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서 성격, 관계, 사회적 계층, 심리적 상태, 행동을 예측하고,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말과 글이 난무하는 세상, 글을 읽으며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거처럼, 각자 사용하는 스타일이 있다. 특히, 기능어의 사용이 많이 좌우된다. 사람들은 몇초의 순간으로 호감을 가려내듯이, 말 속의 기능어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무심코 내뱉은 말을 다시 거둬 살펴보는 재미,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말투를 바꾸면 성격이나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거까지... 나의 글을 읽어 보면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어떤 작가의 소설이나 수필을 읽어보면 그 작가를 알 수 있듯이. 글이나 말은 글을 쓰고 말하는 이의 모습이라고 우린 모두 알고 있는데, 과학적으로 단어의 사생활을 연구하고 증명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분명 도움되리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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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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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이 평생 사용하는 단어들은 마치 자신의 손가락[지문]과도 같다. 그 단어들은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정체성뿐 아니라 심지어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의 배경을 밝혀내는 데도 점점 더 많이 쓰일 수 있다. (11쪽)

[우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단어인 이유는, 이 단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절반이고 말하는 사람을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쓰이는 경우가 절반이기 때문이다. (13-2-13쪽)

즉 단어 사용은 일반적으로 그 단어를 쓰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발한다기 보다 그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36쪽)

특히 흥미로운 점은 대개의 차이가 가장 흔히 쓰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단어들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38쪽)

우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능어를 듣고, 세고, 분석함으로써 그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고, 그들 스스로 인식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측면마저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기능어를 사용하는 스타일은 우리가 그 사람들 자체와 그들의 메시지를 인식하는 방식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4-65쪽)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전달할 때는 그것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자신은 정확히 어디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풍부하게 떠올릴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때 우리의 몸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다. (162쪽)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 그리고 특히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사물에 투사한다고 한다. (229쪽)

나는 나의 이메일, 강의, 논문, 추천서 등에서 내가 사용하는 단어도 몇년에 걸쳐 분석해 보았다. 결과는 가끔 예상대로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이 들어맞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배운다. 사실 내가 보는 나의 행동과 객관적으로 보는 나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들을 볼 때가 늘 가장 놀라운 법이다. 이런 경험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즉 나 자신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할지, 내 행동을 바꾸어야 할지,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어야 할지 의문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239쪽)

그렇다면 왜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기능어 사용에서 드러나는 것일까? 학생들의 인생경험과 가정교육의 어떤 측면이 그들의 단어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한 가지 유력한 견해는 애초에 각각의 사회적 계층에 따라 가정 안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275쪽)

두 사람의 언어 스타일이 일치한다는 말은 실제로 무슨 뜻일까?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기능어 사용 스타일이 일치하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좋아하거나 믿지는 않을 지 몰라도 최소한 서로 지켜보고 귀를 기울인다. 다행히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과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으려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좋은 친구들이나 연인 사이의 대화는 언어 스타일 일치도가 높은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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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때의 기억이 진심이고 진짜일까에서 부터 각색과 윤색을 거친 기억의 단편을 믿고 싶어 '사랑을 믿다'를 펼쳤다. 여전히 애매모호하여 깨닫지 못하는 서로의 사랑, 아니 사랑일까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와서 옛사랑 한 조각의 느낌을 확대 해석하고 내맘과 마찬가지로 너의 맘도 그러하리라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서로가 맞닿은 한 지점에서 다시 올라 온 느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래서 너와 나의 그 간극을 무엇으로 메울까에 노심초사하는데 자꾸 피곤해지는 이유는 뭘까. 나만 모르는 일들이 여전히 너에게 일어난 건 아닐까. 나는 과거에 머물러 그 순간을 현재에 재현하고 있는데, 너는 현재에서 과거의 순간을 활용한다는 느낌이다. 설령 아니더라도 사랑한다는 꿈이라도 꿔보자. 언제 이런 꿈을 꿀 수 있을까... 봄날이니,   

'문라이트' 영화보다. 타인의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대하여, 주인공에 대한 세번의 버전. 그러면서 수없이 놓치고 애써 놓아버린 일, 관계에 대한 부분도 떠 올랐다.   

*권여선 글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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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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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은 그런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 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해서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아주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23쪽)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41쪽)

기억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 많은 시간 속에서, 아둔하고 자존감만 높았던 나는, 나만 무르는 장소에서 나만 모르는 얼마나 많은 수치스런 행위와 제멋대로의 오해를 반복했던 것일까.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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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분밖에 없는 예수의 얼굴이 이리도 많다니, 수세기 동안 나라마다 시대마다 그 많은 얼굴들을 만들어 낸 우리들이 대단하다. 수 많은 얼굴에 화장까지 시켰으니,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예수는 진짜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나또한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예수를 빙자한 또다른 모습의 예수를 쫓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알고 있는 거조차 고통스럽기에 외면하고 있다. 나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면죄를 받기 위해 그 틈을 찾아 예수에 관해 이책 저글을 인용하고 찾고 있을 수 있다. '공부하면서 예수를 믿자(213쪽)'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의 변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예수의 진심을 알고자 하는 태도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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