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차라리 자아의 가장자리에 끼워 넣은 문학같은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것과 침묵의 경계에서,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경계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초월한 것을 말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고 있다. (25쪽)
병원에서 얘기를 듣고 온 날 저녁, 나는 어떤 말도 함께할 수 없다. 그 누구하고도, 그럴 수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은 침묵뿐이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다른 곳에 있다. (47쪽)
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바를 다했다. 몸과 영혼이 온전한 한 덩어리였다. 하지만 이제 한쪽이 다른 쪽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중략) 나는 몸과 루게릭이 손을 잡고 내 뒤통수를 치는 이 삼각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몸은 팔려가 루게릭의 앞잡이가 되었다. 내 삶 전체가 고꾸라졌다. (63쪽)
아직은 죽기 전에 차를 몰아 달리고 싶다. 아무 생각없이 오가고 싶다. 나는 이제 완전히 남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다. 실현할 수 없는 나의 욕망은 반쯤 죽은 여자의 딱하고 가망 없는 환상일 뿐. (73-74쪽)
나는 손이 아니라 시선으로 꼼꼼히 언니를 어루만진다. (93쪽)
우리는 밤 산책을 한다고 쏘다니고 많이 웃는다. 조금 있으면 죽을 사람이라고 웃지 않을 수 있나? 마지막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무시무시한 슬픔이 나를 짓누른다. 이 정도의 슬픔은, 이렇게 늘임표가 찍힌 슬픔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 (98쪽)
내가 탁구를 칠 수 없다는 현실을 아직까지도 못 믿겠다. 어떤 활동에도 나는 참여할 수 없다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별것 아닌 활동조차도 말이다. (108-109쪽)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과연 넘어가지는 할까? 산 자가 죽은 자가 되는 막 그 순간이 존재하기는 한가? 이승으로 돌아와 알려줄 이, 아무도 없다. 죽는다는 것을 사유하기. 그건 과감하게 이러한 이미지들을 털어내는 것이다. ‘죽다‘라는 동사를 신체의 작동으로만 이해할 것. 그냥 불을 끄는 스위치 비슷하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더 갖다 붙이지 말 것. (123-124쪽)
내가 자유로운 정신으로 내 입과 손과 팔과 다리를 모두 써서 사랑을 나누었던 마지막 때도 그게 마지막이라는 실감은 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껴안았던 때가 언제인지는 기억할 수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팔을 들어 그들의 목을 뜨겁게 끌어않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하지만 이게 낫지 않나? 딸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이게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마지막이라는 자각은 다 끝장안 사람의 절망만 맛보게 하든가, 우울감이나 회한의 맛을 남길 뿐이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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