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이 1년 8개월간 구미를 일주하면서, 요새 말로 관광지와 여러 나라를 오가며, 각 나라의 특징, 사람들, 사는 모습, 경치, 날씨, 화가들, 박물관, 성당, 자연경관 등등을 세세한 묘사와 느낌을 쓴 글이다. 그녀가 다닌 건물과 풍광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듯 하다. 화가라 그런지 표현이 굉장히 뛰어나다. 특히, 내가 가 본 곳이 나올 때는 사진 찍은 듯 그대로 눈앞에서 보인다. 간결하면서 맛깔나게 쓴 글이다. 

아깝다. 적어도 구미에서라도 태어났더라면..., 그 후 남편과 자식들의 삶도... 물론 자신의 삶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지난 번 봉사활동 한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서양화가 고희동과 비교된다.  

그녀가 처한 시대와 나라가 그녀의 삶을 그렇게 만든걸까...    

나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하는 것은 어떻게 잘 살 것인지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세월은 빨리도 간다. 성큼성큼... 고민할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내 삶은 누가 살고 있는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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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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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부터 2시까지 식탁에 모여 앉아 한담하며 마음껏 점심을 먹는다. 이 시간에는 각 상점은 철문을 꼭 닫는다. 그리하여 점심시간에는 인적이 드물다. 그리고 주부는 가사를 정돈해 놓고 낮잠을 한숨 잔다. 저녁은 점심에 남은 것으로 먹고 화장을 하고 활동사진관, 극장, 무도장으로 가서 놀다가 새벽 5시에서 6시경에 돌아온다. 부녀의 의복은 자기 손으로도 해 입기도 하지만, 상점에 해놓은 것을 많이 사서 입는다. 겨울에는 여름 의복에 외투만 있으면 그만이다.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부인이 불쌍하다. 오락 기관이 많이 생기는 원인은 구경꾼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구경꾼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것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일반이다. 서양 각국의 오락 기관이 번창하는 것은 오직 부녀생활이 그만큼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는 것이다. (21쪽)

헤이그는 네덜란드의 수도이거니와 조선 사람으로 잊지 못할 기억을 가진 만국평화회의가 있던 곳이다. 1918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출석하였던 이준 씨가 당회 석상에서 분사한 곳이다. 이상한 고동이 생기며 그의 의로움이 있어 우리를 만나 함루하는 것 같은 감이 생겼다. 그의 산소를 물었으마 알바 없어 찾지 못하고 다만 경성에 계신 그의 부인과 딸에게 엽서를 기념으로 보냈을 뿐이다. (64쪽0

따뜻한 봄날 아지랑이가 끼었을 때 루브르궁전 정원 주위에 화단을 돌아 여신상 분수에 발을 멈추고 역대 인물 조각을 쳐다보며 좌우에 우거진 삼림 사이로 소요하면 이것이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이다. (76쪽)

이처럼 어디로 보든지 화락한 가정이었다. 특별히 부인의 가정생활을 보면 아양보양하고 앙실방실하고 오밀조밀하고 알뜰살뜰한 프랑스 부인 중에 점잖고 수수하고 침착하고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가진 부인이다. 강약이 겸비하여 물 샐 틈없이 규모가 꼭 째이게 살림살살이를 하고 염증이 나지 않고 신산스럽지 않은 생활이 예술이 되고 말았다. 남편에게 다정스럽게 구는 데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고, 더욱이 가품이 학자의 생활인만큼 검소하고 독립적이라...(생략) (88쪽)

처음 파리에 와서 미술관이나 화상에 가서 그림을 보고 나면 너무 엄청나고 내 것은 너무 명색이 없어서 낙망이 된다. 마치 명태 알만한 뭉탱이가 있다면 대가의 그림은 그 뭉탱이만하고 자기라는 것은 그중에 한 알만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화계의 상황과 요령을 배워 연구하려면 여간한 방황과 고심을 요한다. (100쪽)

