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재즈 일기 -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개정판
황덕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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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레코드 가게를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레코드가게가 아이스크림가게보다 더 흔했다. 레코드가게마다 헤드셋이 비치되어 있어 음악이 듣고 싶을 땐 언제든지 들어가 분위기 잡을 수 있었다. 그때는 자주가는 레코드 가게 하나 정도는 추억의 서랍을 열면 튀어나는 배경 중의 하나였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막귀인지라 재즈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한편으로는 이 책으로 사라져간 레코드 가게의 향수인지도 모르겠다. 사촌형의 레코드가게를 얼떨결에 인수하게 되면서 '장수풍뎅이'로 간판을 바꾸게 되면서 시작된 일기이다. 재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주인공이 재즈 레코드사를 열게 되면서 시작된 일기는 재즈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면서 쓴 기록들인데,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진짜 저자의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서판을 다시 읽으면서 허구라는 걸 알았다. 허구치고는 너무 진지했고, 설정치고는 너무 리얼했기에 저자의 일기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는데, 재즈 입문자들을 위해 일기라는 형식으로 쓴 것일 뿐 실제 주인공은 아니라한다. 

 

이 책이 일기 형식을 띠게 된 것은 재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즈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하기 위해서 형식만을 취한 것이고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재즈 100년의 역사 흐름을 알기 휩게 쓰기 위한 선택이었다. 저자 황덕호는 재즈 칼럼니스트로, 1999년부터 KBS 클래식 FM ‘재즈 수첩15년 동안 진행해왔다고 한다. ‘재즈 수첩은 재즈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라 하는데 , 물론 나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재즈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저자는 기존의 재즈 음반 가이드북을 보완하기 위해서 초보자들이 감상하기에 용이한 음반에서부터 그 음반과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음반들로 확대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일기 형식의 재즈 입문서가 요원했다고 한다.

 

 

 

1부에서는 재즈에 대한 편견을 깨어주는 장이다. '장수풍뎅이'에 들리는 범상치 않은 손님들의 등장으로 재즈의 문외한이었던 주인공이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인데 ,  주인공과 독자를 동일시 하며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 혼자 재즈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는 재즈의 리듬감은 피아노와 베이스가 건반악기 또는 현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내는 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2, 3부는 재즈의 역사와 스타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장으로 재즈의 명반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재즈에 대해서 워낙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어서 재즈 입문서로는 그만인 책 같다. 조금씩 읽으면서 재즈의 매력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재즈의 다양한 앨범과 종류, 기원에서 현재의 명반들까지 재즈 역사가 이 책 하나에 다 담겨있다. 내가 마치 레코드가게 주인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 주인공이 되어서 재즈를 독학하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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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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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문학이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면이 좋다. 내가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감동과 공감을 가능케 하며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에서의 수많은 다양성을 연상케 한다. 체험할 수 없는 삶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문학의 가장 멋진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본다면 쉽게 정의 되지 않는다. 문학이란 그 자체가 상당히 관념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내가 문학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들이, 결코 문학 자체의 보편적 정의가 아닌, 단지 내가 하나의 숙주가 되어 키워낸 문학에 대한 무수히 많은 관념들 중의 하나에 불과함을 안다.

 

이 책은 1960년대 푸코의 사유가 구조주의의 강력한 자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평가 김현은 이 시기를 푸코 사유에 있어서 문학 시기라 불렀다.(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문학과지성사/김현) 그 시기의 공개 구두 강연을 모은 것이 바로 《문학의 고고학》이다. 푸코의 사유는 광기의 언어부터 시작하는데 , 광기의 언어란 문학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언어적 사실이라는 것이며 광기가 하나의 의미작용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광기와 문학은 기호들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것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문학과 광기는 오늘 날, 그러니까 하나의 공통적인 지평, 기호의 그것에 다름 아닌 하나의 집합선을 갖는다. 

