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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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 큰 만족을 줄 때가 있다. 출퇴근길에 편하게 들으려고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스며들 듯 흡족하게 들리는 오디오북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번아웃이 오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선택한 이별,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서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 영주의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서점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서점에서 커피를 내리는 민준은 커피에 진심이어서 내용이 진행될수록 커피 향이 더 짙어지는 느낌까지 든다. 북토크, 북토크를 위한 질문지 작성,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은 실제처럼 실감이 나기도 했다. 주인공 영주만큼 챕터챕터가 참 깔끔했다. 영주의 과거가 드러나는 챕터에서는 그 맘이 어떤지 알 것만 같아서 눈시울이 더워졌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는 승우에게는 고마움이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나이테 같은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난 이후로 많은 일들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여유가 생겼다. 아픔의 내용은 달라도 그 눈물의 농도는 맛보아 아는 것이니 괜스레 연민의 마음도 생기고 낯선 이를 안아주고픈 마음도 드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내가 더 성숙하게 되었고 더 나은 현재를 살고 있다면 절망이 감사가 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주 또한 마음에 나이테 하나 새겼지만, 더 단단한 영주로 나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휴남동 서점, 단골 서점으로 삼고 싶을 만큼 좋은데 오디오 북으로 듣던 사람들의 생각도 그랬는지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었다. 나도 소장하고 싶어서 오디오 북 중간을 넘어설 때쯤에 구매했는데 마침 여름 에디션. 이렇게 순하고 깔끔한 소설, 참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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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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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기사(종이책 297쪽 전문 수록)가 나갔던 2019년 가을 이후로,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뷰 전문 기자로의 내 인생 또한 그 기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18p)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칼럼을 좋아한다. 인터뷰이의 깊은 생각과 뜻을 아주 겸손한 자세로 끌어내는 인터뷰어의 능력과 글 솜씨에 늘 매료되곤 했다. 특히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은 책으로 더 엮어져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터뷰집으로 탄생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상반기 동안 오래도 붙들고 있었다.

이민아 목사의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는 말에 신앙의 길로 들어선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딸의 태도와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지성으로 해석할 수 없는 영성의 세계가 있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성과 영성을 아우르는 스승, ˝죽음이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몸은 죽음에 가까워 노쇠하여도 정신만은 또렷하여 후대에 당신이 받은 선물을 지혜의 유산으로 남기려고 하시는 열정은 눈물겹도록 저릿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곧 직접 쓰신 육필원고,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도 나온다고 하니 아직도 우리가 그분에게서 길어야 할 지혜의 샘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살면서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쏟아내야 할 때가 있는데 선생님은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안에 있는 것들을 토해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어떤 사명을 띠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내시는 듯했다. 그것을 얼마큼 받아 마시느냐는 내 몫이고 우리 각자의 그릇의 분량이겠다. 지금 읽고, 또 시간이 지나서 읽었을 때는 선생님의 깨달음을 더 큰 그릇이 되어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성이 영성을 만나면 그 깨달음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본다. 이 귀한 인터뷰집을 통해 그 깊이를 맛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이 시대에 이어령 선생님을 이어 각 영역에서 많은 스승들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그리고 내가, 스승은 아니어도 지성과 영성으로 깊어지는 한 명의 제 몫을 하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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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이 인터뷰의 핵심이다. 돌아보면 선생이 이 시대에 태어나 대중 앞에 서서 쓰고 말한 모든 것도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19p)

모든 사물, 모든 현실 속에는 그런 엷은 막이 있어. 나한테는 그것을 뚫는 게 영성이라네. (221p)

침묵을 만들고 침묵을 견딘다는 건 내공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낯선 시간을 자주 감각하는 사람이 예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겠지요.(247p)

죽음에 가까이 가고서 나는 깨달았어요.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305p)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에요. 지성은 자기가 한 것이지만, 영성은 오로지 받았다는 깨달음이에요.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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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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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에세이집을 읊어볼까. 박연준의 <소란>,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 그리고 하나 더, 한정원의 <시와 산책>. 앞의 두 권은 몇 번을 읽었는지 셀 수가 없다. 그나마 <시와 산책>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정독은 세 번이라 손꼽을 수 있겠다.

눈을 좋아하고, 언 강에 매료되고, 11월을 편애하고, 고양이를 아끼고 무엇보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녀. 그녀의 문장, ˝산책자는 걸을 때만큼은 자신의 ‘몸‘보다 ‘몸이 아닌 것‘에 시선을 둔다.˝에 비춰본다면 그녀는 단연코 산책자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피어나는 시들과 정돈된 생각들은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담담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울림이 있다. 책을 다 읽고 차례만 읽고 있어도 좋은 이유는 그녀의 문장을 벌써 사랑하게 된 까닭이겠다. 성소자가 되려다 산책자가 된 그녀의 글은 안으로 깊어져 홀로 걸을 수밖에 없는 수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곧 시집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시집을 기다리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 그녀의 문장이 아름다운 덕분이다.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 밤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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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이라는 목적지만을 찍어 단숨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소한 고단함과 아름다움을 거쳐 그것들의 총합이 당신을 만나게 하는 것. 그 내력을 가져보고 싶게 한다. (24p)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25p)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34p)

