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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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이다. 우리의 존재 양식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초월성인데 그것은 존재 한가운데에 무가 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는 자유와 동의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존재가 초월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173쪽)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영역(부모, 외모 등)이 있는데 이를 사실성이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와 사실성이 합쳐진 존재이다. 이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뛰어넘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주체인 나의 선택과 자유에 달려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내 인생을 선택하거나 살아 줄 수 없다.
모든 결정은 순전히 내 판단으로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대자적인 삶이다. 이것이 자유다. 그 자유를 분명히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심한 불안을 느낀다. 자유에 눈 뜨는 것은 인간에게는 언제나 크나큰 고통이다.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동시에 빛나는 희망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나는 뭐든지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므로.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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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안 베르는 루게릭 병이 자신을 잡아먹는 시간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생의 마지막을 선택한 그녀의 마지막은 여름이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미래를 도모할 수 없고 희망이 없다. 불능과 의존만이 있다. 

그녀의 시간은 정지되고, 손자들은 어른이 되고 계속 나이를 먹겠지만 자신은 영원히 쉰아홉 살로 남게 된다는 것, 현재형만 있다는 것, 언니가 눈 앞에 있지만 손이 아니라 시선으로만 꼼꼼히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촘촘한 바늘 땀으로 맺어진 인연을 풀어헤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시무시하고 늘임표가 찍힌 슬픔을 느낀다는 것, 그녀처럼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는 없을 거다. 

얄밉게도 나는 그녀의 글에서 깊은 안도와 위로를 받는다.

생각해 볼 것은, 죽음을 타인에 의함이 아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그에 앞서 남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나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우리의 의무로 해야 된다로 확장하여 생각해 본다.   

번역도 참 잘하셨다.  

약속이 있어서 생각이 모이지 않는다.

[나의 마지막은, 여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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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은, 여름
안 베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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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차라리 자아의 가장자리에 끼워 넣은 문학같은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것과 침묵의 경계에서,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경계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초월한 것을 말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고 있다. (25쪽)

병원에서 얘기를 듣고 온 날 저녁, 나는 어떤 말도 함께할 수 없다. 그 누구하고도, 그럴 수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은 침묵뿐이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다른 곳에 있다. (47쪽)

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바를 다했다. 몸과 영혼이 온전한 한 덩어리였다. 하지만 이제 한쪽이 다른 쪽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중략)
나는 몸과 루게릭이 손을 잡고 내 뒤통수를 치는 이 삼각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몸은 팔려가 루게릭의 앞잡이가 되었다. 내 삶 전체가 고꾸라졌다. (63쪽)

아직은 죽기 전에 차를 몰아 달리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오가고 싶다. 나는 이제 완전히 남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다. 실현할 수 없는 나의 욕망은 반쯤 죽은 여자의 딱하고 가망 없는 환상일 뿐. (73-74쪽)

나는 손이 아니라 시선으로 꼼꼼히 언니를 어루만진다. (93쪽)

우리는 밤 산책을 한다고 쏘다니고 많이 웃는다. 조금 있으면 죽을 사람이라고 웃지 않을 수 있나? 마지막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무시무시한 슬픔이 나를 짓누른다. 이 정도의 슬픔은, 이렇게 늘임표가 찍힌 슬픔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 (98쪽)

내가 탁구를 칠 수 없다는 현실을 아직까지도 못 믿겠다. 어떤 활동에도 나는 참여할 수 없다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별것 아닌 활동조차도 말이다. (108-109쪽)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과연 넘어가지는 할까? 산 자가 죽은 자가 되는 막 그 순간이 존재하기는 한가? 이승으로 돌아와 알려줄 이, 아무도 없다.
죽는다는 것을 사유하기. 그건 과감하게 이러한 이미지들을 털어내는 것이다. ‘죽다‘라는 동사를 신체의 작동으로만 이해할 것. 그냥 불을 끄는 스위치 비슷하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더 갖다 붙이지 말 것. (123-124쪽)

내가 자유로운 정신으로 내 입과 손과 팔과 다리를 모두 써서 사랑을 나누었던 마지막 때도 그게 마지막이라는 실감은 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껴안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기억할 수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팔을 들어 그들의 목을 뜨겁게 끌어않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하지만 이게 낫지 않나? 딸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이게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마지막이라는 자각은 다 끝장안 사람의 절망만 맛보게 하든가, 우울감이나 회한의 맛을 남길 뿐이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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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달력을 보니 오늘 하루가 더 숨어있었다.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오겠지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 노래를 반복하여 듣는다 : Agnes Baltsa 'There will be better days, even for us'

노래 제목을 달리 보면 와 닿는 의미가 완전 다르다. 고통이 팬던트처럼 목에 걸려 있지 않도록 자신을 깨우치라는 가사가 있다. 


사진 시집, [아직 거기 있었구나]에서는 사진과 시가 각각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둘 다 있어 채워지고 보완되고 있지만, 책으로 내야 할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책 제목에 이끌려 펼쳤다.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늘상 있어 당연한 것들, 사라지지도 가버리지 않고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들이 마음을 헤집고 다닌다. 요즘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예전 일은 오래도 남아 있다. 

산불로 모두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탠다. 나비 효과를 믿어본다. 

3월 31일이 있었구나,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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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기 있었구나
김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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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기

바람 한 줄기와
한때의 봄비
또 다른 날의
햇살 한 줌이면 됩니다. (27쪽)

우포

수억 년 전부터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거기 그대로 있었다. (48쪽)

섬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생기고 나서도
섬은
섬에 닿을 수 없다. (65쪽)

기다리기

희미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 있다
어쩌면
사랑도 그렇다

그 마음, 잔잔해지길 바랄 뿐이다. (103쪽)

많은 나에게

너의 몸을 좀 쉬게 해
(중략)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또 아주 오래까지 있을 거야
그리고 하루는 그치지 않을 거야. (137쪽)

하루

행과 행 사이를
행간이라 부른다

행간에는 말로 하지 못하는
더 많은 말들이 숨어 있다

안녕이라는 말과
안녕이라는 말 사이에
하루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말은 흔들려도
행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158쪽)

중독

검은 표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진주같이 반짝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감출 수 있는 듯
어둠으로 가득했다. (200쪽)

벽들은 눈물의 색깔

벽이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습니다.
(중략)

오래된 벽돌에는 담쟁이가 자랍니다
벽이 흘린 눈물을 먹고 담쟁이가 커 가기 때문이지요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이쪽저쪽을 갈라놓아야 하는
안쪽과 바깥쪽이라는 다름을 견뎌야 하는 벽이기에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 다름의 편견으로 담은 더 높아지고 견고해져서
담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리니까요
사실 눈물은 진실이 아니라 위장인지도 모릅니다
(생략)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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