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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요 앞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님의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다가 아~이거 내가 산 책 같은데..싶은 책 발견. 이탈리아의 각 지역과 음식을 주제로 네명의 작가가 단편을 적기로 해서 오늘 모임을 가졌다는 내용인데 분명 내가 산 책이다 싶어 책무더기를 뒤졌는데 다행히 근처에 같이 쌓여 있어서 연달아 읽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습게도 전작인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으면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가끔 날 감동시키는 작가분이야 라고요. 총 4명의 작가분이 각기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근데 일본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점) 쓴 네 편의 단편집인데 단편집을 좋아하지는 않는 제가 이걸 산 이유는 아마도 음식에세인줄 알고 샀던것 같습니다.
근데 앞에 세 편이 다 마음에 안들더군요. 딱 한편, 에쿠니 가오리님의 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에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분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이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딱 친적이 있습니다. 이 작가분의 글은 대체적으로 제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좋았습니다. 가족이라고 꼭 같이 모여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연결되기 때문에, 남이라면 떨어지겠지만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도 연결될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전에 한 SF 소설에서 읽은 내용인데 같은 사과나무의 사과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겠냐며 자기들은 다 비슷한 부류라는걸 강조하는 글을 읽으면서도 역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수도 있잖아. 심지어 우주로도 날아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웃긴데 라는 생각요. 물론 이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이상 멀리 갈수 없다, 말하자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의미인걸 알고 있습니다만, 정말 꼭 그럴까요.
원래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강요하는게 아닐까 하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암암리에 그런 생각과 행동방식을 주입하는게 아닐까요.
이 책에 나오는 두 편의 작품은 가족과 고향을 모티브로 잡고 있는데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주인공들을 가족들은 곁에 남아 주기를, 자신들과 같아 주기를 강요합니다. 그러기 싫다고 했던 주인공들은 세상 살다보니 깨달은 진리가 역시 가족과 고향이라 라면서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죠.
가족, 좋습니다. 하지만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를 더 힘들게 할때도 많습니다. 가족이라는게 항상 따뜻하고 푸근하지만은 않습니다. 고향, 역시나 좋죠. 하지만 살다보면 도시랑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들로 힘들게 마련입니다. 아무 문제없는 장소와 사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남보다 문제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라낼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전 기러기 아빠는 반대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철이 들기전까지 즉 20살이 되기 전에는 같이 사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떨어지면 가족의 느낌을 가지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그 이상이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가족이란 떠나보낼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다고 해도요.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저부터도 제가 아이가 있어서 지 맘대로 산다면 조금은 싫을거 같아요. 들인 공이 얼만데, 바친 세월이 얼만데, 본전 생각 안할수는 없을것 같거든요. 이런 생각이 무지 속물적이긴 합니다만, 뭐 아직 자식이 없어서진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돌아온 탕아를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사람들과 가족들이 먹히는거야 라고 생각하니 조금 실망스럽고 재미가 없더라구요. 실제 세상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뭐라 평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가족의 입장이란것도 있으니까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를 이어 똑같이 전통을 이어가며 살겠다는데 뭐라긴 어렵긴 합니다만 적어도 소설만은 좀 더 달랐으면 합니다.
혹시 압니까,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굴러굴러 개울까지 가서 강으로 가서 결국은 바다까지 가게될런지. 그런 점이 우리가 후손에게서 그리는 미래가 아닐까요.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 싶은데.
이 책에서 제일 싫었던 단편은 한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은 죽도록 싫어했지만 알고보니 인생을 전부 아들을 위해 희생했더라는 그런 흔한 모성 이야기. 모성은 정말 위대한걸까요? 위대하라고 강요되어지는걸까요? 아이가 없는 저는 가끔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런 모성의 강요가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것은 좋지만 내 삶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의 입장에서도 이런 어머니가 정말 위대하기만 할지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지. 자식을 홀대하고 버리는것도 좋지 않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희생도 꼭 좋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마음에 든 에쿠니 가오리님의 글은 한마디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말았군요. 좋은건 그냥 마냥 좋지만 나쁜점은 웬지 이래저래 하다고 변명처럼 말을 하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