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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읽기 - 삶의 속도를 늦추는 독서의 기술
데이비드 미킥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어릴 적부터 나의 피난처는 언제나 책이었다. 많은 일과 관계에 지칠 때 책 속으로 숨어들면 그렇게 평안하고 안정될 수가 없었다. 책에 빠져들면 세상 고민은 어느새 사라지고 책 속의 인물들과 나만 존재하는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퇴근을 하면 나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책과의 데이트. 그래서 퇴근 시간이 늘 즐거운 지도 모르겠다. 그 설렘과 즐거움은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만족감과 같지 않으려나 싶다.
올해 들어, 모든 SNS를 떠나 다시 독서노트를 꾸준하게 써보자는 마음의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냥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늘 아쉬웠다. SNS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가고, 독서노트를 쓰기에는 마음이 너무도 분주했다. 그렇게 결심을 한 후에, 내게도 다시 조용한 일상이 찾아왔다. 하지만 책을 빨리 읽고 독서노트를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 보니 혼자 조급해졌고, 마음만 앞섰다. 문득, 이렇게는 아니다 싶어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시 방향설정을 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급해서야 되겠나 싶은 그 때에 생각난 책이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였다. "모든 페이지는 빛이 깃들어 있다. 그 주변으로 울타리를 지어 그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72쪽)는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내가 급하게 넘겼던 페이지들, 작품 안에서 "잠재적 거주자"가 아닌 그저 "관광객" 모드로 일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 데이비드 미킥스는 시, 지성사, 현대 문학에 관한 교육 및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고, 셰익스피어, 프로이트, 영화에서부터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느리게 읽기>를 통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천천히 깊게 읽었으면 하는 진심이 모든 문장에 절절이 묻어난다. 1장에서는 인터넷 세상이 느리게 읽기를 방해한다고 지적하고 2장에서는 느리게 읽기에 필요한 것들, 그리고 3장에서 본격적으로 느리게 읽기의 규칙 14가지를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며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뒤이어 단편 소설, 장편 소설, 시, 희곡, 에세이 읽기를 통해 14가지 규칙을 적용하고 마무리한다.
14가지 규칙을 모두 다 적용해 볼 순 없지만 내가 특히 활용하고 싶은 규칙은 1규칙, "인내심을 가져라"와 규칙9,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칙12,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이다. 저자의 독서 수준이 높다보니 작품들을 통해 규칙을 설명할 때 분명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빨리 지나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400쪽 남짓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1규칙, "인내심을 가져라"를 바로 적용해서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톤 체호프의 작품에서부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울프의 에세이 세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 속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끊임없는 방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느긋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책에 푹 빠질 준비를 할 수 있다. 느림, 그리고 인내는 양질의 독서를 할 수 있는 비결이다.”(43쪽) 인터넷 세상은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소환한다. 시간을 들여 무언가에, 특히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주범이기도 하다. “책 한 권에 담긴 주장과 상상력 넘치는 문학 작품은 시간이 흘러야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좋은 책을 천천히 정성 들여 읽으면 언제나 그 보답이 찾아온다.”(30쪽) 라고 저자는 우리를 진지하게 설득하며 좀 더 적극적인 독자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소개한다. 적재적소에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인용하며 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이다,
내게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가 소중한 이유는 이 책을 계기로 이후에는 책을 읽는 내 태도가 조금은 변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느리게 읽기>를 읽었다고, 14가지 규칙을 익혔다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한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늘 염두해 둔다면 그것만큼 독서에 도움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1년에 100권 읽었어요." 가 아니라 "올해 그 작가를 깊이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해요. 이제는 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을 저도 알 거 같아요."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급하게 책을 읽는 나를 다잡아 세워준 책, 자주 책을 펼치고 규칙들을 음미하며 저자의 열정어린 진심을 만나고 싶다. 또한 책을 많이 읽는 분들 중에 내가 왜 책을 읽고 있지? 갑자기 의문이 드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읽을 마침맞은 때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며 권해 드리고 싶다. 때를 잘못 만나면 끝까지 읽지 못하고 다시 빨리, 읽고 싶은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