처럼, 그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고 말하라고 한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배제하고 한컷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을 말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새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자꾸 나의 마음이 들어가서 상대를 보는 경향이 크다. 때론 마음의 눈으로 볼 때야, 눈앞에 보이는 너머의 것과 보이지 않는 거까지 알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도 모르는 거까지 눈에 보여 안타까울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내맘이 평온하지 않은데 눈빛은 흔들리고 흐리고 그래서 제대로 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거, 한 순간을 정지시켜 한장의 사진으로 보는 것. 오히려 마음을 싣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기가 오히려 상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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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사진 읽기 -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이 이야기하는 사진을 보는 다른 눈
신수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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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려면 꾸미지 않은 진솔함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완전히 옳다. 용기를 바탕으로 한 진솔함은 신뢰를 심어준다.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24쪽)
*그 = 김희중

먼 미래에 무엇이 오늘을 증거하고 대표할 사진으로 남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형록의 어린이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리얼리즘이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몰입하고 있는 바로 이 세계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의식이라는 것을 때닫게 된다. (40쪽)

우리는 가족애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냥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지켜보면서 존중하는 태도가 없으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65쪽)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소소한 일상은 물론 인생의 큰 행로도 바꾸어 놓는다. 개개의 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 이후에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훨씬 더 복잡한 역학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관계는 때론 그 자체가 주어진 운명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도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만큼 누구나 관계를 떠나 온전히 혼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래서 관계는 늘 자유와 종속이라는 양립되기 어려운 가치의 대립이다. (77쪽)

그들은 서로 다른 옷차림, 서로 다른 자세, 서로 다른 표정으로 서로 다른 정서,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사진 속 인물들을 변별시키는 힘은 정서로부터 나온다. 저엇란 본디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추론되고 촉발되는 특징을 지니므로, 그들의 정서에는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드러내는 정서 반응을 보면서 처음엔 그 이야기를 궁금해 하기도 하고, 그다음엔 그들의 정서 상태에 공명하기도 한다. 정서적 공명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의 정서를 거울처럼 비춰내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힘들어 숨겨둔 사연으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12쪽)

세상은 마치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저 멀리서 선명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도 같이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래서 내겐 아직 살아갈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희뿌연 안개같이 나를 고립시키는 수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하여 나는 외로운 섬이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어쩌면 소통에 대한 열망이 낳은 환청인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구름, 바람과 물, 말 없는 그들이 나를 부르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저 먼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184쪽)

스스로를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에 노출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온 날들 동안 좋은 기억, 나쁜 경험들이 쌓이면서 겪어보지 않고도 알 것 같은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사할 것 같은 휴가라도 비용을 계산하다 보면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먼 나라 아이들의 기아 문제도 마음은 아프지만 언젠간 해결되려니 하고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진짜 문제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조차 너무 덤덤해진다는 거다. 다 알 것 같고 흥미롭지도 흥분되지도 않아서 나도 모르게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어른들이 의외로 많다. (207쪽)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할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무엇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할까? 이것은 `어떠한 사진이 필요하고 살아남을 수 있나?와 유사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평생 단위시간당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사진 찍기(혹은 찍히기)에 몰두하는 사건은 아마도 결혼식일 것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결혼실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일생을 두고 오래도록 기억될 가치가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여기는 한편, 그 순간의 마음이 평생토록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기억에 대한 강한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217쪽)

우리가 남겨야 할 사진은 가치판단이 존재하지 않는 중립적인 사진도, 행복감을 강요하는 과장된 사진도 아니다. 그 사건에 대한 특정한 인상,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는 의미 같은 것이 필요하다.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소중한 순간, 그래서 힘든 시절에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다채로운 기억이 사진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진솔한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뒤섞여 있는 기억만이 두고두고 우리들에게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아름답게 채색시켜줄 수 있는 사진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220-221쪽)

바라보기와 바라다보이기는 모두 중요한 인간의 활동인바, 양자 간의 균형이 주관적 안녕 즉, 웰립well-being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능동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활동, 즉 바라다보이기를 통해서 세상의 요구에 순응하고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능동적으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시간이 너무 치우친다면 누구라도 진이 빠지고 말 것이다. 세상의 이목을 전혀 받지못하고 홀로 창작에만 전념하는 예술가와 쉼 없이 무대에 서야만 하는 연예인은 한편으로 기울어진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서로 다른 극단에 서 있다. (255쪽)

모든 사진 이미지는 찍은 사람의 선택에 의해 간추려진 현실이다. 선택은 일반적으로 주체로서의 작가, 혹은 보여주기의 방식을 주도하는 자에 의해 행해진다. 그리고 사회가 성숙하고 다양성을 띨수록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자는 많아진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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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 영화를 봤어야 이해를 하지. 영화 내용을 글로 읽고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간간히 본 영화에 대해서는 끄덕끄덕하지만.

모든 문장을 명쾌하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모른다. 이건 뭐지.     

뒷표지 김혜리의 글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이다."

