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저녁 같이 드실래요? 1~3 세트 - 전3권
박시인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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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 날, 백만 년 만에 만화방에 갔다. 좌식룸도 있고 소설도 있고, 잘 꾸며놓은 북까페 같은. 한참을 고르고 골라 읽은 만화책. 만화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보니 느낌을 따를 수 밖에. 사랑을 잃은 자들의 먹방 썸이랄까. 누군가와 마주보고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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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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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한창이었던 8월에 다시 꺼내 읽었던 설국, 한 문장 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좋았다. 내년 여름이면 다시 꺼내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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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말에 따르면, 외로움이란 무거운 망치로 얻어맞는 것과 같아서, 유리는 산산조각 내지만 쇳덩이는 더 단단하게 한다고 했다. (p.58)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을 바쁜 중에도 틈틈이 읽어가고 있다. 시간이 없다고 미뤄두면 다시 펼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기에 되도록이면 한 줄, 한 장이라도 매일 읽으려고 한다.  


읽다가 참 좋은 표현이다 싶어서 밑줄을 그었다. 그러고도 내내 마음에 남아서 이렇게 올려본다. 


외로움이란, 

무거운 망치로 얻어맞는 것과 같아서, 

유리는 산산조각 내지만 

쇳덩이는 더 단단하게 한다  


외로움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자의 표현일 수 있겠다. 너무 외로워서 더욱 자신의 내면 속으로 갇히고 마는 그러한 상태. 삶의 고통 속에서 아직 영혼이 단련되지 않은 자들을 유리에 비유한다면 그들은 비로소 외로움을 통해 인생의 처절함을 경험할 것이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깨어지고, 깨어지고, 또 깨어진 그 유리는 점차 쇳덩이가 되어 가겠지. 


그들은 외로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내 안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고 외부로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외부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상처가 외로움의 굴레에 가두고 마는. 


반면에 외로움이, 쇳덩이는 더욱 단단하게 한다는 말이 특히 와 닿는다. 정신이 유약한 자들은 외로움 속에서 산산이 깨어진다면 그동안 삶의 고통과 좌절 속에서 쇳덩이가 되어간 정신이 강건한 자들은 외로움 속에서 더욱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외로움을 인생의 브레이크 시기로 삼아 더욱 절대고독 속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이렇게 홀로 외로운 시기는 잘 찾아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절대고독 속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딘 자들은 그 외로운 시간이 결코 외롭지 않다 여길 것이고 그 안에서 오히려 평안과 안정감을 누리는 특별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외로움, 모든 상황이 외로움 속으로 몰아갈 때도 있을 것이고 나 스스로가 외로움을 찾아 들어갈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 외로움이든, 외로움을 벗삼아 인생을 힘있게 살아가는 쇳덩이가 될 수 있게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단련해 가야 할 것이다. 문제에 나를 던져놓지 말고 문제가 나를 이끌게 두지 말고 늘, 문제 너머의 답을 바라보며 지혜를 구하며 살자.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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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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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었다. 늘 눈물을 보이지 않게 그렁거리며 살았던 때, 업무 중에도 깊은 속울음이 올라와 계속 밀어 넣어야 했던 때, 세상은 행복한데 나만 이방인처럼 외따로 떨어져 이 세상 어찌 살아야 하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다..

 

상실의 아픔을, 애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절망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나의 아픔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욱 처절하게 절망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 접한 상실이요, 절망이었다.

 

그때의 오랜, 어둠의 시간 동안 나는 그만큼의 시간을 잃었고 사람들을 잃었고 건강을 잃었다. 한 사람을 잊고 무뎌지는 것에는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니, 잊혀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 한 구석 저 깊은 곳에 옮겨졌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빼어내려야 뺄 수 없는 가시처럼 깊이 박혀 서로의 마음 속에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그 아픔을 다시 만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픔마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주인공들의 "등을 토닥이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한번 어긋나 손을 못잡고 얼굴을 돌리고 사는 슬픔" 이 곧 나의 슬픔인 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제서야 나는 나의 상실을 "애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성숙에 이른 것일까..

 

은서는 완과 세에게, 그리고 그의 동생 이수에게마저 하나 뿐인 고향이다. 각기 다른 고향의 모습으로 그녀를 품고 있기에 각각의 아픔의 모습도 다르다. 완에게 사랑을 느껴버린 은서는 아픈 고향의 기억을 벗어 나려고 은서를 모질게만 대하는 그의 등을 바라보고, 은서를 사랑하는 세는 완을 바라보는 은서의 등만 바라본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같은 아픔을 간직한 동생 이수와의 애틋함..