 

미셸 푸코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학의 수행자체와 연결 되어 있으며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안에 거주한다고 한다. 문학은 우리의 언어 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는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작품이라 부를 때 작품은 오직 자신이 시작되는 순간 자체에서만 문학이 된다. 문학은 단어에 대하여 그 봉헌의 공간을 추구하는 사전적 의례 안에 존재하는 이 표면 위, 이 순간에서만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푸코는 하나의 단어가 백지 위에 쓰이면 그 페이지는 문학의 페이지가 되지만 이 순간부터 이미 그것은 더 이상 문학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라고 한다. 따라서 문학의 존재란 존재하지 않다. 다만 하나의 시뮬라크르, 문학의 존재 전체인 하나의 시뮬라크르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작품이라 부르며 문학적이라 칭하는 언어는 하나의 작품도 문학도 아니며

마치 우리가 볼 수는 있지만 결코 만져볼 수는 없는 거울 속의 공간처럼, 하나의 잠재적 공간, 매개적 공간의 일종이라는 것, 프루스트의 작품에 참다운 모습을 제공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시뮬라르크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문학이 책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완성한다면, 문학은 책의 본질을 평온하게 맞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자신의 내용 이외에 또 다른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언제나 책의 시뮬라크로로 남게 될 이유이다. 문학은 마치 자신이 한 권의 책인 것처럼 굴면서, 자신이 마치 책들에 대한 공격과 폭력에 의해서만, 더 나아가 책의 여성적인, 하찮은 변형 가능한 본질에 대한 공격과 폭력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은 하나의 위반하는 언어이자, 죽을 수밖에 없는, 되풀이하는, 다시금 이중화되는 하나의 언어, 책 자체의 언어입니다. 문학에는 오직 하나의 말하는 주체만이 존재합니다, 이 말하는 하나는 바로 책입니다.-p153

 

다시 말하면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문학이라 불렀던 문학들은 문학이라 부를 때 하나의 언어로만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문학을 통해 감동과 영감을 얻게 된다면-이른바 시뮬라르크- 그때 문하기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곹옹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되는 공간이 존재할 때 문학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 문학의 고고학은 결코 문학 자체가 아니라, 이 문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묻는 일이며, 이 문학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문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자신의 글쓰기 행위를 통해 실현하고 드러내는 일이다.'(마지막 문장은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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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시의 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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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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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만 해도 불면증과 우울증세가 심저에 깔려 있는 느낌이었는데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그런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 무릇 현대인들에게 불안이란 낯선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불안해 하고 누구나 우울해 한다. 그 불안의 원인들에 대해서 알고 치유하는 것은 본인의 자각에 달려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불안'해 지지 않기 위해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운명이 아닐까.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마르크스적 라캉주의 철학자로 1980년부터 라캉주의 정신분석학과 독일 관념론 및 비판이론의 철학적 유산을 결합한 슬로베니아 정신분석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던 레나타 살레츨은 <불안들>에서 불안을 유발하는 것을 미디어가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불안이 오늘날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기에 앞서 현대인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1. (, 사랑등이)충분하지 않다.

2, 사람들이 더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즉 거부에 대한 두려움)

3. 좋은 것은 금방 사라질 것 같다.

4. 사람들이 나의 실체를 알아챌 것 같다.(즉 내가 그저 허세를 부리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5. 내 삶이 덧없다.(즉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프로이트는 불안에 관한 초기 이론에서 성행위 중단, 금욕등으로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가 배출되지 못할 때 불안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외부의 위험을 예견했을 때 나타나는 합리적 반응인 현실적 불안과 내부의 위험에 대한 일종의 투사적 반응인 신경증적 불안을 구별했다. 라캉은 이런 프로이트의 견해를 확대해서 불안의 대상은 타자와 사회의 상징적 관계망을 의미하는 대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불안의 본원적 모습은 사랑의 대상상실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주체가 가늠할 수 없는 대타자의 욕망 앞에서 느끼는 정서이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자신이 타자에게 어떤 대상인지를 묻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있을 수 없기에 주체는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라캉은 불안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상징화가 불가능한 실재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불안은 언어와 환상을 통해 매개되지 못한 충동, 육체적 향락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한다. 예컨대 정신병적 불안은 실재, 충동, 향락이 환각 속에서 주체를 위협할 때 발생한다, 달리 말해 상징화의 실패란 결여와 차이의 소멸에 다름 아니기에 불안은 결여가 아니라 결여의 사라짐에서 온다는 것이다.  주체에게 결여는 실체적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이므로 빈 곳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 빈 공간에서 무언가, 곧 실재가 등장할 때 불안이 발생한다.

 

요컨대 정신분석학에서 불안은 욕망하는 주체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 피할 수 없는 근원적 정서이다, 프로이트나 라캉에게 불안은 병리적 현상인 동시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본래적 현상이다.

