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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인가
발타자르 그라시안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 장 드 라 브뤼예르 지음, 한상복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평점 :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생 1막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즐겨라.
고전에 힘입어 우리는 더 깊이 있고 참다운 인간이 된다.
인생 2막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즐겨라.
조물주는 우리 모두에게 재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고,
때로는 탁월한 재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들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얻어라.
인생 3막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보내라.
행복한 철학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인생은 없다. -그라시안
책선물을 받고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인생책이라 할 수 있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와 비슷한 맥락의 책이지만, 한상복 역자가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와 장 드 라 브뤼예르의 잠언을 틀로 삼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읽다보면 무척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오히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물질의 세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함은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더욱 강팍하게 만들고 있는 주범인지도 모른다.
라 로슈푸코는 프랑스 대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치적 책략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루이 13세 시절, 왕비의 편을 들어 권력자 재상을 타도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투옥되는가 하면 루이 14세 때에는 실세 마자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차례의 큰 부상을 입고 은퇴해 살롱헤서 독서와 대화를 나누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그는 ‘우리의 미덕은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일지언정지식과 덕행을 쌓음으로써 자기 완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설파한 것과는 반대로 ‘착한 척’하는 것은 삶의 본질과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통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잠언은 거의 독설과 날카로운 지적들이 많지만 수많은 굴곡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신랄하면서도 인간 본성을 꿰뚫는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라는 것 또한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이며 그 잣대에 맞춰 살아가다보면 어쩔 수 없는 가면을 써야만 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태어나면서 누군가를 향한 페르소나를 쓴다. 진정한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우리는 가면을 강요받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가장 좋은 가면이다. 하지만,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씌워진 가면을 조금씩 깨어야 할 때가 온다.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은 나를 속박하는 무기로 작동되어 오히려 나를 나이게 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다 남의 눈치를 보며 온갖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내 삶이 자본주의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 모순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이기심과 이익을 동력원으로 삶아 굴러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면서도 이기심은 나쁜 것이라고 주입시키니, 시스템 자체가 이중적이며 모순적이다.-p6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본성에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며 나름의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며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삶에서 어긋나거나 뭔가 나와 맞지 않는 타인을 한 번쯤은 대면하게 된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활패턴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의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지난 일을 되풀이하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나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을 비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가 사라졌을 때 대상을 수시로 바꿔 자신의 불안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했다 싶으면 공격성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아래에 씌워진 휘황한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착한 척’하느라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있는 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더 낫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세 명의 현자들이 알려주는 공존의 지혜이다. 스스로에게나 사랑하는 이에게, 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너무 착하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게, 그대로의 나인 채로 살아가라.’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동시에 상대 또한 불평불만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는 현실주의적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p12
어느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 모든 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이며 분란에 휘말려들기 쉽다.-그라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