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복합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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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스토리텔러의 일덕

 

 

전설 찾아 떠난 두메 취재에서 만난 살인사건, 우연이 아닌 철저한 계획이다?

누가, 무엇을 위해 D의 복합으로 우릴 초대하고 조종하는 걸까 .

“선생님은 알고 계세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거길 가실 리 없어요.”

 

 

무명작가인 이세는 월간지 「구사마쿠라」의 편집 차장인 하마나카의 원고 의뢰로 '전설을 찾아가는 벽지 여행'이라는 기행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한다. 여행지를 정하고 하나마카와 함께 취재를 떠나는 이세, 첫 번째 목적지인 기쓰 온천에서 둘은 숙소 근처 산에서 사체 수색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갑작스런 투고에 발생 1년 만에 수사가 재개된 살인사건은 이상하게 이세와 하마나카의 여정마다 계속 얽힌다. 의도치 않은 이 기묘한 경험을 이세는 흥밋거리 삼아 연재물에 쓰고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세는 욕심을 부려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보려 하고, 때마침 열혈 독자를 자청하는 사카구치와 니노미야의 편지를 받는다. 다른 독자들과 달리 이세의 연재가 편집부의 기획인지 이세의 착상인지를 궁금해 하는 둘, 그런데 이세를 만나 이상한 얘기를 늘어놓던 사카구치는 살해당하고 니노미야는 이세와의 만남 후 실종된다. 진실을 알려할수록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세는 안전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추리와 여행을 결합한 '여행 미스터리(여정 미스터리, 온축 미스터리)' 장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한다. 그리고 장르적 기원을 1968년 작인 마쓰모토 세이초의 <D의 복합>으로 삼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세이초 선집'을 표방하며 두 출판사가 합심해 내놓은 『세이초 월드』의 첫 작품이 왜 <D의 복합>인지 조금 의아하다. <D의 복합>은 일본 고대사와 민속학적 소재들을 엮으며 풀어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엔 세이초 외에도 류노스케 등 자국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깊이 파고든 유명 소설가들이 많다. 문제는 그런 배경지식이 없는 외국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작품의 깊이와 재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D의 복합> 초역본을 두고 어려워서 쉽게 작품에 빠져들지 못한다거나 읽어보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 꽤 있다. 데뷔작이나 더 유명한 작품을 제치고 굳이 <D의 복합>을 선정한 것은 역사전문출판사의 정체성 표현의 의지일까(<D의 복합>을 낸 모비딕은 역사비평사에서 처음 만든 문학 임프린트다), 추리·역사·시사를 넘나드는 세이초의 문학세계 전반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D의 복합>이란 판단에서였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D의 복합>이 매우 일본 독자 맞춤형 소설인 것은 맞지만. 배경지식이 없다고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소설의 양념에 불과할 뿐이고 태생(대중소설)을 뛰어넘을 만큼 심오하지 않다. 박학하면 더 좋겠지만, 책 서두에 실은 지도를 참고하며 소설에서 작가가 서술하는 만큼만 읽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집중해야할 것은 작품의 본질인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자신이 맞닥뜨린 사건이 단순히 재수 없이 겪은 우연이 아닌 것을 깨닫는 순간 단순한 호기심은 집요한 갈망이 되고 이세는 사설탐정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점에서 세이초의 단편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 단편에 비하면 <D의 복합>의 이세의 동물적 감각과 행동력은 약하다. 이세와 같은 걸음을 걷는 독자, 사카구치가 알아챈 이세의 여정 속 35 숫자의 연속은 살인사건을 푸는 실마리고 온갖 방법의 중첩들은 게임의 끝을 가리킨다.

 

북위 35도, 동경 135도를 영어로 하면 North Latitude 35 degrees, East Longitude 135 degrees다. 네 개의 D가 중복되어 있으니 ‘D의 복합’이다. 게다가 위도와 경도는 지구를 가로와 세로, 각각 둘로 나누고 있으니까 그 모양으로 봐도 D형태의 조합이 된다. - p.259

 