피렌체는 예술의 도시라, 시가를 걷는 것은 마치 미술관을 걷는 것 같다. 어느 건물, 어느 성당, 어느 문, 어느 창, 어느 조각이 예술품 아닌 것이 없다. 물론 우리는 이 맛을 보러 왔지만 저 아르노강물로 키운 단테, 미켈란젤로, 조토, 마사치오,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 천재의 자취를 보러 온 것이다. 그들이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밟았겠지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이상한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140쪽)

그(고야)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이 묘를 보고, 그 위에 그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 생각났다. 처음이요, 또 최후로 보는 내 발길은 좀처럼 돌아서지를 못하였다. 내가 이같이 감흥을 느껴 보기는 전후에 없었다. (164쪽)

누구든지 파리에 와 있다가 파리가 좋은 곳인 줄 알게 되면 떠나기 싫어한다. 그리하여 먹을 돈은 없고 가기는 싫고 하면 가진 참극 비극이 다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기분적으로 살며 남을 속이고 빼앗기를 예사로이 한다. 파리 자체는 아름다운 곳이나 외국인들을 버려놓는 것이다. 과연 파리 인심은 자유, 평등, 박애가 충분하여 누구든지 유쾌히 살 수 있으며 이곳을 떠날 때는 마치 애인 앞을 떠나는 것 같다. 나는 파리를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떠나기가 싫었다. (169쪽)

괴이한 경치로 유명한 그랜드캐니언에 내렸다. 스위스의 경색이 예쁘고 작다 하면 미국 자연 경색은 크고 잘 생겼다. 캐니언은 협곡의 의미요. 층암과 깊이 1마일, 폭 1마일의 암석 단층은 마치 인도에 있는 피라미드 같아서 천길 밑바닥에서 무수하게 치솟았다. 그것이 석양에 비칠 때는 자연에 영색한 것 같아 일견 매우 웅대하다. 골짜기 바닥에 광선에 반사되는 모습이며 콜로라도 강이 흘러 은유를 이루는 미관 또한 형언하기 어렵다. 암석 자신이 아름답다. 광선에 따라 그 색이 청색, 회색, 황색, 적색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태양의 위엄과 자연을 확실하게 형체 상으로 볼 수 있다. (192-193쪽)

친척 일동과 노모와 세 아이가 나왔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눈물도 아니 나오고 감정이 이상하다. 자동차로 동래로 돌아왔다. 1년 8개월 전에 보던 버섯과 같은 집, 먼지 나는 길, 원시 그대로 있다. 다만 사람이 늟고 컸을 뿐이다. 무엇보다 노모의 기운이 좋고 삼남매가 건강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아, 아, 동경하던 구미 만유도 과거가 되고 그리워하던 고향에도 돌아왔다. 이로부터 우리의 앞길은 어떻게 전개하려는가. (209쪽)

생활 정도를 낯추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상을 품고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애를 느낀 것이 없는 것 같다. 내 의사를 죽여 남의 의사를 쫓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이러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할 그야말로 무슨 운명에 처하였는가? 그러지 않으면 일부러 당하고 있는가? 구미 일주를 한 1년 8개월간의 나의 생활은 이러하였다. 단발하고 양복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케치 박스를 들고 연구소를 다니고 아카데미 책상에서 불어 단어를 외우고 때로는 사랑의 꿈도 꿔보고 장차 그림 대가가 될 공상도 해 보았다. (중략) 그 기분은 여성이오, 학생이오, 처녀로서였다. (213쪽)

나는 사람이라네

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
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
아버지의 딸이 되기 전에
첫째로 사람이라네. (220쪽)

그러면 유럽과 미국인이 사는 것이 어떠하며 우리 사는 것이 어떠한다. 한 말씀 말하면 그들은 꼭꼭 씹어서 단맛, 신맛, 짠맛을 다 알아서 삼켜서 소화하는 것이오. 우리는 된 대로 꿀떡 삼켜서 아무 맛을 모르는 것이다. 결국 대편되기는 일반이나 대편 될 동안에 경로가 얼마나 다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생의 맛을 안다. (중략) 그러면 우리 사는 것은 어떠한다. 날 가는 줄 모르게 늘 지루하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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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맘이 바빴다. 부모님을 뵈러갔고, 생일 여행도 다녀왔다. 

