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한정록>에서 독서하기 좋은 때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독서에는 독서하기 좋은 때가 있다. 그러므로 위나라 동우(童遇)의 ‘삼여(三餘)의 설’이 가장 일리가 있다. 그는 말하기를 “밤은 낮의 여분이요, 비 오는 날은 보통날의 여분이요, 겨울이란 한 해의 여분이다. 이 여분의 시간에는 사람의 일이 다소 뜸하여 한마음으로 집중하여 공부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맑은 날에 고요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 온 세상은 죽은 듯 고요하고 간간이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아름다운 정경 속에서 책을 대하여 피로를 잊고, 이부자리를 걷어서 얹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의 출입이 끊어지고 서책은 앞에 가득히 쌓였다. 흥에 따라 아무 책이나 뽑아 든다.시냇물 소리는 졸졸졸 들려오고 처마 밑 고드름에 벼루를 씻는다. 이처럼 그윽한 고요가 둘째 즐거움이다. 또 낙엽이 진 나무숲에 세모(歲暮)는 저물고, 싸락눈이 내리거나 눈이 깊게 쌓인다. 마른 나뭇가지를 바람이 흔들며 지나가면 겨울새는 들녘에서 우짖는다. 방 안에서 난로를 끼고 앉으면 차 향기에 술이 익는다. 그때 시사(詩詞)를 모아 엮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경이 셋째 즐거움이다. - 허균, <숨어사는 즐거움>에서

조경국, <필사의 기초>, 48-49쪽



주일 예배를 마치고 햇살이 좋아서 드라이브도 할겸 교외로 나왔다. 계곡물은 봄을 만나 신이 났고 앙상한 나무에게선 새순의 움틈이 느껴진다. 몸이 안좋아 계속 고집하던 코트를 벗고 봄자켓을 입고 있으니 내 심장에도 꿈틀꿈틀 싹이 나려는 것만 같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오글오글 감성이 봄을 맞으니 빼꼼 얼굴을 내민다. 반갑다.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를 읽으면서 작년에 중단했던 필사를 다시 시작했는데 마침 눈에 띈 조경국님의 <필사의 기초>가 있어 가볍게 책장을 펼쳤다. 유유 출판사의 책은 정성스레 쓴 내용들이 참 다정하다.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친절한 정선씨에 이어 친절한 경국씨 되시겠다. 정성과 진심을 담은 것이 문장에서 그대로 전해져 오니 내 눈도 반달눈이 되고 만다.

필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B에게도 조심스레 권했더니 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는지 흔쾌히 좋다고 한다. 어쩌면 글쓰기에 고민하고 있던 틈을 내가 잘 파고든 것인지도. B는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과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기쁨도 큰데 필사라니 괜히 혼자 감동이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다가 사진을 보냈더니 그도 사진을 보내왔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 같은 마음. 한참 우주를 파고들다가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오늘도 끙끙대며 열심히 뼈대를 세우고 있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는 기울고 까페도 조용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 나를 조용히 자신들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참 소중하다. 멀리서 내 저녁의 안부를 때맞춰 물어주는 당신이 참 소중하다. 오늘 하루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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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균 선생은 확실히 옛날 사람이군요. ‘여자’가 독서에 집중하는 데 방해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허균이 살았던 시대의 유럽 남자들은 ‘책 읽는 여자’를 부담스러워 했고, 경계했어요. 유럽 남자들은 여자가 책을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안나 2018-03-30 17:57   좋아요 0 | URL
과연 유럽 남자들만 그랬을까 싶지만, 허균 선생은 여자와 함께 있는 것보다, 오롯이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 것 같아요. 우리도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