440여 쪽의 <D의 복합>은 D의 복합의 의미를 밝히는 259쪽을 기점으로 소설이 갈린다. 장르물의 공식대로, 온갖 정보들의 나열과 지지부진함에 슬슬 지루함을 느끼는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선 앞서 던진 단서와 복선들이 짜 맞춰지며 속사포처럼 전개된다. 누군가가 철저하게 만든 시나리오에 맞춰 전개되는 사건들, 이세를 비롯한 초대자들, 이 게임의 호스트는 누구며 이유는 무엇일까. '범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설 내내 신경 쓰이는 사람, 지금 당신이 혹시 하는 그자가 '범인'이다. 끊김이나 틈 없이 서두부터 결말까지 엮는 모양새, 치밀한 계산과 기획으로 썼겠지 싶은 <D의 복합>이 계속 퇴고해서 전체 작품으로 출판한 게 아니라 2년 반 동안 잡지에 연재했던 소설을 묶은 것이란 걸 알고 놀랐다. 물론 출판과정에서 전체 교열을 했겠지만, 전체그림을 모두 그려놓고 쓰지 않는다면 구현하기 힘든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격적으로 놀라운 작품까진 아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보기엔 결말 처리나 트릭이 눈에 익기 때문이다.

 

황순원은 등단 후 문학성을 지키기 위해 잡문이나 연재소설을 쓰지 않았다. 코난 도일은 억지로 죽은 주인공을 살려내야 했고 찰스 디킨스가 혹평과 평가절하에 시달렸던 것은 그들이 작품을 주로 신문이나 잡지 연재로 발표하는 대중소설가여서인 이유도 있다. 대중이나 연재란 단어는 '쉬운', '상업', '소모성', '돈 때문에 하는' 따위의 어감이 있다. 실제로 수많은 대중소설·연재소설들이 순수소설보다 완성도와 문학성이 낮아 선입관을 강화시킨다. 소설은 대개 학술·교양서보다 읽기 쉽고 그래서 많이 읽는다. 하지만 술술 읽히고 내용이 그럴듯한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수없이 취재하고 경험하고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티가 나지 않고 다작 욕심에 암묵지 쌓기를 소홀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비단 소설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스토리텔링이 마찬가지다. <D의 복합>을 읽으면서, 세이초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고 발로 뛰었을까 눈에 선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애쓴 만큼 드러나지 않아도 자신이 쓸 이야기를 위해 쉼 없는 것, 재미도 재미였지만 <D의 복합>을 통해 스토리텔러의 일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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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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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마케터가 모르는 마케팅, 소비자가 모르는 소비심리

‘소비자 심리학을 아시나요? 한국인을 위한 소비자 심리학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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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종일 부족한 것을 생각하고 원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광고를 보지 않았다. 프롬은 인간이 행복한 존재가 되는 데에 소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사회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긴다. 우리는 대공황을 통해 공급이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의 법칙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생산을 계속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고 다양화해야 한다. 1987년 크루거가 데카르트의 명제를 패러디해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10년 후엔 보스하르트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쓴다)는 슬로건이 적힌 포토몽타주를 제작했을 때 대중들은 신선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비의 대상은 유무형의 재화뿐만이 아니다. 실존과 인간본위의 삶을 위해 멀리 했던 가치였던 소비가 이제는 정체성을 나타내고 실존의 중심가치가 되어버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비자이자 마케터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스스로를 상품화하여 누구 혹은 어디엔가 소비되길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마케터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소비자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무엇을 남에게 제공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케터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이든 노동력이든 무엇인가를 남에게 팔아야 하는 탓이다(우리는 이것을 ‘자아실현’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소비행위’라 할 수 있다(p.31).

 

 

 

 

황상민 교수의 TV 출연이 특정 분야가 아닌 전천후임을 깨닫고 나서 그의 전공이 무척 궁금해졌다. 처음 그를 TV에서 봤을 땐 아동심리학 교수인가 생각했고 그 다음엔 무난하게(?) 사회심리학인가 싶었다. 그리고 황 교수가 쓴 저서들을 보게 되었고,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정확한 전공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에 와서인데, 알고 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모든 활동이 전공에 기반을 둔 것임을, 흥행을 아주 잘 아는 분임을 깨달았다. 소비자를 연구하는 사람은 전략은 달라도 원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시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황상민 교수는 그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다. 그는 10여년 이상 강단에서 소비자 심리학 강의를 했다고 하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발달심리학 혹은 인간발달학이다. 인간의 생애주기 및 발달단계 전체를 연구하거나 특정 단계(ex.아동, 노인)의 인간 행태 및 심리를 연구하는 분야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비 패턴이나 연령별 소비자 특성 연구와도 연결이 되고 황 교수 외에도 이 전공을 베이스로 한 소비자 연구자들이 꽤 많다.

