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봐야지 하고 메모해 두었던 <자객 섭은낭>을 이제야 봤다. 서기와 장첸이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연인이었다가 헤어진 두 사람이 작품 안에서 펼칠 연기가 사뭇 기대되었다.

누군가 <자객 섭은낭>은 컨디션이 좋을 때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만큼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실제로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 봤다. 보면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고 그분께 뒤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객 섭은낭>은 절제된 대사, 침묵이 그려내는 여백의 아름다움, 침묵 사이로 흐르는 삶과 자연의 소리,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랑이는 커튼의 아름다움, 말이 없어도 눈빛 만으로도 충분했던 서기의 연기. 영화의 절제미가 너무 좋아서 침묵이 흐를 때마다 심장이 찌릿했다.



어릴 때부터 정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여도사에게 보내져 자객으로 길러진 은낭. 어떤 목적에 의해 훈련된 자객과는 전혀 다른 결이라고 하겠다. 그저 정혼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머니에 의해 무작정 보내진 은낭은 무결점의 완벽한 자객으로 키워지는 그 세월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실제로 은낭의 대사는 거의 없다. 그저 눈빛으로만 연기하는데 또 그 눈빛이 너무 완벽해서 그 내면의 슬픔과 아픔이 절절이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다.



자객이지만 자객이 갖춰야 할 무정의 영혼을 갖지 못한 은낭.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벌써 슬프고, 벌써 아프고, 벌써 측은지심이다. 이런 고통은 나에게서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느껴진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장면들이 계속 생각난다. 샤라락 커튼들... 배우와 배우 사이, 배우와 나 사이를 가르던 커튼이 이루어내는 영상미. 아픔을 간직한 슬픈 눈의 자객, 복면을 쓰지 않은 민낯의 자객이라니.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볼 때는 무음으로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영화는 대사보다 인물들의 내면을 읽어야 하는 영화이므로.

이 영화는 지극히 내 취향의 영화인데 실제로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읽었다. 하지만 조용하면서도 여백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영상미가 돋보이고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돋보이는 참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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