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글은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쓴 일기 형식의 글을 읽었다. 2년 6개월 동안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모든 거에 대한 좌절감과 죄책감과 죄의식 등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어머니의 문병 후 어머니에 관한 글은 오히려 남아 있는 자신의 생명을 붙잡기 위한 행동이지 않았을까 고백하고 있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최근들어 한번이라도 엄마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을까, 저자가 말한 죽음이란 목소리의 부재라는데... 아직도 난 엄마의 부재의 시간은 상상이 안 된다.

저자는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고 살아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어머니를 방문하는 것은 어머니와 화해를 하려고, 살아서 남아있는 나를 위한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는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이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145쪽)'  

늙음, 치매, 죽음과 아울러 관계, 생활, 삶을 고민하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부모와 자식, 많은 말은 생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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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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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의 욕구밖에 모른다. (중략) 이젠 더 이상 어머니의 기억상실증에 화가 나지 않는다. 강한 타성에 젖어 무감각해져간다. (10-11쪽)

이분은 나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녀 자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6쪽)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어린 시절엔 그토록이나 어머니를 사랑했건만.) 나는 내 자신이 A에게 요구했던 사랑을 생각해보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내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사랑을. (36-37쪽)

어머니는 바로 내 미래의 노년기 모습이었다. 어머니이 다리 살갗은 결마다 주름살이 잡혀 있고, 이제 막 머리를 짧게 잘라주어 쭈글쭈글한 목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차츰차츰 노쇠해가는 어머니의 몸. 나의 내면 깊은 곳에도 이같은 육체적인 피폐가 다가오고 있는 듯한 위협을 느꼈다. (42-43쪽)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53쪽)

처음으로 나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어머니가 이곳 병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실제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략) 하여간 죄책감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건 생명이 멈추어버린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삶이 고통과 죄책감으로 소멸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곧 ‘나‘임을 실감한다. 나는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을 생각해본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57-58쪽)

나는 대체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어머니 곁에 있을 뿐, 그게 전부다. 내 곁엔 항상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고 모든 것이 그 목소리 안에 응집되어 있다. 죽음이란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볼 때 목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 (115쪽)

다른 어떤 고통들보다도 바로 이런 어머니의 몸짓, 그리고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또 다른 온갖 몸짓을 보고 있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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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를 읽었다. 죽음을 앞두고 장조와 단조의 음계를 하나씩 짚어 가면서 써내려간 악보다.

자신의 삶이지만, 그 과정은 오롯이 자신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것이라 한다.

자신에게 몰입할수록 점점 약해지지만, 타자를 지키려할 때는 나날이 확실해지는 시간이라 한다.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나를 죽이는 일과 같다. 

나는 아주 많이 느리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한참 후에야 제대로 인식하고 느낀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특이하고, 생뚱맞는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기도 한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고,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자꾸만 떠오른다. 

맹자 공부하는 학우 중에 스스로 먼저 가 버린 자식을 가진 이가 있다.

특히 이 맘때가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사는 게 아니라는, 그 분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241쪽,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273쪽에서 마지막 279쪽, 

건너가기, 넘어가기, 부드럽게 여유 있게 /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 겸손의 마음, 아름다움의 마음 / 무엇이 문제인가 / 가고 오고 또 가고 / 잘 보살피기 / 적요한 상태 / 내 마음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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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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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 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믿으며.. (표지 안, 저자소개)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24쪽)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 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51쪽)

세상의 일상은 무사하다. 그 무사함 안에 팩트들이 들어 있다.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중략)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60쪽)

긴 세월 타지에서 성실한 삶을 배운 뒤에 어느 날 문득 그곳이 타향임을 발견하고 고향을 기억하는 마음 같다고 할까. (중략) 한 생을 세상에서 산다는 건 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일인지 모른다. (62-63쪽)

많은 것이 달라졌다. 또 많은 것이 그대로다 어디에 발을 딛고 설 것인가. 답은 자명하건만 그 자명함 앞에서 매일을 서성인다. 서성임, 그건 자기연민일 뿐이다. (115쪽)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45쪽)

나는 말해야 한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166쪽)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건 나의 죽음이 누군가를 죽게 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나를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187쪽)

선한 사람이 된다는 건 온전히 기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함이 사랑하는 정신의 상태라면 기쁨은 사랑받는 육체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194쪽)

사랑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건 내부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외부로의 표현이다. 사랑의 마음, 그건 사랑의 행동과 동의어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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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가는데, 일어나서는 안 될 이런 재앙이 일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이 번에 읽은 글은 제주도에서 알게 된 장정일과 한영인이 주고 받은 문학 관련 편지 글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시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곁들여 세상사와 서로의 기호품과 일상까지, 결론은 차이가 나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와 존중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삶을 다르게 하고, 천양지차의 결론에 다다른다. 말의 맥락보다는 표면을 보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고... 하지만,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고 판을 치는데, 본인들이 한 말이나 글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나의 잘못을 세상의 잘못으로 치환하지 않기, 후안무치, 자립 등등의 단어가 남아있다.


동생들과 가을 단풍을 즐기자고 만나서,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하면 안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의당을 찍었다는, 그건 사표라는, 최악과 차악의 후보자 등, 진보와 보수, 교회와 목사, 종교생활, 교회출석, 헌금 등까지 밤을 새웠다. 각자의 생각에서 그게 아니고, 틀리고가 아니다로 서로 인정만 하면 된다. 그 중 소주 몇 병을 더 마신 이도 있고, 누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불을 토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   


나는 분명히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점검해 본다. 기준점도 없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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