 

 

 

황상민 교수가 이 책을 쓴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교과서는 모르는 한국 소비자 : 미국 소비자 이론의 한계와 우리식 소비자 연구의 필요성

2. 마케터가 모르는 마케팅: 경영학 중심의 마케팅 기법의 한계와 소비자 심리학 소개

 

 

 

소비자를 연구하는 학문으로는 경영학의 마케팅 분과, 심리학의 산업심리 분과, 경제학의 소비자경제 분과, 소비자와 소비행위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루는 소비자학 등이 있다. 그 외 규제행정론의 소비자보호, 광고학의 일부, 소비철학, 관련법 등 전공 단위라기보다 과목단위로 공부하는 분야도 있고 앞서 말한 인간발달학이나 문화인류학·사회학 같이 기본 바탕이 되는 학문도 있다. 그래서 학부 때 복수전공이나 타전공수강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분위기다. 그러나 기업 마케팅부서는 진입장벽도 낮은데다 고용도 불안정하고(인사 회전이 빠르고), 기업의 중심이나 사원들의 최종 비전인 경우가 별로 없다. 주요 경영학과 학생들이 고시나 CPA에 주로 매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공격적인 마케팅 욕구가 있어도 예산 제약이나 실패시 인사 공포 때문에 몸을 사리고, 무수히 쏟아지는 마케팅 서적 덕분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마케팅 지식은 다 가지고 있다. 경영학과 없는 대학을 찾긴 힘들고 시스템도 무난하나 소비자심리학과 소비자학은 좋은 학교가 손을 꼽는다.

 

 

 

소비자의 심리를 알고 그들의 특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다양한 소비행동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그 이유나 동기, 내면에 가려진 심리적 근거들을 찾는 일이다(p.262). 소비현상은 우리 각자가 다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행동을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사람 수만큼 다양한 행동이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시장에 접근하는 마케터들의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의 유형에 따라, 소비자의 마음에 따라,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서. 마케팅에서의 ‘고정관념’은 ‘고장 난’ 마케팅만 양산할 뿐이다(p.280).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사 리스크를 줄이려는 채용자 입장에선 전공자는 경영학과 위주로 뽑고 경영학 중심의 마케팅 전략, 누구나 다 아는 기법을 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누구를 위한 마케팅이고, 제대로 소비자를 파악하고 있는지. 미국의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소개하는 교양서와 교과서만으론 한국 소비자를 분석할 수 없으며, 경영학만이 소비자 연구와 마케팅 분야의 전부가 아니란 것이 황상민 교수의 주장이다. 사회조사방법론에 기초한 기본적이고 기계적인 시장조사기법은 담당자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핵심적인 결과물은 도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소비자 연구기법은 계속 진화하고 학자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 적용 가능한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무조건적으로 경영학과 다른 소비자 연구 관련 학문을 대립시키고 후자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 이론·기법과 최신 이론·기법의 대결, 흔히 이론(학문)이 실제(기업)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론에 가까운 책이다.

 

 

 

<목차>

1부. 시장으로 나온 심리학

2부. 특명 사례 탐구

3부. 대통령과 루이비통

 

 

 

<대통령과 루이비통>의 부제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를 보면 <한국인의 심리코드>, <짝 사랑>과 같은 저자의 이전 저작들처럼 ‘한국인’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한국 소비자 분석에 주력한 책일 것이란 예상을 한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은 잘 만들어진 한국형 소비자 심리학 개설서 같은 느낌이 강하다. 전공생들에겐 개론 수업 리더 정도로 제시할만하고,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고3 수험생이나 대학 신입생들에겐 괜찮은 전공탐색서이다. 한국 소비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는 것은 3부에 와서이다. 1부에선 소비자 심리학에 대한 소개와 경영학과의 차이 비교, 소비자 연구의 역사와 중요 마케팅 사례들을 다룬다. 독자에 따라 이 부분도 한국 소비자를 분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2부는 프로야구팀과 휴대전화통신요금을 대상으로 소비자 심리학 관점의 분석 예시다. 꼼꼼히 읽으면 관련 전공수업 아무 시험이나 봐도 답안지에 뭔가 쓸 수 있을 정도로(C+이상의 학점 방어까지 보장하진 못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꽤 많은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바를 ‘항상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p.124).

