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스터디에 이름이 없다. 어떻게 선정되는지 무지 궁금하다. 아쉽다. 아깝다. 진짜 열심히 참석하고 공부할건데...속상하다.
영화보다. 셔터아일랜드... 디카프리오의 원래 모습은 뭘까. 보는 이의 생각에 맡겨진 엔딩... 각자의 셔터아일랜드에서 고심해야 한다.
육체는 나름의 감각을 갖고 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체감'이 바로 그것이다. 체감온도, 체감물가란 말에서 보듯이 그것은 상대성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론적으로 증명되는 절대온도나 통계상의 물가와는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이 당신이 느끼는 것과 다를 수 있듯이 '육체'를 자랑하고 '체감'을 존중하는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문화권은 바로 이같은 상대성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했다. 그 바탕 위에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싹텄다.-18-19쪽
유일(唯一)과 전능(全能)을 뜻하는 열쇠, 그것은 한편으로는 배제와 부정을 담고 있다. 오직 그것만이어야 하고 그래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니까. 메마르고 척박한, 그래서 생명체가 잘 자라지 않고 변화가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난 기독교란 종교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땅에서 태어난 유일신 종교인 유태교나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69쪽
아우슈비츠(Auschwitz)와 오수비엥침(Oswiecim). 똑같은 곳을 다르게 부르고 있는 사실에서 이중적인 역사의 실체를 발견한다. -176-177쪽
역사는 창조해 나가며 새로이 써가는 것이긴 해도 기억이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일 뿐 결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은 하나의 유전인자가 되어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며 역사의 레일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입에 오르내리는 '정체성(identity)'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기억을 공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식민지배자는 기억의 도구인 피지배자의 말과 글, 그리고 그 내용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하는 것이 아니던가. -179쪽
자신의 문제를, 그리고 삶을 스스로의 역사적 경험과 뼈를 깎는 듯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이미 이룩한 성과만을 좇아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서구화 또는 위로부터의 혁명은 겉으로는 그럴 듯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곪게 마련이다. 그렇게 곪고 터지는 부분은 혁명을 통해 이득을 보는 소수가 아니라 늘 가난하고, 못배우고, 힘없고, 수모당하고, 박해받는 다수의 약한 자의 몫이 된다. 러시아가 그랬고 또 많은 나라에서도 그랬다. 그것이 어찌 그들만의 일로 끝나겠는가.-194쪽
개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고육지책이다. 위기는 항상 사회 모두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 나타나므로 개혁은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200쪽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선 왜 까마득히 높은 탑이 세워졌는지에 의문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한 마그다 알렉산더는 [탑의 사상]이란 저서에서 탑은 실용적 기능은 없고 오직 형이상학적 기능만 있다는 전제하에, 그 형이상학적 기능이란 '생(生)에의 의지'와 권력에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208쪽
여느 도시 같으면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길도 넓히고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을 짓겠지만 베르겐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수용능력과 정화능력의 범위 내에서만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에 현혹되어 삶의 공간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잠시 이곳을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들은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 것이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미래를 희생할 수 없다는 생각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산다. -236쪽
그러나 오늘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대신 시계를 본다. 내일의 날씨가 궁금할 때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기예보를 듣거나 읽는다.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들을 모두 기계에 맡겨 버린 현대인들은 오직 자기 주위의 사소한 일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늘, 영원, 근본, 전체... 이런 것들은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래다.-310쪽
봄이 거꾸로 가고 있다. 영하의 날씨다. 꽃들은, 어쩌라고..... 춥다. 싱숭생숭,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국토생태를 포함한 종합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사실 박정희의 유신경제보다도 더 성장 이데올로기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산업화에 따른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린벨트와 조림정책에 대한 이해만큼은 박정희가 종합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경제주의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금융정책과 부동산정책 그리고 장기투자전략을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지금의 경제정책은 요상한 방식으로 7년간 이 나라를 지배한 전두환 시절의 경제정책보다 더 근시안적으로 단기실적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전두환 시절과 산업정책을 비교하는 건 상당히 미안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 -39쪽
개혁할 때는 작은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의 의견 그리고 온갖 종류의 눈치를 전부 보던 그 신중함을 보였으면서 왜 한미 FTA에 임해서만 '용기'와 '패기'를 앞세우는 벤처 경영방식으로 바뀌는가? 대한민국, 이제는 결코 벤처기업이 아니다. 지금 빨리 가면 대통령과 몇 사람이 행복해지겠지만, 조금만 더 신중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 -70쪽
세상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답하려고 시도한 사람과 시도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결국 많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106쪽
한마디로 믿고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세대를 우리는 사는 셈이다. -161쪽
'자신의 모자람과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남들이 알게 함'이라는 부끄러움을 통해서 한 세대가, 그리고 한 시대가 협력 진화할 수 있는 것 아닐까?-163쪽
"속도감, 그것은 쾌감이지만, 인생은 쾌감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마지막 저서 [문명의 병] 첫 장에서 지적한 말이다.-172쪽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사악한 결과'라고 부른다. -203쪽
경제를 먹여 살리지는 못해도 소비유목주의에 대항하여 유일하게 정착과 고요함의 문명을 만들어, 시대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제어하고 차분한 우리나라의 원래 문화를 유지할 가능성은 아직도 농업에 있다. -216-217쪽
우리나라 사람들은 껍데기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 껍데기가 아닌 것,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10원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238쪽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싸워야 하는 태도는 타협이 아니라 포기이다. -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