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3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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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세 가지 관점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기형이 주는 형태미이다. 둘째는 빛깔이다. 셋째는 문양이다. 이것은 조선 저기 백자, 18세기 금사리 백자, 19세기 분원 백자 세 유형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이를 종합해서 세 시기 백자의 멋을 요약하면 조선 전기 백자에는 귀티가 있고, 금사리 백자에는 문기가 있고, 분원 백자에는 부티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각 시대마다 갖가지 서정을 담아내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이것이 도자기를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53쪽)

추사 김정희는 결국 글씨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당대인들은 그를 단지 명필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추사는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 시와 문장, 고증학과 금석학, 차와 불교학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를 신묘하게 깨달은 르네상스적 학예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엔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82쪽)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한 사람(위창 오세창)의 노력으로 이처럼 엄청난 작업을 해냈다는 것이 좀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간송 전형필, 다산 박영철, 오봉민 등을 지도하여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데로 나아가게 했으니 나는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건대 위창은 자신의 안목을 민족을 위해 남김없이 베풀며 문화 보국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101쪽)

혜곡 선생(최순우)은 미술품을 ‘학‘으로 보기 이전에 감상하는 자세로 ‘멋‘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느끼는 미적 감흥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그 아름다움의 미적 가치를 하나씩 발견해갔다. 혜곡 선생은 사변적인 논리체계로서 한국미학의 틀을 전개하는 대신 낱낱 유물을 통하여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논증하는 미학적 사고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한국미의 특질은 모름지기 이런 것이다‘라고 실물로서 제시하였다. 경제학으로 치면 이론경제가 아리나 실물경제에 탁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혜곡 선생은 단 한 번도 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말한 일이 없지만, 칸트가 철학[Philosophie]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Philosophieren]을 배우라고 한 말을 원용한다면 혜곡 선생은 타고난 미학자였다. (102쪽)

미술을 애호하여 수집한 진정한 수장가의 마지막을 보면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을 마치 자식처럼 사랑하여 흩어지게 하지 못한다.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호림 윤장섭, 송암 이회림, 화정 한광호처럼 사설 미술관을 세우거나 박영철, 박병래, 이홍근, 김양선처럼 좋은 집에 시집보내듯 박물관에 기증하여 별도의 개인 기증실을 만들게 한다. 혹은 다는 아니어도 장택상, 김지태, 현수명, 서재식, 조재진처럼 애장품 중 아끼던 작품을 흔쾌히 박물관에 기증하고 떠난다. 최영도는 토기만을, 유창종은 와당만을 수집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한광호는 영국박물관에 신라토기를 기증했고, 이병창은 그 뛰어난 한국 도자기 컬렉션을 오사카시립동양도자기미술관에 별실을 만들 정도로 기증했고, 남궁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미술관에 아름다운 조선백자를 기증했고 이우환은 프랑수 파리의 기메박물관에 우리 민화를 기증하여 한국실 전시품의 수준을 높이 올려주었다. 외국에서는 유명한 박물관의 관장을 두고 ‘위대한 거지[great beggar]‘라고 한다. 좋은 수장가의 소장품을 기증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큰 임무이기 때문이다. (149쪽)

이중섭의 그리움은 그리움을 탁월하게 시로 읊은 김소월의 그것에 비견할 만한데 김소월과 이중섭의 그리움에는 큰 차이가 있다. 김소월의 그리움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김소월은 [초혼]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며 목 놓아 통곡하였다. 이에 반해 이중섭의 그리움은 잃어버린 행복, 따뜻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중섭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은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두 아들과 함께 살던 원산 시혼 시절, 아직 가족과 오붓이 생활하던 서귀포 피난 시절, 그런데 세월이 그것을 앗아갔다. 때문에 이중섭의 그리움은 더욱 애절하고 아픔이 느껴진다. 그런 이중섭의 예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은 [황소]이다. (217쪽)

아무튼 미불의 글씨는 개성적인 것, 현대적인 멋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본받는 것은 금기시되는 요술덩어리 같은 것이다. 미불의 글씨를 본받는 자는 모름지기 그 개성이 들뜨지 않게 눌러주는 수련과 연찬을 다른 곳에서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에 빠져 망해버리고 만다. 신영복 선생이 미불의 글씨에서 점, 획의 필법과 필세와 리듬을 익혀 그것으로 독자적인 한글 서체를 만들어감에 있어 무게를 실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하여 나는 우선 선생이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전혀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247쪽)

