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노
#불행은 타인을 믿지 않을 때 시작된다.

분노 怒り라는 글자를 피로 쓴 살인현장이 영화의 시작이다. 살해 현장은 매우 잔인했고 무더위에 지쳐있는 형사들의 표정에서도 그 잔인함에 혀를 내두른다. 아내가 먼저 살해당한 후 욕조에 있었고 한 시간 뒤 돌아온 남편이 살해당한 후 욕실 바닥에 눕혀 있고 범인은 시체를 밟고 올라가 샤워까지 했다. 그리고는 여자의 장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내 먹었고, 분노라는 글씨를 피로 쓴 후 사라지고 7년째 범인의 행방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생방으로 범인의 인상착의를 공개수배 하지만 여전히 성과가 없다.

그런 가운데 세 명의 용의자가 7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오해를 받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영화를 보는 중 내내 세 명 모두가 살인범처럼 보이는 것도 이 영화의 계획된 미장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세 명의 용의자들을 통해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게이이면서 클럽 문화에 심취해 있는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는 남성적인 매력과 자신감이 넘친다. 비록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사람을 즐겁게하는 엔돌핀이 가득하다. 유마는 사랑에도 적극적인 스타일로 전형적인 성공한 도시남성 캐릭터이다. 그런 그의 앞에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데다 조용한 나오토를 동성애 클럽에서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한다.  자신과 정반대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끌렸는지 모르지만 유마가 생각하는 나오토는 깊은 사랑이었다. 늘 도망만 가려는 나오토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며 자신의 옆에 두려하지만, 우연히 카페에서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나오토에 대한 질투와 불안이 짙어만 간다. 그러던 중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7년전 부부 살인 용의자 얼굴에 있던 점 세 개를 나오토에게서도 보게 된다. 갑자기 사라진 나오토를 유마는 애써 잊으려 노력하는데, 어느 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로 유마는 영원히 나오토를 버린다..그러나, 밝혀진 진실은 나오토가 오랫동안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떠난 것임을 알게 되자 유마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질투와 의심에 눈이 멀어 나오토의 사랑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은 믿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이지 않는 법이다.


과거를 알 수 없지만, 우울해 보이는 항구의 타시로. 항구에서 같이 일하는 요하이는 3개월 전 가출한 딸을 유흥업소에서 데리고 온다. 밝고 명랑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웠던 딸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늘 아프다.  그런 딸이 정체도 모르는 타시로를 사랑한다고 울어대니 아버지인 요하이는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 조그만 섬마을에 유흥업소 출신의 아이코의 평판이 좋지 않기에 요하이는 타시로의 과거가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거를 허락한다.그런 가운데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통해 살해 용의자 얼굴을 보고는 타시로와 닮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 허나, 그 과정에서 살인자로 의심을 받은 타시로는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에 가슴아파하며  도쿄로 떠났고 타시로의 사랑을 의심했던 여자는 믿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한다. 결국 사랑은 믿음이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키나와로 새로 이사온 전학생 이즈미에게는 타츠야만이 유일한 친구다. 오키나와에서 여관을 하던 타츠야는 이즈미를 데리고 종종 무인도로 외출을 나간다. 맑고 투명한 오키나와 바다근처의 무인도에서 우연히 배낭여행을 온 타나카를 만나고, 둘은 개성 있고 말주변이 좋았던 그와 금방 친해진다. 과거를 말하지 않지만, 혼자 섬에 사는 타나카에게 미군철회 시위로 여관일을 소홀히 하는 아버지 대신  아르바이트를 부탁하는 타츠야. 그러나,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타츠야에게 여관일은 답답할 뿐이다. 게다가  이즈미가 미군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자, 셋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된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이즈미의 강간현장에 타츠야와 타나카 모두가 서로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세 명 모두가 알게 되자 서로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타츠야는 이즈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타츠야를 원망하는 이즈미와는 반면 타나카는 다름 이유로 미군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군들이 이즈미를 강간하다 누군가가 외치는 경찰! 경찰! 이라는 소리에 도망갔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것이다. 그런 타나카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타츠야는 살인의 충동을 느끼고 '믿었기에 용서할 수가 없다'며 타나카를 찌른다. 무인도 섬 안의 분노라 써있던 글씨는 영화 초반 살해된 부부의 입구에 써있던 글씨와 같았다.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큰 프레임 안에 얽힌 세 가지의 이야기들은 사랑하는 사이에 의심이라는 균열이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의 헤프닝이다. '믿었기에' 배신의 상처가 컸던 이들의 의심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스스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낸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아주 작은 균열은 예고치 않게 찾아오지만 그 균열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랑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우린 종종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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