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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장만주엔 지음, 정세경 옮김 / 페이지팩토리 / 2018년 11월
평점 :
어느 덧 중년의 시간,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30대와 달라진 것이 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랐고, 내 품을 떠나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각자의 시간에 몰입하면서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그늘에 쉬려 하지 않고 밖으로만 나가려한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은 자연스레 늘어났다.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며 정신없이 흘려 보낸 30대보다 조금은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그렇게 늘어난 시간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운동도 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헛헛한 무언가가 밀려온다. 중간정도 살아가다보면 과거의 언저리 어딘가에 아직도 머물러 나를 고통에 가두기도 하고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심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누군가 후욱 불면 켜켜이 일어나는 먼지처럼 떠올라 아픔을 오래오래 껴안고 살아갈 때도 있다. 살아온 날들의 미련과 아픔들이 마음의 주름으로 남겨져 깊은 자국을 남기고 있기에 무엇을 해도 열정과 몰입에 두려움이 든다.
‘어른’은 그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지혜롭고 너그러우면서 생각이 깊은 어른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 -p22
누구나 어른이 되면 반짝반짝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몸만 커버린 채 정신은 어린 시절 언저러에 머물러 있는 듯하며 나이가 들면 채워져 있을 것만 같은 영혼의 창고는 텅비어 공허함을 더한다. 어른의 실체란 것이 결국은 그런 것이었다. 여전히 좌충우돌이며 사람과의 관계는 자주 어긋나고 서툰 표현으로 오해를 사는 것 또한 같았다. 빛나는 어른은 그저 문학속의 캐릭터에 불과하다. 나의 또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둘 가정이 파괴되어가고 하나둘 병으로 쓰러져갔다. 우리들의 중년은 현실에 찌들어가는 중이었다.
“네가 보기에는 우리 세대가 좀 서글프지 않니?”
<진격의 거인>이란 영화가 있다. 만화가 원작으로 영화화 한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만화와 영화였다.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OCN에서 방영을 하는 걸 보았는데 좀 황당한 영화였다. 저런 말도 안 되는 , 게다가 CG수준도 너무 허접했다. 게다가 거인들이 점령한 세상은 잔인하고 무시무시했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의 저자 장만주엔은 그 만화 속 거인들이 바로 중년의 얼굴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놓고 매우 또렷한 ‘약육강식’의 세계라며 열렬히 토론했을 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완전히 벌거벗은 거인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남성으로 볼품없는 몸매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피곤에 찌들고 기댈 곳조차 없어 보였다. 거인들의 급소는 심장이나 복부가 아니라 목덜미와 등이 연결된 곳을 베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읊조렸다.
‘중년이잖아. 중년의 표정, 다들 중년이야.“
아무런 감정 없이 다른 사람의 가정을 박살내고, 그 어떤 연민도 없이 타인을 잡아먹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남의 것을 빼앗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중년 말이다. 거인의 소리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 겁에 질린 채 숨으려 하지만 결국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거인에게 맞서 숨통을 끊어놓는 대담한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중년, 작가의 말대로 거인들의 감정도 연민도 남겨져 있지 않고 피곤에 찌들어 볼품없는 몸매가 중년의 그것과 같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이 되었다. 더 이상 아름답지도 않고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중년에게 찾아오는 위기가 바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괴물이나 다름없는 거인의 모습을 한 중년들. 그런 중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삶을 재정비해야만 한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이 달라진다. 중년에는 시간도 젊은 날의 시간보다 좀 더 여유로와진다. 그 여유로운 시간을 보다 가치있는 것들로 채워야 빛나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중년은 어쩌면 새로운 삶을 다시 살아갈 기회의 삶이다.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삶의 목표를 세워 진정한 ‘나’의 인생, ‘나’의 삶을 살아야 중년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게 된다. 폐쇄적인 자기 복제를 반복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거인의 삶을 살기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중년이 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은 가치 있는 중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세밀한 시선으로 알려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