미술사가와 평론가들은 화가를 평가하면서 그가 이룩한 형식의 근원을 따지기 좋아한다. 어디까지가 개성이고 창의력이며 그가 지닌 예술 경향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곤 한다......김환기의 낱낱 점에는 혼이 들어 있는 것이다. 굳이 유사점을 찾자면 오히려 마크 로스코와 가깝다. 로스코는 인간의 감정은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색채만으로 표현할 때 더 감동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비극적인 감정을 화면 속에 무겁게 담으면서 "누가 내 그림을 보면서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린다면 그는 내 그림에서 나와 비슷한 종교적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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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기억한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근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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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잊지 않는다. 어린애들이 자라면서 흔히 듣는 이야기인데, 아세요? 인도의 한 재봉사가 바늘 같은 것으로 코끼리 엄니를 찔렀대요. 아니다. 엄니가 아니라, 코를요. 코끼리 코, 그러면 코끼리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더라도 그 재봉사 곁을 지날 때면 입 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재봉사의 몸에 쫙 뿌린다죠. 잊지 않고 기억해둔 거지요. 그거에요.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코끼리들을 만나보는 거지요." (48쪽)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이나 이유, 원인을 모른다 해도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에요. 우린 알지도 못하고, 알 방법도 없는 것들을 그들은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기억은 추측을 낳지요. 바람이 났다거나, 병에 걸렸다거나, 동반 자살, 질투 같은 그런 추측들 말이에요. 그런 말들에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더 조사할 수도 있어요." (144쪽)

"코끼리는 기억한다잖아요. 저는 그 말에서 영감을 받아 일을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코기리처럼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기억하곤 하니까요. 물론 누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뭔가 기억나는 것은 있는 법이죠. 그 일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많더군요. 전 제가 들은 여러 가지 얘기들을 무슈 푸아로에게 전해주었고, 무수 푸아로는 그걸로...... 의사에 비유하자면 인종의 진단을 내려 주셨죠."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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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오가며 애거서크리스티 전집을 읽고 있다. 매일 한권씩 돌파? 중이다. 이유는 취미니까.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멀리 있다. 일터를 옮기면서 지반이 흔들리는 걸까, 아님 애매모호한 느낌은 뭘까. 머리 속으로는 결정난 나의 결정을 애써 변명하고 갈무리하고 있다. 그만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하는데, 자꾸 이전의 편안하고 안주했던 기억들이 스멀 올라오면서, 새로운 곳의 불편감을 자꾸 몰아온다. 결국, 욕구는 나의 이기와 편함을 지향하고 있는데, 자꾸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주어진 일을 그냥 하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물렁하게 보일 수 있으니, 뭔가를 주장해야 할까... 결국 이러이러한 나를 알아봐 달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다. 정확한 감정을 잡아내고, 욕심을 걷어내려니, 이리 힘이 든다... 마플 할머니와 푸아로 탐정에게 부탁할 수 밖에... 그리고 잠깐 배운 타로를 가지고 이리저리 연습을 해보니, 웃음밖에 안나온다. 그래서 꿈보다 해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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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를 보고 빌린 책이다. 읽으면서 삼박사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갔는데, 어제는 눈, 바람이 번갈아가며 온종일 섞여서 오가더니,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부랴부랴 내일 표를 바꿔서 겨우 돌아왔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수우동'과 '서연의 집'은 발을 들어 놓을 수 조차 없었다. 소위 유명한 집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도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이틀동안 한바퀴 돌았다....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들으며 큰 통창문으로 파도를 보면서 읽은 책이다...  소설의 구성은 번호와 대개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소제목이 있고, 그 아래 누군가가 했던 명언?이 있다. 그러한 명언 때문에 아래의 내용들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들은 주어진 명제 때문인지 자신의 모습과 현실을 점점 깨닫게 된다. 소피아와 마리아의 각각의 사랑이 들어있다. 그녀들의 사랑의 결말은 완전 다르다... 입동이 아니라 입춘인데 이리 추워도 되는가... 겨울의 제주도와는 늘 엇갈린다. 자유영혼 여자와 걱정인형 남자가 놀러가서 대설강풍이 불었다나... 걱정인형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서울오니 웬걸 햇빛쨍쨍이다... 마음에 담긴 일들, 사람들을 좀 버려도 되건만, 여전히 다시 쓸어담아 오는 걱정인형의 걱정은 언제 멈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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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피버
데보라 모가치 지음, 유혜경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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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여자들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남자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종잡을 수가 없는지. 마치 수수께끼 상자 같다. 여기는 다이얼을 감고 저기는 열쇠를 돌려야만 문을 열고 안의 비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상자 말이다. (27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중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젊고, 충동적으로 행동했으며, 속임수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다만 선생님을 속이고 들키지 않은 어린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가 이성을 잃은 건 아닐까? 너무 무모한 건 아닐까? 우리 두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젊은 여자들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일종의 미친 짓이다. (134쪽)

사람들을 속이다 보니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사람이 되었다.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세계의 입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이런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용케 들키지 않고 해냈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이제는 뒤로 돌아갈 수가 없다. 범죄의 추진력에 휩싸인 것이다. 사악한 성공으로 인해 나는 마냥 들떠 있다. (141쪽)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우리는 수전노처럼 시간을 아껴쓰기도 하고 우리 앞에 펼쳐진 홑이불처럼 시간이 함부로 엎질러지는 것을 본다. 우리의 꿈은 시간에 의해 깨어진다. 우리에게 시간을 알리는 야간 순찰자들의 덜거덕거리는 발소리와 단조로운 목소리에 의해 우리의 꿈이 깨어진다. 그러면 침묵이 우리를 엄습한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진다. 일 분이 천천히 지나간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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