그리고,

타인의 사랑이 내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하고, 그 결여 때문에 타인의 사랑에 응답하게 된다는 것. 결국, 결여는 매혹의 조건도 되지만 그 차이로 서로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데는 수많은 우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럼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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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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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는 것. 대개는 먼저 사랑을 시작하는 한 사람이 있고, 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받는 다른 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넓은 의미에서 관계의 논리학)을 탐구하려면 두 개의 물음을 따로 물어야 한다. 도대체 어떤 구조 속에서 A는 B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게 되는가. 그리고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B는 A에게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게 되는가. 이 두 물음 중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후자다. 왜냐하면 내가 어쩌다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은, 내가 너와 `이미` 사랑에 빠진 이후에 던져지는 한에서는, 물음으로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근본적으로 동어반복에 가까워지고 말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은 네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놀라운 것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그 누군가가 나의 사랑에 응답하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상황 혹은 조건 속에서만 타인의 사랑에 기꺼이 응답하는가?` (18쪽)

즉 타인의 사랑이 내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끄는 것,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사랑에 응답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내가 내부의 결여를 인지하는 데에는 나를 둘러싼 외적 조건들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외적 조건들의 퍼즐이 때마침 어떤 조합을 이루는가 하는 문제는 거의 우연에 속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랑의 논리학도 결과를 확언할 수 있는 정도로까지 정교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우연을 다 통제할 수는 없으므로. (20쪽)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결여를 깨달을 때의 그 절박함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말, `나도 너를 사랑해`라는 말의 속뜻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결여다.` (25쪽)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27쪽)

두 사람의 차이가 상호 매혹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일한 차이가 결국 그 관계를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 (33쪽)

사랑이 실패한 것은 내가 타자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 진정한 문제는 지금 타자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된다. (46쪽)

세 종류의 고통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 자주 고장 나고 결국 썩어 없어질 `육체`, 무자비한 파괴력으로 우리를 덮치는 `세계`, 그리고 앞의 두 요소 못지않게 숙명적이라 해야 할 고통을 안겨주는 `타인`이 그것들이다. (117쪽)

진실은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 능력은 때로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어 발현될 수 잇다는 것. 그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것. (129쪽)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진실 자체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진실로도 설득할 수 없는 것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타인들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에서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결론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네가 누구건, 무엇이 진실이건, 그것은 우리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유죄라는 것이다.` (131쪽)

시야말로 `마음`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는 장르라는, 꽤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그 관념을 이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수용한다. 시는 마음의 투명한 재현을 추구하는 1인칭의 독백이다. 시에 어떤 화자가 등장하건 그는 곧 시인 자신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삶에서 진실한 시가 나올 수는 없다. 삶과 시는 일치되어야 한다, 라는 명제들이 그 관념을 구성한다. (136쪽)
*이 영화 = 이창동감독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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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가고 5월이 오는 동안 이책에서 저책으로 몇권을 뒤적뒤적 반쯤 읽은 것도 많이 읽은 것도 그러다가 생일선물로 받은 시집만 용케 읽었다.

마음이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둥둥 떠 다닌 봄날이었다. 그러면서 봄의 시간부터 언젠가 있었던 날 같은. 모든 게 처음인데 겹치고 반복되고 비슷하고. 그래서 기억하고 싶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꿈에서 본 것인지. 기시감까지 들었다. 

4월 마지막날에는 옥천의 이지당 툇마루에 앉아서 봄햇살을 받고 봄바람에 설렜다.

5월 첫날에는 카페를 오픈한다고 노리다케, 웨지우드, 덴비, 르쿠르제, 로얄코펜하겐, 앤슬리 커피잔과 티팟을 구입했다.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비밀이나 되듯, 이 예쁜잔은 누구에게, 이 귀여운 잔은 그녀에게, 저 고급진 잔은 사랑하는 그이에게 커피를 홍차를 뜸뿍 담아 주자. 친밀감에 따라 커피잔이 달라지는 건 아무도 모를거야. 그지그지 하면서 다녔다. 드디어 카페 등록을 했다. 간판도 달았다. 쓱 오픈할 예정이다. 누구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인생공부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친구도 없는 내가 그 유일한 친구까지 잃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많은 걱정인형들이 있었다.  

어린이날은 생일이다. 배려와 싸가지 없는 언니를 동생들이 축하해줬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하늘나라 가면 좋겠다 하면서 입원하셨다. 저 지난해도 똑같은 날에 아프셔서 입원하셨는데. 오남매가 모였을 때 꼭 아프시다. 우리보다는 하늘나라와 조금씩 가까와 지시는 아버지다. 당신이 지금 원하시는 건 무엇일까. 무슨 생각이 드실까. 최근 옆집의 80세 상주가 98세 노모를 보낸 이야기를 하면서 80세에 상주하고 싶다고만 말씀드렸다.

이런 저런 일로 각자의 삶을 살면서 모였다가 헤어졌다가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이생과의 이별도 한다. 지금 이순간 내가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거에, 마음을 두고 있는 거에 집중하려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겠지. 아님, 억지로 떠나 보내야 할 수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다 잡아 본다.

녹턴에는 사랑의 시작점 [花飛, 그날이 오면]에서 사랑이 끝나는 마침점 [花飛, 먼 후일]이 들어있다. 슬프고 아린 사랑사이에 꽃비만 내리고 있다... 내 마음의 시작점에서 언제일지 모르는 끝나는점, 그 사이를 만남과 이별, 꼭 잡고 있는 것과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들 사이를 조심조심히 건너고 깊이 깊이 생각하고 말하면서 지나고 있다. 그 사이가 너무 넓기도 하고. 깊기도 하고.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이기도 하고. 그냥 주저 앉기도 하고. 달려보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어떤 일은 시작점에 머물러 있고 어떤 것은 마침점에 가까이 가 있다.  나의 생은 어디쯤에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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