 

완의 사랑을 잃고 은서는 일 년 후에 세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그 상실의 아픔은 세를 곁에 두고도 절망하는 삶을 살게 한다. 세가 그러한 은서의 아픔을 알고도 결혼을 한 것은, 그 아픔까지도 다 품어 주려고 한 것이었을테고, 그리고 그렇게라도 은서를 자기 곁에 두려 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이유였을지도.

 

사랑은 욕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간절한 소망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고도 아니 만나고 평생을 마음에만 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뒤늦게 은서가 자기의 전부인 것을 깨달은 완도, 세의 사랑이 떠난 후에야 세에 대한 마음이 완과 이수를 향한 마음 그 이상인 것을 깨달은 은서도.. 그저 위로할 밖에. 좋은 시절에, 좋은 때에 만나 사랑하지 못했음을 그저 위로할 밖에..

 

지나간 사랑이 기억이 나서 울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흘렀고, 나는 그녀, 은서 때문에 울었다. 그 마음이 알겠어서 울었고, 그 어찌할 수 없는 슬픈 식욕으로 불균형적으로 살이 쪄버린 그녀가 못견디게 아파서 울었다. 

 

"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

 

끝까지 자기 편이 되어 줄거라고 믿었던 이마저 등을 돌렸을 때에 은서는 그만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살아갈 힘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이 믿는 기억들을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을 지켜야 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깨닫지만 그 깨달음으로 다시 일어서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은서가 느끼는 깊은 슬픔과 절망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그녀와 동일한 감정들을 끄집어 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화해해야 할 그 아픈 감정들과 대면하면서 은서가 나의 슬픔과 절망과 아픔과 그 기억까지도 가져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아픔으로 인해 많이 성숙했고, 그 아픔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나도 은서처럼 마음까지 놓았을지 모를 그 때에,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그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하여 지금 나, 비록 혼자일지라도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 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5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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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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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선생님은 솔직히 잘 모른다. 그 책을 만든 사람도 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책을 만든 사람을 좋아한다. 그 책을 만든 사람은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산문집 『각설하고,』(한계레 출판사)의 작가 김민정 시인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그녀를 시인보다 편집자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렇게 김민정 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게 되었고 신형철 문학평론가 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사람이 되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이 베프시란다. 참, 초록은 동색이라. 멋진 사람들의 우정이다 싶다.
 
여러 글들을 접하고 그녀가 만든 책들을 보면서 그녀에게서 아주 멋진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고 할까.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경우는 참 드문 것 같고, 참 오랜만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그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사서 읽으면서 그녀가 더 좋아졌다. 늘 여자다움에 갇혀 살다가 이제는 조금 그 부분에서 자유해졌지만 김민정 시인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내숭쟁이다. 그녀의 언어는 결코 낯선 언어들이 아니었다. 내 안에 숨겨진 언어들이었고 표현들이었다. 그녀의 시원한 입담에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더 좋아진 이유는 그런 입담들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사람과 세상을 향한 그녀만의 사랑법 때문이다. 그 사람을, 그 세상을 사랑하려고 맘 먹기만 하면 그 사람은. 그 세상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내 머리맡에 둔 이유가. 내 편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펼쳐 볼 수 있게.. 
그렇게 그녀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내가 산 책들 중에 그녀가 만든 책들이 많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느낌 공동체』(문학동네)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도정일 선생님의 산문집『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그리고 사진은 못올렸지만 세트로 함께 나온『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문학동네) 그녀가 만든 책은 이유불문, 덮어놓고 사게 된다. 그만큼 그녀를 믿고 그녀가 만든 책의 저자들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얻은 선물은 내 인생에 꼭 읽어야 할 멋진 책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황현산 선생님, 도정일 선생님의 책을 선뜻 구입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파주 어느 곳에서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인들을 열심히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고 문자로, 카톡으로, 멘션으로, 댓글로 다독이고 있을 것이다. 왜.. 그녀가 옆집 언니같이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그녀의 글과 그녀가 만든 책을 대할 때마다 나도 그녀에게 도닥임을 받고 있는 듯 하다. 
각설하고, 
도정일 선생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피잉 돌더라. 두 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의 글인데 어쩜 그렇게 깊은 통찰이 담길 수 있는지.. 귀한 분을 만난 그 찰나의 감동이 눈물이 되어 흐르더라. 지금도 열심히 밑줄 좍좍 그으며 읽고 있다. 김민정 시인의 말을 빌리면 성서처럼 남을 책이라는 것. 정말 그렇게 오래도록 내 곁에 있을 귀한 책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과는 또다른 깊이의 만남. 이렇게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해준 김민정 시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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