 

이런 이론을 토대로 살레츨은 현대사회의 각종 불안 현상들을 조명한다세계대전이후 사회경제적 위기와 정신의 위기가 20세기의 불안요인이라 보며 21세기는 테러와 바이러스와 같은 악과 같은 공포로 인한 불안을 진단한다.  불안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불안은 주체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자기 인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역설하며, 21세기의 주체는 스스로를 완벽히 통제해야 하는 자기 창조자이며, 이런 주체에게 방해가 되는 측성은 어떤 것이라도 장애로 분류되고 주체가 사회적 기대와 관련해 겪는 내면의 동요로 인하여 불안감이 극심해지는 것이라 한다. 

 

하이퍼-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의 부족감과 불안에 기대고 있는지,또한 미디어가 불안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살펴보며 사랑과 관련한 불안과 사건으로 보는 앤드리아 예이츠의 사건으로 보는 모성의 불안등 다양한 불안의 사례들을 라캉식 철학으로 피력한다.   

 

철학과 영화의 결합으로 지난 달 읽었던 [씨네샹떼]와 같은 맥락의 글이었는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사건에서 불안의 기저를 찾아 분석하는 글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라캉과 프로이트 부분은 다소 난해하여 책의 내용을 짧게 요역해 놓았다.  불안심리,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그 불안의 원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불안이 사회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서 오는 것이라면  인식하는 것만으로 치유가 가능하리라 본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불안이란 상징화가 불가능한 실재를 착각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심리기저로 그 환상을 걷어내는 것만이 가장 좋은 처방이 될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현학적이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기억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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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넘어 - 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앤서니 앳킨슨 지음, 장경덕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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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지만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양극화는 중산층의 빠른 붕괴를 가져오고 , 경제의 불안정으로 인한 성장과 분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평등에 관한 논란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딱히 대안은 없는 상황이 사회적 불안으로 자리잡아 가는 분위기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작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으로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 불평등의 보완과 조정할 대안은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반세기 동안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 앤서니B.앳킨슨은 불평등에 대한 염려가 다른 모든 위험을 압도한다.”며 우리가 진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염려보다는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을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역사에서 분배의 관점을 재조명하여 불평등 줄이기 위한 방안을 피력한다.  

 

책은 세 부분을 나뉘어 현재 우리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아보고 경제학이 불평등의 원인에 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 있는지를 살펴본 연유에  2부에서 불평등을 해결 할 수 있는 구상 다섯 가지를 정리한다. 이어 3부에서는 2부에서 실행 가능한 다섯 가지의 제안들에 대한 다양한 반대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 설명한다.

 

자본주의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불평등 이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평등한 사회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을뿐더러 절대적 평등은 불가능하다. 완전한 평등이 아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저자는  기회의 불평등결과의 불평등개념으로 재분배의 근본적 필요성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소득과 부의 분배가  불평등해짐에 따라 불평등한 기회와 제한적인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염려는 더욱 커져왔다. 분배적인 가중치는 재분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들을 구체화하며 불평등에 관한 염려의 본질적 바탕이 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배 문제를 무대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시해 놓았다.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측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과거에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둘 다 살펴봐야 한다.

-역사적인 기록은 장기적인 추세보다 주요 사건들 면에서 더 잘 해석되며, 우리는 불평등이 줄어든 시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나아가는 것은 조세와 재정 지출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시장소득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불평등 증가의 근원은 자본시장과 노동시장 둘 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단지 교육으로 얻은 자격 조건에 붙은 프리미엄이 높아지는 문제만은 아니다.

-시자으이 힘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는 어디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 그리고 대항력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는 특히 고용의 특성 및(소득의 원천으로서) 부와 (통제력의 원천으로서) 자본의 관계 면에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저자는 불평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현재 불평등을 심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장자유화 같은 경제정책들에 대한 지지라 한다. 이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으로 인하여 부의 불평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음에도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정부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저자는 정책 결정시 근로자들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고 개인 소득세에 대해 더 누진적인 세율 구조로 돌아가야 하며 불평등과 빈곤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서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함을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기능에 의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장 효율적이라 하였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지나친 신념으로 인해 결국 시장사회는 시장경제(시장만능주의)로 변질되었고 ,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게 되다보니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왔다.  경제와 정치는 상호보완과 협력관계에 있고, 정부의 개입에 의해서 시장경제가 균형을 찾아가는 방안은 나름 좋은 대안인 것 같다.  진보는 분배를 , 보수는 발전을 지향한다고 하였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실질적 제안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 경제학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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