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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임재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평점 :
(사진 출처: 아르테 네이버 포스트)
마음의 병,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깃든 사람들. 그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며,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사람. 그의 일기 같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내 마음에 떠오른 한 분. 몇 년 만에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오신 그분.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분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계실 때, 마음의 병이 다가왔다던 그분. 내가 만났을 때는 다행히 마음의 병이 안 보여서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병이 다시 찾아왔고, 소문이 돌았다. 불안증이라고 들었다. 잘 웃으셨고, 친절하셨던 분이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소문을 낸 사람이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다니던 교회에서 멀어지셨던 분. 지금은 마음의 병을 지우고, 두 아이를 잘 키우고 계시다고 들었다. 마음의 병이 있다고 백안시(白眼視)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에 깊은 상처를 받고 병원을 가까이 하지 않는 분들. 그런 분들을 보고, 홀로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분들. 그분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행키.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든 그분의 선율을 생각하며, 행키의 이야기를 살포시 포개어 본다.
'그들은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속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홀로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프롤로그 '당신 곁에 한 사람' 중에서. (6~7쪽)
그들의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고 싶었다는 정신과 의사 행키. 행키는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라고 한다. 영어 'hanky'는 손수건(handkerchief)의 준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자 행복을 키우는 행키라고 한다. 사실, 그도 마음의 병을 앓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의대에 진학해 우울증을 만났던 그. 동병상련으로 마음의 병든 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거리로 나선 그. 거리의 의사다. 상담 트럭을 끌고 나선. 처음에는 사람들이 찾지 않던 상담 트럭. 그 우여곡절이 그려져 있다. 그러다가 TV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고. 그렇게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에 여러 상담이 이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 일기는 마음 깊숙이 들려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의 사례를 사실에서 살짝 변형하여 들려준다. 그분들에 대한 예의로. 그리고 행복을 키울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1.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라', '2.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 '3. 타인에게 먼저 도움의 손을 내밀어라', '4. 현재에 충실하라', '5.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목표에 헌신하라'를 말하기도 하고. 또, 2016년 2월,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라는 이름으로 거리 상담을 시작한 행키.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 사연도 들려주고.
'어쩌면 병원은 병이 난 후에나 찾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늦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병원은 검사와 예방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한데 말이다. 특히나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에 찾기를 꺼린다. 결국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가서 도움을 받을 만한 정신 의료 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거리와 병원 사이' 중에서. (201쪽)
행키가 말하길 마음이 아픈 분들이 정신병원에 오는 데 보통 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8개월 동안 병을 키운 그분들. 그 18개월을 줄이고자 거리로 나섰던 행키. 병원, 정신건강복지센터, 거리 상담을 모두 경험한 행키. 병원은 편견으로 문턱이 높고,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병원에 비해서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그곳을 상상하는 행키. 또, 정신 질환 예방, 조기 발견 및 조기 개입, 치료까지의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절감한 행키.
며칠 전, 보호자로 같은 병원에 다닌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셔서, 그곳에서 뵐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농담조로. 그런데, 병원에서는 만나지 않는 것을 바란다는 그분. 병원은 병이 있는 사람만이 오는 곳이라 생각하셔서 그런 것이리라. 난 병원은 건강검진도 하는 곳이라 병원에서 뵙는 건 나쁘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치료도 있지만, 예방과 조기 발견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의 병에도 예방과 조기 발견의 힘이 잘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라는 이 책의 작은 이름. 그 이름에서 보듯, 역시 이 이야기는 일기였다. 마음의 병을 이겨내는 온기를 담은 일기. 그 용기와 그 희망을 따뜻하게 담은 일기. 소중한 일기. 마음의 병을 지운 그분, 바이올린을 연주하셨던 그분의 가락을 음미하며, 이 따사로운 일기에 추위를 녹여 본다. 이 따뜻함, 나눌수록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