나무는 말이 없어요. 밤도 묵묵해요. 신은 별처럼 숨만 쉬어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침묵하기만 합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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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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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번 독서를 통해 그녀의 생각과 활동들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하니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되는 바가 컸다. 내가 기억하기로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현장에도, 세월호 유족들이 머무는 현장에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그 현장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 의사 선생님은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가 쓴 책이라면 내게도 큰 도움이 되겠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진심으로 위로라는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이 책을 읽다가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삶에서 여러 환경에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사람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환경에서도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떻게 그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나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을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놓은 각각의 카테고리 안에 넣고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존재 자체로 본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라보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대해 왔던 것이다.

정혜신 선생님은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는데 그 ‘적정심리학’의 핵은 바로 공감이다. 이 책은 전체에 걸쳐서 공감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제대로 공감하는 법까지 공감에 대해 아주 깊숙이 들어가 이야기한다. 그녀가 말하는 공감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공감은 나를 갉아먹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몰두하고 나를 지치게 한 공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공감이 아니라는 것이 솔직히 충격이었고,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다가 점차 사람들을 공감하며 위로하는 것을 조심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121쪽)

사람들은 대개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자세하게 묻지 않고 그저 늘 하던 대로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날리거나 “힘내”라든지,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을거야.” 등의 형식적인 공감을 늘어놓는다. 그러한 공감에 대해 정혜신 선생님은 이야기한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125쪽)

상대방의 아픔을 제대로 모르면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묻고 또 물으며 심리적 CPR을 행하며 아픈 마음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어야 더 깊은 공감으로 나아가 상대방을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배운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내게는 희망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게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그저 건성으로 듣지는 않았는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위로의 한 마디를 해줬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질문을 하며 관심을 가졌는지 돌아보게 되었는데 참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내게 보낸 SOS에 제대로 답해 주지 못한 것이 이제야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후회로 남는다.

이 책에서는 6세 아이에서부터 27살의 딸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자녀 간의 공감이 정혜신 선생님을 통해 점차 제대로 회복되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나 또한 제대로 된 공감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인지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때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공감인지 알았으니 사랑하는 이들의 힘듦 앞에서 그 존재 자체를 바라보며 정말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묻고 또 물으며 진심으로 공감하고자 한다.

“마음은 언제나 옳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뇌리에 깊이 박힌다. 어떤 마음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지체로 옳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어느 누구의 마음도 지금까지의 습관으로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절대 충조평판 하지 않고 그 마음의 아픈 곳이 어디인지 알 때까지 옆에서 들어주고 물어도 가며 이해하기를 힘쓰고 싶고, 이야기를 듣다가 내 상처나 아픔이 드러나면 내 아픔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상대방과 함께 회복되어 가고자 한다. 참으로 귀한 책을 읽었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로할 때 어떻게 진심으로 위로해야 할지 알게 해 준 정혜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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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 사랑과 기억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탐구
이고은 지음 / 아몬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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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지 않는 지금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사랑을 주고 받은 기억이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 받은 기억, 인지심리학자 이고은의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을 읽고는 더욱 그 기억들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 남친 D”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지심리학자인 그녀 자신의 연애 기억을 소소하게 나누면서 심리학자인 자신도 사랑에 실패하며 사랑에 대해 알아가고 있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연애 속에서 나의 지난 사랑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사랑에서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관계가 깊었을수록 이후의 거리는 아득히 멀어야 한다.” (115쪽)

특히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먹먹했는데 내 사랑은 깊었고, 그래서 이렇게 아득히 멀어지려 좋은 사랑의 기억만 가지고 홀로 걸어가나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기억으로 결핍된 마음 없이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한 편으로는 지난 사랑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눈에 뵈는 것 없이 좋아해본 열정과 가슴 가득히 차오른 사랑의 경험은 반드시 어딘가에 남는다. 그러므로 변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대신에 상대에게 열의를 다할 수 있었던 내 마음을 귀히 여기기로 한다.” (86쪽)

사랑은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진심과 소통과 신뢰를 함께 쌓아가며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열정 너머의 깊고 따뜻하며 늘 식지 않고 뭉근한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그녀의 유머는 너무 내 취향이었고, 그녀 자신도 사랑에 실패하며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임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과 동시에 인지심리학자로서 실험 사례들을 통해 인간 관계의 진심을 소개한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추천사에서 “어쩌면 누군가와 이 책을 읽기 위해 당신은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 라고 했다. 나 또한 이 책을 지인들에게 권하며 함께 “좋은” 사랑을 꿈꾸자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내 사람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 시작하더라도 결코 늦거나 아쉽지 않다. 결정을 보류해놓은 그곳에 더 근사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의심은 노력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실을 믿으려는, 진짜 사랑을 하겠다는 노력 말이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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