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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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에세이집을 읊어볼까. 박연준의 <소란>,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 그리고 하나 더, 한정원의 <시와 산책>. 앞의 두 권은 몇 번을 읽었는지 셀 수가 없다. 그나마 <시와 산책>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정독은 세 번이라 손꼽을 수 있겠다.

눈을 좋아하고, 언 강에 매료되고, 11월을 편애하고, 고양이를 아끼고 무엇보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녀. 그녀의 문장, ˝산책자는 걸을 때만큼은 자신의 ‘몸‘보다 ‘몸이 아닌 것‘에 시선을 둔다.˝에 비춰본다면 그녀는 단연코 산책자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피어나는 시들과 정돈된 생각들은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담담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울림이 있다. 책을 다 읽고 차례만 읽고 있어도 좋은 이유는 그녀의 문장을 벌써 사랑하게 된 까닭이겠다. 성소자가 되려다 산책자가 된 그녀의 글은 안으로 깊어져 홀로 걸을 수밖에 없는 수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곧 시집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시집을 기다리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 그녀의 문장이 아름다운 덕분이다.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 밤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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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이라는 목적지만을 찍어 단숨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소한 고단함과 아름다움을 거쳐 그것들의 총합이 당신을 만나게 하는 것. 그 내력을 가져보고 싶게 한다. (24p)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25p)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34p)

나무는 말이 없어요. 밤도 묵묵해요. 신은 별처럼 숨만 쉬어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침묵하기만 합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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