양말뜨기는 거의 중독 수준이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잠자는 내내 코 수를 잘 못 세어 다시 풀고 뜨기를 반복하는 꿈을 지금도 꾸고 있다. 몇 십켤레를 떠서 두 세개씩 나눠 주었다. 허즈번은 조끼를 원해 그거까지 마무리 하느라 시간이 지났다.

한코 한코에 그들에 대한 기도도 함께 담았다.  

맹자 공부는 매일 빠짐없이 하면서 책 읽기는 멀리 있었다.

그러면서 오월이 왔다. 

어딘가를 늘 가고 싶어 자유로를 수번 달렸다.

'소설가의 영화'를 보았다.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지속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홍상수 영화다. '아깝다'라는 말을 다시 인지했다. 

김영하는 도쿄를 허점투성이 카메라, 롤라이35로 찍었다. '롤라이35는 실패작을 양산하는 카메라이다.(186쪽)'

그래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잘 찍었다, 아니다를 어떻게 말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를 다시 가고 싶다. 여전히 맘 속에 머물고 있는, 그들의 친절함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점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최근 비보이들의 향연을 보고 있다. 매주 기다림이 무지 길다. 아니 기다리기가 힘들어 되풀이 관람 중이다. 진조크루 윙, 리버스크루 피직스, 플로우엑셀 홍텐...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가, 놀라울 따름이다. 

하고 싶은 일은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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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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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매커니즘을 의미한다면 도쿄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를 섬세하게 튜닝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도쿄에선 모든 것이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고 주의 깊게 조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모든 사물이 마치 행성들이 제 궤도를 따라 공전하듯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96쪽/219쪽)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 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갇힌 앎을 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154쪽/236쪽)

도쿄의 번화가들은 기묘하다. 마치 볼륨을 줄인 대형 텔레비전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대단히 화려하지만 조용하다. 어떤 억제된 에너지가 착 가라않아 있는 듯한 도쿄의 거리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바로 개인의 존재이다. 도쿄는 근대 이래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문제적 개인들은 포용해온 유일한 도시였다. 무정부주의자, 동성애자, 범죄자, 펑크족,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마약중독자들이 도쿄에서 드디어 살 곳을 찾았다. 천황 암살의 뜻을 품고 잠입한 이봉창도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임무 시작 전까지 유유히 지낼 수 있었다. (208쪽)

일본인에게는 조화와 적절한 거리, 주어진 공간 안에서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하려는 정신이 있다. 그 정신의 문화적 표현이 하이쿠 아닐까? 규칙을 지키면서 제한된 글자 수 안에 최대한의 감수성을 담는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하이쿠 미학의 요체이다. 튜닝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일본이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게 하이쿠라면, 하이쿠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도쿄의 호텔이다. 도쿄의 호텔들은 대체로 좁다. 그렇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호텔이 호텔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상태를 갖도록 만드는 장인이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234쪽)

도쿄에서 절과 신사, 미술관과 백화점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은 불운하다. 도쿄에서는 적어도 하루를 들여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작고 아담한 가게들을 순례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그것은 도쿄가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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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박완서님의 글을 다시 읽었다. 오타가 있어, 읽는 이야 그 정도는 지나갈 수 있지만, 오히려 저자에게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뭐랄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염치, 부끄러움, 공감, 연민들이 고루 버무려져 있다. 특히, 참척을 당한 이의 마음을 곡절히 풀어 헤쳐, 죽은 이를 제대로 보내는 과정은 산 자가 편히 살기 위해서랄까...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들을,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데도, 안일하고 안하무인 격이다. 정말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아는 일'들이 도처에 있것만 끝까지 모른척 하고 살 수 있을까... 잘한다고 했는데, 천년만년 오랫동안 잘 살 것 같았는데, 어느새 늙고 아픈 상태가 되어 있다... 죽으면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가져갈 수도 없는데, 아둥바둥, 특히 남을 무시하면서, 금방 드러나는 게 뻔한 데도 아닌 척, '부끄러워하고, 대범하게' 살아가야지.  


*대범한: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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