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 - 다시 만난 겨울 홋카이도 윈터홀릭 2
윤창호 글.사진 / 시공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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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홀릭 첫번째 이야기도 그렇게 좋아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행 자체를 별로 안좋아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다는 주의라서 산 책이긴한데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쓸쓸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어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죠.

음, 한 번 훌훌 읽어보기에 딱 좋군 정도? 하지만 일단 첫 권을 사면 시리즈를 다 사는게 버릇인지라 저도 모르게 다음권이 나온걸 알고는 사고 말았습니다. 한 1년 반 전, 겨울에 보려구요. 근데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나 이 한여름에 보게 됬습니다.

한 여름에 봐서 그런지, 아니면 1년간 제 감성이 더 메말라서 그런지 전편보다 더욱 더 감상적인 면이 두드러져 보이더군요. 쓸쓸함을 강조하는 점도 더 심해진것 같고요. 여름은 어딘가 생동감 넘치고 활기차 보이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식물들과 태양의 힘이겠죠. 겨울은 아무래도 약간 쓸쓸하고 어딘가 허전한 감이 있습니다. 눈과 구름, 낮은 일조량의 힘일테죠. 그렇다 하더라도 겨울이 가진 쨍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가진 아름다움, 아무것도 숨길거나 감출수 없는 순수함, 눈과 얼음이 가진 아름다움도 한가락 하거든요.

근데 그런게 별로 없어요. 어딘지 허무한 느낌만 잔뜩 강조해서 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 느낌에는 좀 어정쩡한 책입니다. 사진집이라기엔 사진이 별로 안 멋있고, 여행기라기엔 너무 감상적이고, 그냥 에세이랄지 산문집이랄지 그 어디쯤에 있는 정체를 모르겠다는 느낌의 책이랄까요.

첫 번째 이야기도 제가 좋아하는 내용은 아니었으니 두 번째 크게 마음에 들거라고 기대하고 본 책은 아니라서 그냥저냥 전과 같이 한번 훌훌 읽어보기에 딱 좋군이 제 감상입니다.

다만, 사진 중 한 장, 아이누 중 여인들이 춘다는 민속춤을 찍은 사진을 보고는 순간 헉! 했습니다. 보는 순간 뭐라 말할수 없는 기가 느껴지더라구요. 멋있다거나 예쁘다거나 한게 아니라 사진에서 확 튀어 나오는것 같은 느낌의 기랄지 포스랄지 하는게 느껴지더라구요. 사진에서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라서 깜짝 놀라서 몇 번이나 다시 봤습니다. 다시 봐도 역시나 강렬한 느낌이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에서 헉! 할 정도로 강한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 무척 놀랐지만 굉장히 기분도 좋았습니다. 이래서 사진을 큰 돈 주고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더군요. 어찌보면 별것아닌 사진인데 볼수록 인상깊었습니다. 언젠가 그 춤을 꼭 한번 진짜로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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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동물학자 어니스트 시튼의 두 작품을 읽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북극은 시튼 자신이 직접 캐나다 북쪽 지방을 여행하고 지은 책이고 밑의 탐정동물기는 일본인 작가분이 시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서 만든 가상의 탐정소설입니다. 둘다 시튼이라는 말에 혹해서 산 책이라 같이 봤습니다.

시튼 동물기와 파브르 곤충기는 저희때만해도 어린이들을 자연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두 양대산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두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정도로 유명하죠.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에 시튼 동물기를 읽은걸로 끝일뿐 실제 어니스트 시튼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른다는걸 알았습니다. 게다가 시튼동물기에는 시튼 자신은 별로 등장하지 않고 동물들만 등장하니까 이름만 유명할뿐 아무것도 아는게 없더군요.

그런 생각에 구입한 아주 오래된 북극, 그리고 그냥 시튼이 등장한다니까 덩달한 구매한 시튼 탐정 동물기. 아주 오래된 북극은 꽤 좋았습니다만 시튼 탐정 동물기는 약간 시시했습니다. 단편들의 모음이다보니 사건들 자체가 너무 소소하니 작고 결론도 순식간에 내려져 버려서 재미가 없더군요. 첫째로 동물들의 탐정 활약상이 너무 적어서요. 좋게 보면 코지 미스터리같은 소소한 재미가 있는 책이지만 전반적으로 시시하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더군요.

