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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 / 범우사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모티머 J.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만났다는 것은 내 안에, 제대로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과 좀 더 깊이 파고드는 독서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만난 덕분이다. 아무런 목적없이 소문만 듣고 <독서의 기술>을 펼쳤다면 몇 장 읽다가 덮었을 것이 분명하다. 읽어야 할 책들은 쌓여 있고, 딱딱하고 지루한 책보다는 당장의 즐거움이 내겐 더 우선이었을테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나에게 독서는 도피처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함,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은 기도 외에 책이 유일하다고 고백할 수 있겠다. 하나의 작은 사각형, 손에 기분좋게 잡혀지는 그것은 나에게 아주 커다란 숨구멍이었다. 때로는 내가 믿고 있는 신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신앙서적만 파고 들기도 하고, 직장에서 제대로 된 관리자가 되고 싶어 자기계발서만 냅다 읽기도 하고, 사람이 알고 싶어 소설만, 내 안에 나도 모르는 감정들을 붙잡고 싶어서 시집과 에세이만. 그렇게 내가 답을 구하는 곳으로도 책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 도피처, 숨구멍, 답을 주는 곳. 책은 나에게 장소였다. 언제나 달려가면 세상의 문을 닫고 나만을 제 안에 가두어 보듬어 주는 특별한 곳.
그렇게 오랜 세월 책을 읽어 왔지만 내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라는 고민에 부딪치니 더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고민 중에 만난 책이 <독서의 기술>이니 읽는 동안 얼마나 책이 달고 재밌고 즐거웠겠는가. 데이비드 미킥스의 <느리게 읽기>에서, 좋은 책은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제1 규칙인 것을 배웠고, 김이경의 <책 먹는 법>에서는 책을 읽으며 질문하는 법과 단락별로 주제어를 쓰며 요약하는 법을 배웠으니 <독서의 기술>은 또 얼마나 알차게 읽혔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저자의 글이 너무도 일목요연하기도 하고 번역도 제법 좋아서 결코 쉬운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일생 동안 줄곧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발견'하려면 어떻게 하여 책을 가장 좋은 스승으로 삼느냐 하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것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21쪽)
저자는 독서의 기술을 높이려면 각자의 수준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서의 수준을 먼저 제시한다. 제1단계에서 4단계까지를 초급 독서, 점검 독서, 분석 독서, 신토피칼 독서 수준으로 나누는데 이 책에서는 주로 분석 독서에 대해서 깊이 다루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분석 독서는 철저하게 읽는 것을 말하며 자기가 맞붙은 책을 완전히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읽어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한 독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단계와 그에 따른 규칙들을 설명하면서 다윈의 <종의 기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윤리학>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예로 들고 있으니 그러한 교양서를 두루 읽으시는 분이라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나의 수준은 다음 수준에 흡수되어 누적되므로, 가장 고도의 제4수준에는 앞의 세 개의 수준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을 거쳐야만 비로소 최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23쪽)
이 책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독서에 의해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다. 책은 분석적으로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미 말했지만, 분석 독서는 원래가 이해를 위한 것이다. (43쪽)
나의 독서취향은 대체로 문학 쪽이어서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으려나 자뭇 기대를 했는데 제3부 문학을 읽는 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픽션과 지식을 전달하는 책인 교양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양서라고 한다면 철학과 역사, 과학과 수학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분야들이다.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책을 만난 목적이 좀 더 책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었다고 한다면 책을 제대로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더욱 상급의 독서 수준을 습득하는 노력이 없으면 독서력을 향상시키기 어려울 것이다."(29쪽) 이번에야말로 문학 쪽에 머물러 있는 나의 독서력을 좀 더 향상시키는 기술을 익히기 위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더욱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목적이 있는 책읽기가 이렇게 즐겁고 유쾌한 경험인 것을 진작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깨달았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때에 맞게 만나는 사람도 귀하지만 때에 맞게 만난 책도 참 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책을 읽고 독자가 생각하고 분석한 한도밖에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독자의 이해의 깊이 수준이다. 자기의 이해를 초월하는 책을 읽을 때야말로, '얕은 이해에서 보다 깊은 이해로' 나의 이해력이 끌어올려진다고 했다. (15쪽)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교양서들은 힘겹게 읽히겠지만 <독서의 기술>에서 저자가 일러준 기술들과 필자의 이해력에 가닿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나의 이해력이 더욱 깊은 이해로 끌어올려지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읽고 싶은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두루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며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더이상 도피처로서의 독서가 아닌 나를 더욱 발전시키는 독서로서 책과 동행하고자 한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아직도 부족하여 한계에 부딪치겠지만 그래도 마음 든든한 것은, 앞으로 교양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되는 책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마침맞게 찾아와 내게 마음 문을 열어준 <독서의 기술>은 누구에게라도 어떤 책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출발점이 된 책으로 오래 함께 할 것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만을 읽는다면 독자로서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힘 이상의 난해한 책과 맞붙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책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넓게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214쪽)
훌륭한 책일수록 독자의 노력에 응하여 준다. 어려운 훌륭한 책은 독서술을 진보시켜주고, 세계나 독자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을 늘릴 뿐인, 정보를 전달하는 책과는 달리, 독자에게 어려운 훌륭한 책은 영원한 진실을 깊이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독자를 현명하게 하여준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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