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질 가운데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 있는 모양이어서, 어떤 기질에는 으레 어떤 기질이 곁들이게 된다. (18쪽)


페루의 금을 모조리 다 쓴다고 해도, 그는 한 줄의 멋진 표현이라는 보석을 살 수 없다. (69쪽)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아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단 하나의 분명하고 단순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날개의 퍼덕임과 떨림, 그리고 빛의 명멸이 수반된다. (72쪽)


전체적으로 보아 인간의 일생의 길이를 가늠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긴 세월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장미꽃 한 잎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보다 짧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90쪽)


늘 가고 싶었던 곳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125쪽)


우리들의 메시지를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을 위해, 제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말이 우리 생각과 더없이 밀착할 때까지 가꿔야 한다. (154쪽)


종종 말없이 있는 시간이 가장 황홀한 시간이고, 반짝이는 재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할 수 있다. (174쪽)


환상은 현실과 부딪히면 박살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진정한 행복, 진정한 재치, 진정한 심오성은 환상이 판을 치는 곳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176쪽)


꼭 맞는 표현이 없으면 평범한 표현이라도 좋다. 그리하여 더없이 평범한 대화가 가장 시적인 경우일 때가 종종 있으며, 가장 시적인 것이 바로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여기에 커다란 공백을 남겨두려고 하는데, 이것은 가득히 채워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222-223쪽)


이렇게 그들은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이어나갔다기 보다는 이해해나갔다.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가 사상에 비해 날마다 빈약해지고 있는 시대에는 주된 대화의 기술이 되었다. (227쪽)


사색과 인생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235쪽)


이제 그녀는 그늘지고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큰소리로 이야기할 때, 수많은 자아는 거리감을 느껴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정작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다. (276-277쪽)



"거리감을 느낄 때는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정작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침묵하게 된다."는 문장에 크게 공감한다. 이런 침묵을 얼마나 원하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와 침묵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 침묵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는 사람들, 그 침묵까지 해석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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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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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를 새롭게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판타지적인 요소, 갑작스런 성(性)의 전환, 그리고 수 세기를 살아가는 올랜도가 낯설고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원작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영화 <올랜도>도 보면서 조금 더 이 책 안에 머물며 의미들을 생각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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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 의사가 가르쳐주는 최강의 식사 교과서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1
마키타 젠지 지음, 전선영 옮김, 강재헌 감수 / 더난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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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관리에 경각심을 가졌다가도 어느새 느슨해지기를 반복한다. 이번에 또다시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 조절과 운동을 진행하면서 마키타 젠지의 <식사가 잘못됐습니다>를 재독했다. 군더더기 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읽기에도 부담없다. ˝아, 탄수화물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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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봐야지 하고 메모해 두었던 <자객 섭은낭>을 이제야 봤다. 서기와 장첸이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연인이었다가 헤어진 두 사람이 작품 안에서 펼칠 연기가 사뭇 기대되었다.

누군가 <자객 섭은낭>은 컨디션이 좋을 때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만큼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실제로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 봤다. 보면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고 그분께 뒤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객 섭은낭>은 절제된 대사, 침묵이 그려내는 여백의 아름다움, 침묵 사이로 흐르는 삶과 자연의 소리,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랑이는 커튼의 아름다움, 말이 없어도 눈빛 만으로도 충분했던 서기의 연기. 영화의 절제미가 너무 좋아서 침묵이 흐를 때마다 심장이 찌릿했다.



어릴 때부터 정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여도사에게 보내져 자객으로 길러진 은낭. 어떤 목적에 의해 훈련된 자객과는 전혀 다른 결이라고 하겠다. 그저 정혼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머니에 의해 무작정 보내진 은낭은 무결점의 완벽한 자객으로 키워지는 그 세월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실제로 은낭의 대사는 거의 없다. 그저 눈빛으로만 연기하는데 또 그 눈빛이 너무 완벽해서 그 내면의 슬픔과 아픔이 절절이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다.



자객이지만 자객이 갖춰야 할 무정의 영혼을 갖지 못한 은낭.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벌써 슬프고, 벌써 아프고, 벌써 측은지심이다. 이런 고통은 나에게서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느껴진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장면들이 계속 생각난다. 샤라락 커튼들... 배우와 배우 사이, 배우와 나 사이를 가르던 커튼이 이루어내는 영상미. 아픔을 간직한 슬픈 눈의 자객, 복면을 쓰지 않은 민낯의 자객이라니.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볼 때는 무음으로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영화는 대사보다 인물들의 내면을 읽어야 하는 영화이므로.

이 영화는 지극히 내 취향의 영화인데 실제로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읽었다. 하지만 조용하면서도 여백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영상미가 돋보이고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돋보이는 참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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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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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의 마지막 장을 덮고 한참 품에 안았다. 먹먹하다.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을 넘어선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숭고한 마음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살아가며, 내가 왜 신경외과를 택했는지 분명히 알고 인생을 살다간 사람. 소명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지점들과 맞닿아 있어 읽는 내내 그의 사고의 흐름과 생각의 깊이를 따라가며 반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그는 겸허하고도 진지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다. 그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금 깊이 고민한다.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133/578)


" 하지만 (의사로서의)이 길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130/578)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522/578)


누구나 주어진 삶과 택한 직업 속에 살아간다. 삶에 대한 목적이 분명할 때 택한 직업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는 것이 옳고 정의로운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통해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밝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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