아주 오래된 북극은 시튼 자신의 탐험긴데 말은 북극이긴 한데 사실은 캐나다 위쪽 지역 정도, 알래스카 아래 지역까지만 나오더군요. 눈은 안나와요. 이미 미국내에서는 멸종한(자신들이 멸종시킨) 버팔로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인데 결국 버팔로는 못보고 그 다음으로는 순록떼를 찾아나서는 내용입니다.

약간 아쉬운 점은 동물등의 생태에 대한 얘기만큼이나 캐나다 북부 원주민인 인디언들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좋게 보이지 않더군요. 자신들이 망친 사람들의 단점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는건 언어도단이죠. 알래스카 원주민이나 에스키모(이누이트라고 해야하나), 북미 인디언들의 삶을 망친건 바로 시튼 자신이 대표하는 주류사회의 백인들인데. 읽는데 약간 씁쓸하더군요. 더구나 그 문제는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니까요.

그 부분을 뺀 야생의 동물들과 자연 풍광을 얘기한 부분은 좋았는데 문제는 그 양이 반이나 된다는 점. 결과적으로는 둘다 마음에 든 책은 아니었고 목적했던 어니스트 시튼이 어떤 사람이었나에 대한 기대치도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이름이 어니스트 였다는거, 고거 하나 제대로 건졌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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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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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앞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님의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다가 아~이거 내가 산 책 같은데..싶은 책 발견. 이탈리아의 각 지역과 음식을 주제로 네명의 작가가 단편을 적기로 해서 오늘 모임을 가졌다는 내용인데 분명 내가 산 책이다 싶어 책무더기를 뒤졌는데 다행히 근처에 같이 쌓여 있어서 연달아 읽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습게도 전작인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으면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가끔 날 감동시키는 작가분이야 라고요. 총 4명의 작가분이 각기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근데 일본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점) 쓴 네 편의 단편집인데 단편집을 좋아하지는 않는 제가 이걸 산 이유는 아마도 음식에세인줄 알고 샀던것 같습니다.

근데 앞에 세 편이 다 마음에 안들더군요. 딱 한편, 에쿠니 가오리님의 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에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분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이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딱 친적이 있습니다. 이 작가분의 글은 대체적으로 제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좋았습니다. 가족이라고 꼭 같이 모여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연결되기 때문에, 남이라면 떨어지겠지만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도 연결될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전에 한 SF 소설에서 읽은 내용인데 같은 사과나무의 사과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겠냐며 자기들은 다 비슷한 부류라는걸 강조하는 글을 읽으면서도 역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수도 있잖아. 심지어 우주로도 날아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웃긴데 라는 생각요. 물론 이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이상 멀리 갈수 없다, 말하자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의미인걸 알고 있습니다만, 정말 꼭 그럴까요.

원래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강요하는게 아닐까 하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암암리에 그런 생각과 행동방식을 주입하는게 아닐까요.

이 책에 나오는 두 편의 작품은 가족과 고향을 모티브로 잡고 있는데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주인공들을 가족들은 곁에 남아 주기를, 자신들과 같아 주기를 강요합니다. 그러기 싫다고 했던 주인공들은 세상 살다보니 깨달은 진리가 역시 가족과 고향이라 라면서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죠.

가족, 좋습니다. 하지만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할때도 많습니다. 가족이라는게 항상 따뜻하고 푸근하지만은 않습니다. 고향, 역시나 좋죠. 하지만 살다보면 도시랑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들로 힘들게 마련입니다. 아무 문제없는 장소와 사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남보다 문제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라낼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전 기러기 아빠는 반대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철이 들기전까지 즉 20살이 되기 전에는 같이 사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떨어지면 가족의 느낌을 가지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그 이상이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가족이란 떠나보낼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다고 해도요.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저부터도 제가 아이가 있어서 지 맘대로 산다면 조금은 싫을거 같아요. 들인 공이 얼만데, 바친 세월이 얼만데, 본전 생각 안할수는 없을것 같거든요. 이런 생각이 무지 속물적이긴 합니다만, 뭐 아직 자식이 없어서진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돌아온 탕아를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사람들과 가족들이 먹히는거야 라고 생각하니 조금 실망스럽고 재미가 없더라구요. 실제 세상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뭐라 평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가족의 입장이란것도 있으니까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를 이어 똑같이 전통을 이어가며 살겠다는데 뭐라긴 어렵긴 합니다만 적어도 소설만은 좀 더 달랐으면 합니다.

