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le 홀을, Solo 홀로, 읽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구멍들, 어쩌면 내가 알기도 전에 먼저 있었던 구멍도, 살다보니 생긴 구멍도, 산다는 건 그 구멍들을 메우기 위한 일이 아닐까. 이 구멍을 메우다 보면 또 다른 구멍이 생기고 크기도 깊이도 각각 다르다. 어떤 것은 평생 가지고 가야할 것도 있다. 동일한 일로 구멍이 깊어지고 깊어져 나중에는 그곳에 빠져 죽을 거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구멍이 가장 치명적인 거 같다. 요즘 나의 구멍과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마음만큼 구멍을 만들었다. 똑같은 일로 똑같은 방법으로, 어쩌면 그리 하나같이 똑같은 지점인지, 가슴이 저려온다. 정성껏 메워준다는 느낌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와 자신의 구멍을 함께 메우는 일을 했을 거다. 어떠다 보니, 상대에게 구멍을 내고 있더이다... 

온 몸의 감각기관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고 마음의 솜털은 듬성듬성하여 내가 알고 있던 내맘이 아닌 거 같다..  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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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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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는 끈질기게 뭔가를 추구하고,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결국에는 성취하고, 한길로만 살아온 것을 자부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그들은 의지가 빼어난 나머지 박약한 의지를 손쉽게 비웃었다. 운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비난했다. 사소한 우연의 연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집과 독선이 지나쳤고 자신의 자부가 폭력이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으며 남들에게 늘 가르치는 투로 말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비웃었다. 간혹 시혜적인 태도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었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삶의 여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20쪽)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8쪽)

아내는 매사 빈정대고 조롱했다. 오기에게 속물이라고 했다. 툭하면 오기를 탓했다. 오기는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경력을 쌓았고, 그러느라 일을 늘렸다. 아내는 좀처럼 몰라줬다. 서운했다. 오기는 스스로 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삶에서 아내를 분리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내도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오기를 분리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스스로 제 삶을 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128-129쪽)

아내는 왜 제이와 오기를 오해한 것일까. 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았다고 믿은 걸까. 그 무렵 아내도 인생에 생겨버린 커다란 공동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자기가 애써 유지해온 삶이 헛것임을 알게 된 걸까. 그 공동을 메워보려고, 가짜라는 느낌에 시달리느라, 홀로 정원을 일구고, 서재에 틀어박혀 뭔가를 쓰고 완성하는 일에 실패하고 그럼에도 헛되이 계속 써왔던 것일까.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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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의 끝자락에 와 있다. 생일이 지나갔다.- 축하해 주는 이들의 면면을 꼼꼼히 드려다 보았다. 부족한 부분들, 나의 바램과는 조금 다른, 그들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직접 채취한 쑥으로 버무리를 만들어 오신 엄마, 두 분이 역시 최고이시다. 그리고 신경 세포 하나까지 전부 닿고 싶었는데 투둑 툭하고 끊어지는 경험도 있었다.-함께 한 경험이 부족하니 현재에서 소통의 시간과 횟수를 늘이려고 애쓴 점이 어떤 이는 스트레스로, 누군가는 연결점을 넓히는 과정으로, 각자의 불만으로, 그럼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언제든 관계를 끊을 수 있고 편안히 바이바이 할 수 있는 마음으로 놓아 있기로 한다. 그 동안 조금이라도 닿으려고 무지하게 애쓴 내가 너무 안되어 내내 슬프고 우울했다. 결국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에 초점이 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누가 위해 주는 거지, 음, 부모님...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부석사에 말을 건 저자의 글을 읽으며, 부석사가 인간이 아니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뚱맞은 생각까지 들었다. 오래전 다녀 온 부석사의 모습을 끄집어 내기에는 기억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사과나무가 옆에 있고 올라가는 길이 참 예뻤다 정도,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을 쓰다듬으면서 바라 본 먼 산의 경치도 참으로 좋았다가 전부이다. 보름달을 그곳에서 바라보는 게 정말 최고인데... 

그 동안 번역하느라, 헉헉했다. 같이 하는 이의 글까지 다시 수정하느라, 아직도 손 볼 것이 조금 남았다. 어떤 일을 할 때, 수용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개인의 경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 적어도 이 정도는 하리라는 기대에서 함께 했지만, 그건 아니였다. 기준이 너무 높고, 성격이 까다롭고 등등으로 자신의 부족을 타인에게 투사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함께 하는 이는 고마워하고 미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한다는 건 아니다. 조금,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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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에 말 걸다 - 부석사와 사랑에 빠진 한 교사의 답사기
전광철 지음 / 사회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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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잠시 숨을 고르고 계단을 살펴본다. 천왕문부터는 계단이 중요하다. 천왕문 위에 있는 계단에서부터 무량수전에 오르는 계단의 갯수가 무려 108개다. 108은 인간의 모든 번뇌를 의미하는 숫자다. 그래서 ‘108 번뇌‘라고 한다. 이것은 곧 108가지 번뇌를 다 내려놓고서야 아미타 부처를 만날 수 있다는 말로, 계단 하나를 올라갈 때마다 번뇌를 하나하나 내려놓으면서 올라가라는 말이 된다. (33쪽)

그래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다른 건축물에는 다 편액이 걸려 있어 건축물 이름을 알 수 있는데, 왜 이 범종루에는 편액이 없을까? 이름이 없는 건축물은 범종루 밖에 없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62쪽)

이제 마지막 계단을 올라 무량수전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입구가 참 좁다. ‘걸어 올라갈 수는 있는 건가?‘ 안양루 밑을 통과하면서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거의 열 명 중 절반 이상이 고개를 숙이고 올라간다. 머리가 목재에 부딪칠 것 같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사실 머리를 숙이지 않고 꼿꼿이 지나가도 부딪치지 않는다. 190cm가 넘는 사람이 아니면 부딪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도로 키가 크지 않는 사람도 머리를 숙이고 지나간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 범종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축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여 부처에게 존경을 표하도록 계단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냥 생각 없이 무량수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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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때문에 펼친, 함께 한 시인들은 제각각 좋아한다. 그러나, 진짜 김광석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뭔가가 많이 부족하다. 그와의 직접적인 경험에 대한 글을 원했을 수도 있다. 간접적인 경험에 상술이 덧입혀져, 그래서 중언부언하는 글까지, 오로지 그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내용이 넘쳐나 지면이 부족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쯧쯧,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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