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도 결코 이러지 않았다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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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린다 리는 더러운 지중해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첨벙거렸다. 내가 지루해하는 것이면 뭐든 즐기고, 내가 즐기는 것이면 뭐든 지루해하는 여자 같으니. 우리는 완벽한 짝이었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견딜 만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거리distance가 우리를 묶어주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할 기회도 없었다. 완벽했다. (20-21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나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사교댄스. 롤러코스터 타기, 동물원 구경, 소풍 가기, 영화 보러 가기, 천문관 관람, 텔레비전 시청, 야구 경기 관람 등. 장례식, 결혼식, 파티, 야구장, 자동차 경주, 시 낭송회, 박물관, 집회, (중략) 스포츠 경기에도 가기 싫다.... 또한 해변, 수영, 스키, 크리스마스, 새해. 7월 4일 독립기념일, 록 음악, 세계사, 우주 탐험, 반려동물, 축구, 성당, 위대한 예술 작품에도 관심 없다. 거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자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글을 쓰고 또 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햄버거를 씹는 강간범의 생각과 기분, 공장 근무자의 생활, 길바닥의 삶, 빈자와 불구자와 미치광이의 방 같은 하찮은 것들을 쓴다. 나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많이 쓴다. (54쪽)

나는 시 낭송 사이사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었다. (중략) 독일 군중에겐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그간 수많은 낭송회를 가졌다.(중략) 낭송회 청중은 특정한 부류의 시를 선호했는데, 그들은 웃기는 시를 좋아했다. (중략) 그런데 함부르크 군중은 이상했다. 내가 웃기는 시를 읋으면 웃음을 터뜨렸지만 심가한 시를 읋으면 열렬히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다른 문화였다. (중략) 내 시는 지적이지 않았지만, 일부 청중은 진지했고 열광했다. 군중에게 내 시를 이해받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정신이 말똥해져 술을 더 마셔야 했다. (72-73쪽)

한 청년은 계속 내 얼굴에 마이크를 디밀었고, 녹음테이프는 계속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서 깊이 있는 것을 끌어내려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내 얼굴에 디민 이 마이크만 없다면 그렇겠지, 멍텅구리 씨...." "여성을 싫어합니까?" "아이들만큼 싫진 않아." "인생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요?" "부정否定하기" "그럼 인생의 기쁨은?" "자위행위" "그럼 인생의 참맛은?" "반값 세일" 그날 밤이 어떻게 파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13-114쪽)

나는 느끼는 대로 감정에 의해 행동한다. 내 감정은 다치고, 고문당하고, 저주받고, 길 잃은 사람들에게 향한다. 동정심이 아니라 형제애의 발로에서. 나 역시 길을 잃었고, 혼란스러복, 저열하고, 쪼잔하고, 겁 많고, 비겁하기 때문이다.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반짝 친절을 베풀 뿐이다. (115쪽)

인생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 연기하려고 배웠을 뿐이다. 간혹 자살 사건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만사 즐거운 듯 계속 연기한다. (121쪽)

바벳이 부엌에 들어가 그 물고기(강꼬치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 좀 봐! 이 이빨 좀 보라고! 엄청난 놈이야!" 그의 손에 그것이 매달려 있었다. 죽은 몸으로. 길고 날씬한 전직 킬러가 우리 눈 앞에. 바로 앞에 있었다. 놈은 죽어서도 아름다웠다. 한 치의 오류도 없었고, 한 점의 과다한 지방도 없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창조물. 찢고, 뜯고, 둘러보고 헤엄치는 삶. 도덕도, 성경도, 친구도 없는 그저 돌진하는 삶. (153쪽)

독일은 내가 태어난
곳.
할리우드는 내가 사는
곳.

나는 독일에 갈
것이다
말들과 이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우드 앤더슨이 우리와 동행할
것이다.
양식이 떨어졌을 때
그의 책은 내게
양식이었다.

-‘다 함께‘ 중에서(176쪽)

독일인들은 1914년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의 과묵하고 자제하는, 특별히 눈에 띌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섬세함은 내 기운을 돋우었다. 자신과 타인을 인내하는 무관심이라니.

만하임 기차역에서 맥주꾼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믿는 무엇이 선포하고 성취하는 것을 목도한다. 역사의 한 장과 삶의 한 현장에 선 그들이 시연하는 것은, 삶이란 때때로 지독하게 다가오지만 어떨 때는- 어쩌면 자주 -아득바득 악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맥주 맛이 좋고, 기차는 올 테니까.

-‘기차역‘ 중에서(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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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지에서 계간지로 나오는 소설 보다를 자주 구매한다. 