혹시 압니까,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굴러굴러 개울까지 가서 강으로 가서 결국은 바다까지 가게될런지. 그런 점이 우리가 후손에게서 그리는 미래가 아닐까요.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 싶은데.

이 책에서 제일 싫었던 단편은 한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은 죽도록 싫어했지만 알고보니 인생을 전부 아들을 위해 희생했더라는 그런 흔한 모성 이야기. 모성은 정말 위대한걸까요? 위대하라고 강요되어지는걸까요? 아이가 없는 저는 가끔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런 모성의 강요가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것은 좋지만 내 삶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의 입장에서도 이런 어머니가 정말 위대하기만 할지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지. 자식을 홀대하고 버리는것도 좋지 않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희생도 꼭 좋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마음에 든 에쿠니 가오리님의 글은 한마디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말았군요. 좋은건 그냥 마냥 좋지만 나쁜점은 웬지 이래저래 하다고 변명처럼 말을 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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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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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야 사바렝이라는 사람이 했다던가요, 네가 먹는 것을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겠다는 말을.

이 책을 읽고는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씨는 좀 이상한 작가분인데 뭐가 이상하냐면 이 분의 글은 솔직히 제 취향이 아닙니다. 한 80%정도는요. 그런데 한 20%정도는 깜짝 놀랄만큼 제 맘에 들거든요.

이 분의 글을 읽을때마다 약간 서글픈 느낌이 듭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추운건 아니지만 웬지 등이 썰렁하달지 스산하달지 하는 느낌을 주는 글이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두어편 정도는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죠.

그래서 항상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사게되는 작가분인데 이 책을 보니 약간 그 점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이 책은 자신의 생활을 - 주로 음식관련된 생활을 쓴 에세이집인데 식생활을 보니 전반적으로 나랑은 다르구나 싶은 분이더라구요. 근데 한 두 부분은 정말 저랑 똑같은, 공감가는 이야기가 적혀 있더군요. 역시 싶더라구요. 이런 점은 나랑 정말 안 맞고 이런 점은 나랑 맞구나 싶어서요.

가장 다른 점은 작가소개의 사진에서 보면 알수있듯이 굉장히 마른 분인데 식생활을 보니 알겠더라구요. 이렇게 먹으니 날씬할수 밖에. 저녁을 제외하고는 순 과일만 먹고는 하루를 보내더군요. 과일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과일만 먹고 어떻게 힘을 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밥의 탄수화물이나 과일의 당분이나 몸에서는 거기서 거기인지 몰라도 든든함이 다르잖아요. 그깟 과일쪼가리나 먹고 어떻게 이 힘든 직장생활을 하라는거야라는게 제 솔직한 심정이라서.

거기다 하루의 시작을 두 시간짜리 목욕으로 한다는 점도 그렇고요. 제게는 목욕이란 언제나 하루의 마감입니다. 목욕이란 파이팅이 아니라 릴렉스잖아요. 하루를 마치고 늘어질때나 하는거지 하루의 시작으로 삼기는 심히 이상하다고 보거든요. 더구나 2시간이나. 그러고 나면 피곤해서 일이 되나 싶더라구요.

그런데 특별한 날이나 여행지에서의 외식을 말할때는 이런 점은 나랑 같네 싶더군요. 여행을 가서 오랜만에 과식을 한 후의 느낌이나 특별한 저녁식사같은 이야기는 저랑 취향도 맞고 느낌도 같고 해서 이런건 또 코드가 맞네 하면서 봤습니다. 이 점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20%이고 일상은 전혀 저랑은 다른 분이더군요. 극과 극이랄수 있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는 저랑 하나도 맞는 점이 없더군요.

