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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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청소년 범죄, 수위는 점점 높아져 흉포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도저히 어린 아이들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청소년 범죄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게 한다. 최근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흉포화 되자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천종호 판사의 강연회가 열렸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통해 또는 유투브 동영상으로 천종호 판사의 호통 재판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기에 무척이나 기대하였던 강연이었다. 직접 본 천종호 판사님은 권위적인 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소탈한 모습의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인상이었다.

 


이 책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은 소년 재판을 8년 하고 떠나가는 천종호 판사의 마지막 소회가 담겨있다. 비행 청소년들을 향한 호통으로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소년 재판을 하며 청소년들의 재판 절차의 문제, 청소년들에게 미흡하기만 한 제도적 모순들을 묵도하며 그가 깨달았던 것은 비행 청소년들은 따뜻한 말 한 마디에도 바르게 자란다는 것이었다. 국가나 사회가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을 찍지만 천종호 판사의 눈에 비친 그들은 가정에서도 법정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여리고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소년재판을 끝내야 하는 법정에서 아이들이 다시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은 곧 호통으로 이어졌다. 죄의 유무를 따져 처벌하는 판사가아닌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환경을 조성해주며 품행 교정을 가능하게끔 하며 비행과 범죄를 벗어나 자립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소년 법정의 판사가 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판사이다. 호통을 통해서라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도록 관계 회복의 단초를 제공하며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까지 배려한, 삶의 안내자로서 아이들을 비롯한 소송 관계자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 호통은 천종호 판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소였다.

 

나의 호통은 법정에 선 소년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라는 내 나름의 간절하고 간곡한 호소이다.”


 

천종호 판사는 무척 가난했다. 한국 전쟁 때 피란민이 거주하는 판자촌이 즐비한 부산의 아미동 까치고개에 있는 빈민가가 그의 고향이다.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였다. 가난으로 인해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슬픔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가난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는 말처럼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은 가족해체로 제도 밖에서 방황하는 소외계층의 자녀들이다. 법정에서 선 소년들에게 천종호 판사가 주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희망, 가난한 삶에 드리워진 암울의 장막을 거두고 희망이라는 빛을 따라 일어서는 용기였다.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비난은 모두 비행청소년들을 향한다. 하지만, 천종호 판사는 그 아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을 제공한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결의 실마리 역시도 어른에게 있다. 아이들의 비행을 부추기는 온라인 중독과 사이버 폭력은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와 함께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점점 증가하는 흉포화 되는 청소년 범죄로 인해 소년법이 폐지된다면 모든 사건을 형사재판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만약 개정안이 받아들여져 형법상 비 범죄연령이 10세까지 낮아지게 되면 초등학생 5,6학년 학생도 형사법정에 세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은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게 되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여야 하며 소년원은 폐지되고 소년교도소를 만들어야 한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청소년 범죄는 전체의 5퍼센트 안팎이고, 더 나아가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은 전체의 1퍼처센트 미만일 뿐이다. 그런 이들을 엄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하면 나머지 95퍼센트의 사건도 형법을 적용해야 하며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모두 전과자가 된다.

 

세상 어디에도 혼자 크는 아이는 없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어른들이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의 실마리도 어른들이 풀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천종호 판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른으로 살아가며 아이들 문제에 무관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의 영역이 있다. 그건 사춘기라고도 하여 문제가 툭 불거지기도 하며, 내 아이는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이 빚어내는 과잉보호의 늪이다. 가정에서조차 케어가 되지 않는 아이들도 많고 학교내에서는 왕따와 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어른들의 암묵적인 동의와 무관심으로 비행 청소년들은 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법적인 처벌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 ‘호통하나로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려놓았듯이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비행 청소년이 아닌 사랑이 필요한 아이로, 문제아가 아닌 부모의 맘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어른의 몫을 해야겠다.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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