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찾아간 블로그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블로그 주인이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책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이 아니고는 그렇게 선물할 리 없으니, 말이다. 블로그를 나오면서 바로 주문을 했고 다음 날, 이 책은 나에게 왔다.

 

삶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내 그림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는 것들을 깊이 알고, 기록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우선 제일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내 노트에 떨어지는 햇살, 냉장고에 붙여놓은 잭이 새로 그린 그림들. 식탁 아래 살며시 구르는 먼지덩이. 나는 이들의 축복을 느끼고 싶고, 또한 나 자신이 이들의 일부이자 원인이 되고 싶었다. 그림 자체보다는 이러한 유대감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책의 띠지에 적혀 있는 분문의 내용이다. 대니 그레고리는 20년 넘게 광고업을 해오던 자칭 광고쟁이다. 스타일리스트인 아내, 10개월 된 아들 잭, 그리고 여덟 살 된 개, 프랭크. 그렇게 그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던 그의 삶이 아내가 지하철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아주 낯선 환경에 놓여지게 된다. 

패티와 네가 떨어진 곳이야. 장애인의 세계 말이야. 네가 원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네가 살아온 것처럼 빠르고 신나지는 않겠지만, 그 삶은 깊고 진한 것이야. 너는 그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그것을 사랑하게 될거야. (본문 중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것은 모든 것은 특별한 존재이고, 서로 다 다르며, 흥미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르다면, 내가 생각하던 우리 가족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무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들이 실제 나무와 달랐듯이, 나는 장애인 아내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정말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아내가 사고를 당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대니 그레고리는 지금까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삶의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바라보게 되고 빠르게만 흘러가던 그의 삶이 느리고도 깊이 있는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 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본문 중에서)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본문 중에서)

 

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되뇌인다. 누구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인지했던 탓이기도 하다. 그 삶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뚫고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대니 그레고리는 그 삶을 자신의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대니 그레고리의 상황이 되었을 때 모두가 그림 그리는 것으로 상황을 보듬어갈 순 없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통로가 분명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내내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했고 책을 덮을 때에는 여운이 너무도 길어서 한동안 먹먹한 채로 있어야 했다. 살아 숨쉬는 감정들, 절제된 고통의 흔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삶을 향한 사랑을 놓치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을 정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하는 그의 메세지를 한참을 마음에 새겼다. 자주 들여다 보고픈, 아름다운 책을 알게 해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당신이 자신을 그저 보도록 내버려 둘 때, 그것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세계는 낯설고, 날카롭고, 낱낱이 다른 무엇이 되어 흘러들어 온다. 과거의 경험에 기대지 않을 때, 존재하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판단하려 하지 말고, 가능성들을 받아들여 보라. 시간의 짓누름에서 풀려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본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내가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seudo) 저자가 된다.

 

 

막연하나마 어린시절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꿈꾼 것이 이것이다.

정선해서 골라 든 책을 안고 침대에 푹 파묻혀,

밑줄을 긋거나 느낌표 또는 물음표를 치면서

나 아닌 타자의 동일성에 간섭하고 침잠하는 일,

뒷장에 내 나름의 '저자 후기'를 주서하는 일.

나는 그런 '행복한 저자'가 되고 싶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1』 중에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로 시작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의 글이 살면서 자주 생각난다.

존재하지만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없는 것과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때를 따라 찾아오는 존재감 묵직한 책들에 감사한 날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삶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이 고뇌와 이 만족이 그녀를 우아하게 했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다.

오늘도 그 문장을 음미하며 "그녀" 대신 내 이름을 넣어 읽고는 흐뭇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연인을 절망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다. 그것은 연인이 무심코 "죽겠다." 라고 말할 때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라고 말하는 일이고, 정전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도 역시 캄캄하다고, 나는 당신과 같은 어둠 속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며, 잠을 못 자는 연인에게 밤 아홉 시에 달려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자고 말하는 일이다.
_ 황정은, 『百의 그림자』, 신형철 해설 中
  
*
  
며칠을 꼬박 신경숙의「외딴방」을 읽고, 뒤이어 읽어내려간 소설이「百의 그림자」다. 황정은의, 특유의 느리고도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소설 속 은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입혀도 어색하지 않은, 왠지 그녀를 닮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재와 은교의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은교씨... 무재씨... 하면 어김없이, 네... 하고 대답하는 그들의 대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열정적인 감정 하나 섞여 있지 않지만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이렇게 담담하고도 애틋하게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해설을 읽고나면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신형철의 해설은 더욱 그렇다. 내 생각은 간데없고 신뢰하는 평론가의 생각을 그대로 내 안에 담고 마는 것이다. 나의 두서없던 생각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펼쳐가는 그의 해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2014.10.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그 유명한 프랑크 부인 이야기를 열광적으로 늘어놓고 나서 마지막 말은 그렇게 가벼운 말투로 마무리해 준 덕분에 라몽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즐겁게 사시는 것 같네요." 이상하게 다르델로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너무 가벼운 그 말투가, 기억으로 여전히 자기 안에 깃든 죽음의 비애, 마법처럼 그 비애를 품고 있는 달콤한 기분, 묘하게 아름다운 그 기분을 없애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pp.16~17) 

  

"침묵은 주의를 끌지.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수수께끼같이 알 수 없게 만들어 줘..." (p.24)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p.25)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p.33)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無)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pp.33~34) 

  

망설임처럼 보였던 그 멈춤은 사실은 증오를 향한 부름이다. 증오가 그녀와 함께 있기를, 그녀에게 의지가 되어 주기를, 한순간도 그녀를 떠나지 말기를 청하는 부름이다.  (p.50)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p.57)

  

그리고 날개가 있다는 거. 또 하얗다는 거. 하얗지. 이봐, 샤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말이야.천사에겐 성(性)이 없어. 어쩌면 바로 그래서 천사가 하얀 걸거야. (p.61)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탄생시킨 두 가지 증오, 남자가 오르가슴에 이른 순간 동시에 일어난 남자의 증오와 여자의 증오, 그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온화하면서 신체적으로 강한 남자의 증오와 대담하면서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의 증오가 이룬 짝짓기.

  

그러니 그런 두 가지 증오의 열매가 사과쟁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p.75)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 거야. '무한히 좋은 기분', 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p.99)

  

"나는 꼭 믿고 싶구나. 너하고 나 사이에 어떤 오해도 없다고, 우리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있다고......"    (p.132)

  

그리고 147쪽 통째 밑줄...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무의미의 축제』를 며칠째 붙들고 있다. 두 번을 읽었고, 그래도 좋아서 놓지를 못하고 다시, 읽고 싶은 자리를 손으로 훑으며 읽기를 여러 번. 리뷰를 해보고 싶은데 엄두가 안난다. 149쪽 분량의 책이지만 그 책이 담고 있는 깊이의 무게를 어떻게 녹여서 풀어야 할지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책이다. 배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스탈린과 칼리닌의 얘기로 한참을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고, 다르델로와 카클리크 이야기, 그리고 칼리방의 이야기 등등... 각자 다른 이야기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그 내밀한 이야기들을 한없이 이야기해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 그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만났을 때의 반응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무의미의 축제』를 다루고 있어서 마침맞은 우연의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연속해서 몇 번을 듣고 있다.

밀란 쿤데라.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을 읽을 때의 호흡이 작가의 호흡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음악적인 요소를 염두하여 글을 쓴다고 하니 작가의 지휘에 독자가 심취하여 따라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몇날 동안 몇 번을 더 읽으면서 작가의 지혜와 그 삶의 통찰 속에 깊이 들어가보려 한다. 부디, 이 책이 그의 유작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4.10.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