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의 탄생 - 온전한 나를 위한 세상 모든 책과의 대화
장동석 지음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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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문법의 변화는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발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입니다. 문화적 문법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문제로 제기되고 인식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저자의 말마따나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를 부단히 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헛된 자만심이 아니라 자기분석과 자기비판을 거친 정신적 성숙의 과정입니다. 비판의 칼날을 나와 우리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해 벼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15쪽)

*문화적 문법: 사회 구성원들의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사고방식(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성유보는 우리 언론이 시종일관 시민을 뉴스의 주인공으로 삼은 적이 없다고 일갈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는"으로 시작하는 뉴스가 도배를 했고, 독재 정권에서는 대통령의 이름만이 뉴스를 장식했었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이후 재벌 기업의 목소리만 추가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는 결코 주권자가 되지 못하고, 관료 독재와 천민 자본가의 노복이 된다"라는 지적은 뼈아프고 "언론은 언제나 변함없는 정격유착의 충실한 동맹자였다"라는 일갈은 후련합니다. [미완의 꿈]이 보여주는 언론 자유의 꿈은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도 잇닿아 있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139쪽)

문명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지식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삶의 태도입니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물질이 풍족해진 것만큼 우리의 마음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저 낮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함께 우리라는 공동체의 존재 의미를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159쪽)

클라우제비츠가 규정한 전쟁 중 ‘나의 의지‘는 어떻게 정치로 귀결되는 것일까요.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집합적 욕구는 반드시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고, 그렇게 결집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폭력 행위, 즉 군사적 성격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상의 전쟁입니다. "추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절대전쟁", 즉 극단적인 전쟁은 하나의 개연성으 바탕으로 시작되고, 종결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전쟁은 거의 대부분 ‘우연‘의 산물입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습니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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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에서 삶의 방향을 찾다..... 파리다녀오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나리자를 보면서, 인기있는 이유는 어디에 서서 보던지, 나만 보는 것같고, 나에게만 위로를 전하는 미소 때문이지 않을까..... 단어를 보기만 봐도 어려운 라틴어 공부에서 각자의 고민에 해답을 얻었으리라. 어려운 일을 해 냄으로써 그 아래의 자잘한 힘듦은 쉬이 통과할 수 있고, 절로 힘을 얻었으리라. 그래서 삶이란, 삶의 목적과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답을 찾았으리라...... 이름과 명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여행내내 친구에게 혼만났다.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고 명명해 주는 일이 중요한데, 나의 것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가이드이기 전에는 알 필요가 없으니까, 알 수가 없다. 온전히 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풀어갈 때야 비로소 정확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다..... 만약, 내가 가이드라면 달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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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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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는 라틴어 ‘네불라nebula‘라고 합니다. 그 뜻은 ‘보잘것없는 사람, 허풍쟁이‘란 뜻의 ‘네불로nebulo‘라는 명사와 ‘안개 낀, 희미한‘을 뜻하는 형용사 ‘네불로수스nebulosus‘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라틴어 ‘네불라‘에는 ‘아지랑이‘라는 뜻 외에도 ‘보잘것없는 것‘, 그런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오리무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아지랑이‘라는 단어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고 시시때때로 그렇게 우리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것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34-35쪽)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스펙트럼 위에서라면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74쪽)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나 자신과 소통하면서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다스리며 성숙해집니다. 자기 마음을 찬찬히 읽어내는 노력을 계속하고 그 마음을 다스리는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누구나 마음먹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91쪽)

인류 역사상 종교와 신앙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른 중세 시대에서조차 성경의 가치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새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는 유념하되,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우리는 바오로를 통해 어떤 공동체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능했던 것이 또 다른 공동체에서는 그것을 얻기 위해 엄청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00-101쪽)

그렇다면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의 행적을 담고 있는 성경이란, 그 해석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은 흔들림이 없어야겠지만 성경에 예수의 모든 가르침이 기록되지 않았거나, 예수의 본 의도가 온전히 담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인간사의 세부적인 규정이나 새로운 현안에 대해서는 언제든 그것을 가르친 예수의 원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그에 때라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할 겁니다. (110쪽)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관이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았고, 제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녜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156쪽)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고, 과거처럼 노력하면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가슴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욕망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어떠면 문제는 욕망하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고,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있지 않은가 하고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224쪽)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단어 하나도 시대와 사상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좋은 번역이 어려운 일인 것 같고,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도 나오나 봅니다. (240-241쪽)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이 무엇인지 살피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됩니다. 또 어떤 때 집중이 잘되고 어떤 때 안 되는지도 알 수 있고요. 이런 훈련은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나의 태도, 나의 대화법 등 인생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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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인간극장에 99세 할어버지, 오후에는 인간극장 스페셜에 99세 할아버지가 나왔다. 일백년 앞에서 먹먹했다. 난 삶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까,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하다. 그래서 공부로 편가르기와 편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잘한다는 그들 편에 영원히 속해 있고 싶은 적도 있었고 이 때문에 마음도 많이 상하고 애도 많이 태웠다. 적어도 나에게서 공부는 학업만 아니다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고 연결을 끊어내기 위해서도 또 다른 공부가 필요했다. 아주 느리게 오는 이해의 속도때문이다... 삶, 수많은 상황과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체험하고 그래서 나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 후회라 말하는 부분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124쪽)' 최대로 나아가는 것... 전자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후자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터에서 손을 흔들며 제작자들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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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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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탐하고 갈망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의미있는 건 아닙니다. 돈, 지식, 권력, 명예, 다른 모든 것들도 내가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30쪽)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낄 능력이 없다면, 타인이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지요. (43쪽)

대중이 원하면 정치를 하고 대중이 원치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한거죠. 선거에서 세번 떨어졌으니가 사람들을 저를 원하지 않는 게 확실했습니다. 제가 잘났든 못났든, 제 눈에는 창랑의 물이 탁해 보여서 발을 씻고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떠났습니다. 책임 회피라고 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오만하기 그지없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짐나,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68쪽)

되풀이해 말하지만, 공부는 인간으로서 최대한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74쪽)

어휘 부족과 문장의 단조로움은 지적 수준이 낮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82쪽)

자식 기르는 부모로서 제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왜 있느냐?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자식이 있는 거랍니다. 공부를 잘하든 그렇지 않든 다 그렇다는군요. (105쪽)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고 해주어야 하는지 부모로서 고민해야 합니다......그건,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면서 사는 겁니다. 아이들이 배우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106쪽)

꼭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을 내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 최선을 다해 하며 사는 것, 이것이 제 인생론입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124쪽)

과학혁명의 시대에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독서도 글쓰기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공부도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그 인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수학 점수, 영어 점수를 따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알고 남을 이해하고 서로 공감하면서 공존하는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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