-바우어의 정원(강보라)은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연극으로 포장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러한 모습들은 나의 경험과 관련있다. 이제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스무드(성해나)는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인 내가 한국에 와서 이물같은 존재로서 서로의 이해와 몰이해의 간극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관계랄 거도 없는 관계,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남은 여름(윤단)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소파와 늦게 입사하여 관계보다는 자리에 연연해온 추팀장은 어쩌면 동일 선상에 있다. 잘못한게 없는 데도 관계가 없으니, 관계를 못하니, 잘못한 사람이 된다. 


2. 봄날의 이야기(오정희)를 같이 읽으면서 저자들의 나이만큼 소설의 내용도, 깊이도 엄청났다. 봄날의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묵히고 묵혀 삭혀서 만들어 낸, 삶의 끝자락에서 회한도 아니고 위로도 아닌, 제3의 눈으로 보거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식이 돌아보면서, 회상하는 글들에서 남은 자들은 어떡하든지 그 기억들을 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나머지 시간들을 살아 낼 수 있다.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왔던 것 같기도 했다(봄날의 이야기).'

'잊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지만 나이 팔십이면 잊는 것도 잃는 것도 그다지 안타까워할 일은 아닌 것이다. 기억이 너무 많으면 영혼이 무거워서 저승 가는 길이 힘들어질 것이다(보배).'

'어머니가 앞서 힘겹게 통과한 그 모든 시간들을 나 또한 지나가고 있으며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도감이 들고 두려움이 가셨다. 다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겼다(나무 심는 날).'


*오정희 글에 마음이 더 간다. 익숙한 문체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감대가 더 생긴 이유일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이러한 단어들(어둑신, 비긋이 등등)이 무척 친근했다. 

*예쁜 내 동생 환갑에 다녀왔다. 축하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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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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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받은 번역 대본을 읽으며, 이 연극이 자신이 생각하는 배우의 일 -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 -을 완전히 거스르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16쪽)

어쩌면 소설을 쓴다는 건 무심결에 흘려보낸 기억의 틈을 더듬더듬 메우는 일인지도요. (61쪽)

아주 좋은 사람들. 그의 말을 나도 미온하게나마 수긍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고 수고를 마다 않고 마음까지 내어주는 온정 넘치는 이들이었다. (101쪽)

이해의 온기를 보여주는 순간, 바로 그 이해의 얄팍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요.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이 몰이해의 결과일 수도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순간이 이해의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115쪽)

하늘이 너무 아름답잖아.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자연스러운 것들은 좀 수상해. 이유를 알면 수상함이 풀려? 흠, 꼭 그렇지는 않아. (152쪽)

슬픔이나 분노, 사랑, 질투, 부끄러움, 죄책감과 같은 마음에는 모종의 불편함이 앞서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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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 전혀 맞지 않는 친구 '카츠'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좌충우돌한 사연을 읽으면서 상쾌, 통쾌, 유쾌까지 했다. 남의 위험과 고난에 대하여 이렇게도 웃어도 되나,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그러나 자연을 대하는 자세와 삶의 태도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한다. 트레일은 삶의 여정과 유사한 거 같다. 가는 길에는 잘 맞는 친구가 있을 수 있고, 싫은 사람과 피하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있고, 선택해야 하는 여러 갈래의 길과 위험이 도사리는 길도 있고, 의도와는 달리, 다른 환경과 결과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예상하든,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경우의 수가 도처에 숨어 있다. 그러나 목적지까지는 언제나 과정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삶이란 나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살아내야 되는 것임을, 중단과 포기를 수용하면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담백하게 담담하게 진솔하게, 성공한 완주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유명한 등산가 조지 맬러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 그 곳에 있기에 가야 하고, 그 곳에 있기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게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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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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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중략) 말 그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거기에서는 당신에게 일어날 수가 있다. (19쪽)

수개월 동안 이 날을 위해서 기다려왔던 것이다.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59쪽)

숲은 어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은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중략) 술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74쪽)

나는 살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 신의 섭리라는 것을 안다. (84쪽)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꽤 먼 길이고, (중략) 그리고 삶 역시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날이 새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중략)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중략) 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또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일 뿌니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 내일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112-113쪽)

함부로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인 그 숲은 대책없는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거기서 죽고 싶다. (174쪽)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찔끔거리지 않고 계속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긴 것이다. (274쪽)

미국에서는, 제기랄, 아름다움은 차를 몰고 가야 마주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자연은 양자택일적 제안-탁스 댐이나 수많은 다른 곳에처럼 성급하게 정복하려고 하거나 애팔래치아 트레일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곳으로 신성시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느 쪽이든 사람과 자연이 서로가 이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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