읽으면서 이제야 이 작가분에 대한 제 느낌이 이해가 가더군요. 이래서 좋다 말았다 하는구나 하고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이래서 샤바렝이라는 사람이 저런 말을 했구나 하고 실감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작가분을 제가 많이 좋아할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를 깜짝 놀라게 할만큼 멋진 20%를 기대하면서 여전히 놓지 못할 작가분이 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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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터 -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수집생활
이우일 지음 / 톨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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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으며 생기는 문제는 실로 다양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말로 그 무게 대문에 방구들이 꺼질 수도 있다는 거다. "

"책이 많아 생기는 또다른 문제는 집에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의 효용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떤 책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면 도대체가 그 책을 가지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이 두 문장을 읽으면서 정말!! 정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책을 모으며 생기는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부피와 무게입니다. 책이란 정말 의외로 상당한 무게와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입니다. 저는 보통사람으로는 좀 많달수 있고, 책 좀 읽는다는 분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는 수준인 5천여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요, 이거 상당한 공간을 차지합니다. 제 방의 세 면은 모두 책장입니다. 나머지 한 면은 컴퓨터와 TV구요. 그것도 모자라서 머리맡에 쌓아둔 책이 500여권 정도, 박스에 들어가 있는 책이 100여권 정도 됩니다.

이쯤 되면 두 번째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이우일 작가님마냥 많지는 않기때문에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걸 꺼낼수가 없습니다. 쌓아둔 500여권의 너머에 있는 책장에 벌써 1년째 접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쌓아둔 책 무더기에서 먼저 읽고 싶은 책이 보여도 꺼낼수가 없습니다. 이걸 다 정리하고 싶어도 더 이상 꽂아둘 책꽂이가 없습니다. 제방은 포화상태인데 엄마는 거실에는 절대 책장 놓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내 집인데! 라고 소심하게 마음속으로만 외쳐봅니다.

여기서 세번째 문제 생깁니다. 물건이란 쌓아두면 먼지가 생깁니다. 중고가 아니라 오랜만에 새 책을 사놓고도 쌓아둔채 헌 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구석탱이의 책을 한번 펼쳐보려면 먼지 먼저 닦고 책 사이의 벌레 한 마리쯤은 잡아야 합니다. 얼마전 집 안에 갑자기 나방에 몇 마리 나타났을때 겁이 덜컹 나더군요. 혹시 내 책을 좀먹고 있는 벌레에서 생긴건가 하고요.

그렇다고 박스에 넣어서 두자니 보고 싶을때 꺼내볼수가 없죠. 사실 비싸고 귀한 책은 박스에 넣어서 보관중입니다. 팝업북이나 비싼 그림책이나 일러스트집같은거요. 근데 보고 싶을때 꺼내보기가 너무 힘듭니다. 의자 가져와서 박스 꺼내서 먼지 털고 테이프 뜯고 한 번 보고나면 다시 이 과정을 거꾸로 해서 집어넣습니다.

겨우 5천권 정도로 이정도인데 제가 사고 싶은 책, 중고로 다시 판 책들까지 다 보관하고 있다면 문제는 말도 못할정도겠죠. 여기서 생기는 마지막 문제.

"자신의 손때가 맏은 오래된 책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좋은 책은 내용을 다 알아도 두고두고 쓰다듬고 펼쳐보고 싶다."

이겁니다. 한마디로 다시 팔기가 싫은거죠. 10권사면 겨우 1권 파는데 책이 줄턱이 없죠. 그리고 가끔은 정말 다시 볼것 같지 않아서 판 책들도 아까울때가 있습니다. 서재가 있었으면 한 번쯤 더 볼수도 있는데 싶거든요. 저는 책을 손에서 놓기가 정말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이 책을 보며 크나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나보다 더한 인간도 있구만~~싶더군요. 훗~여기 비하면 나는 새 발에 피야. 다른걸 안 모으잖아. 그런 상큼한 기분으로 또다시 마법의 램프를 문지르고 말았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님의 잡문집을 산거죠. 다시는 안산다 다짐했던 한국 만화도 두 종류를 더 구매했습니다. 이제 약간 질리는 감도 있는데 라고 생각한 빌 브라이슨의 호주 여행기도 제 품에 있군요. 사흘사이에 12권이 더 불었습니다. 조금 위안이 되는건 중고로 3권을 되팔았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안 팔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이 좀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책에 대한 과한 애정. 확실히 골치 아픈 것이지만 왠지 다른 물건들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금 낫게 느껴진다. 책은 단지 종이를 잘라 인쇄를 하고 순서대로 여러 장을 겹쳐 묶어놓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겐 마법과도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물건도 이런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고 봅니다. 비록 제 책장의 책들이 세상의 진리나 어둠을 밝혀주는 빛과 소금과 같은 책이 아니라 그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삶에 위안을 주는 알코올 정도의 수준밖에 안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물건도 제 책장을 볼때처럼 절 뿌듯하고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 행복을 위해서, 그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수집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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