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 현대인의 삶으로 풀어낸 공자의 지혜와 처세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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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논어일까?

 

나는 코로나 확진자였다. 7일이라는 자가격리 기간중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 기침을 오래 하니 머리도 멍한 기분이고 말이 잘 들리지 않아 귀도 고장이 난 기분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비록 휴가처럼 여겨졌지만, 아이들 모두 확진이 된 상태에서 나까지 확진이 되고 보니 매끼니가 힘들었다. 여전히 밥먹는 일과 청소에서 자유롭지 않았기에 휴식은커녕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지쳐갔다. 그래서 논어를 읽었다는 건 아니다. 논어를 읽으니 그나마 좀 마음 누일 곳이 생겼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어른들의 사춘기 오춘기를 앓고 있은지 오래, 불쑥 화가 날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울컥일 때도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공허와 우울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조금은 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을까한다. 나만 아프고 나만 고독하다는 말은 그래서 잘못된 사고이다. 삶은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힘들다. 한참 자라고 있는 아이들 역시도 사는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한다. 이것을 깨달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잔인한 말일까.

 

삶은 늘 전쟁의 연속이다. 삶이라는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동안 깔리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달려야만 한다. 하나의 관문을 넘어서면 또 다른 문이 가로막고 있다.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면서도 다양해진다. 문제의 연속에서 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인생이라는 기출문제는 사지선다형이 아니다. 주관식인데다가 서술식이다. 어떤 답이든 맞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지만 틀리다고는 할 수 없는.

 

그렇기에 삶은 늘 숙제의 연속이다. 그래서 논어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에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숙제들. 너는 왜 그렇게 살고 있나? 아님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사나, 뭐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것일까 하며 뒤를 돌아보고 싶을 때가 논어를 읽어야할 때다.

 

이 책의 저자 판덩은 지식 서비스 프로그램 판덕독서의 저자다.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들도 판덩의 해석으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공자의 말 군자불기 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반대로 군자는 그릇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는 군자가 항아리처럼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쉽게 연약하다는 이야기이다.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약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안톤 체호프의 단편 관리의 죽음을 통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어지는 한 관리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 관리가 오페라를 보다 재채기를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재채기라 입을 제때 가리지 못했다. 그의 침은 앞좌석의 지체 높은 장관에 튀었다. 관리는 즉시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는 이후 장관을 매일 찾아가 사과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사과에 지쳐버린 장관은 관리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관리는 소파에 누워 차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약간 어이없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소심함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비극에 가두어버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관리의 죽음은 장관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다. 관리 스스로 자신을 보잘 것 없고 나약한 사람으로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면의 그릇이 너무 작고 약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삶의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상상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며, 그들 스스로 삶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그들이 깨지기 쉬운 그릇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저자 나심 탈레브는 위기에 부러지지 않고 깨지지 않는 단단함을 안티프래질이라 하였다. 작은 충격에도 깨지는 그릇이 되기 보다 안티프래질의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면, 삶에 바람 좀 분다하여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윌리엄 제인스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지고 있는 고통의 총량을 행복으로 바꾸려면 논어는 필수관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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