하워드 모스코비츠의 실험 (...) 보편성과 일반성의 법칙을 찾고 여기에 목매달던 사람들이 비로소 차별성과 개별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p.137).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 비합리적인 성향의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삶의 결과가 바로 ‘다양성’이다(p.140).

좋은 질문이 정확한 답을 유도한다(p.144)

 

 

 

소비자 연구에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한 가지 답은 없다. 보편성이 아닌 다양성, 수동적인 고객이 아닌 능동적인 소비자로 인식,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할 때 소비자가 보이고 마케팅이 성공한다. 가장 인기 많은 제품이 아니라 수요층이 있는데 없는 제품을 알아내는 것이 기업경쟁력과 시장창출로 이어지는 비결이다. 분석 단위는 더욱 세분화되어야 하고 보다 대상의 심층(내면)에 접근해야 한다. 황상민 교수는 이를 가리켜 ‘마음을 MRI’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심리학에만 있는 기법이 아니라 경영학의 ZMET 등 다른 소비자 연구 분야에서도 고안·사용하고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만큼 마케팅에 있어 조정자·조사자의 역량이 점점 중요해진다. 당장 이 책의 사례들을 봐도 느낄 수 있다. 황상민 교수는 미국의 VALS 개념과 치환할만한 한국소비자 세분화 일반형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읽고 있노라면 각 유형들이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일반인들이 보기엔 자기 유형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헷갈린다.

 

 

이제 막연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한국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마케팅이나 소비심리에 대한 책은 더는 필요 없다. (...)

우리 삶의 방식과 삶의 가치, 그리고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에 대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야말로 소비심리에 대한 정확한 탐색일 것이다(p.368).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과 목차, 독자 서평들을 보고 소비자 심리학이란 학문이 궁금하고 소비자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해진다면 더없이 취향에 잘 맞고 즐거울 책일 확률이 높다. 한국인의 명품소비 등 이 책에서 황 교수가 내린 진단은 정답이 아닌 가능성이고 예시다. 또 현재에 있어선 타당한 분석이지만 과거에 그러지 않았듯 미래에 달라질 수 있는 현황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쉬운 설명과 다양한 총천연색 사진 자료와 도표로, 소비자 심리학과 유용한 시장 조사 및 분석 기법에 대해 친절하게 얘기하는 책이지만 안내서이다. 이 정보들을 참고하고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에 흥미가 생긴다면 내용 요약본을 찾으려하지 말고 목차 정도만 훑어보고 직접 책을 읽으며 배우고 생각하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능동성에 대해 돌아보고 견주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소비 가치에 매몰된 서글픈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나의 의지로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행복한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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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완성한 여자 메리 퀀트
메리 퀀트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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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메리 퀀트] 영국과 여성의 갈비뼈 시대를 연 데이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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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그리던 패션소녀, 디자이너가 되다

모든 여자들은 패션소녀였다. 선천적으로 남자에 비해 월등한 눈썰미를 가진 여자들에게 패션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탐구주제가 된다. 헤어스타일과 손발톱, 액세서리, 옷과 화장 그리고 신발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변화들을 매의 눈으로 알아챈다. 그래서 그걸 못 알아차리는 남자들에게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귀할멈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반대로 여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꾸민 적 없다 내숭을 부렸다가 웃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똑같이 드라마를 봤는데 여자는 줄거리 및 명대사 파악은 물론 그 날 방송 몇분 몇초대에 주인공 책상 위에 있던 시계까지 기억하고 검색을 해대니, 오늘날 마케터들은 PPL을 포기할 수가 없다. 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이지만 타고난 특질의 우위가 뒤집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 치고 어릴 적 스케치북 가득 여자들을 그리거나 (종이)인형 놀이를 하며 코디 연습을 하거나 새로운 룩을 제시하지 않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학예회나 수련회에서 준비한 게 없거나 마땅히 떠오르지 않을 땐 그렇게 패션쇼를 해댔다. 메리 퀀트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패션소녀에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가 된다.

 

패션과 여성해방

블루머란 옷이 있다. 길이가 짧고 통이 큰 바지의 끝에 고무줄을 넣어 푼푼하게 입는 옷으로 지금은 속옷이나 속바지, 잠옷으로 입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땐 최초의 여성용 (겉)반바지로 고안한 옷이었다. 이 옷을 만들고 입길 장려한 아멜리아 젠크스 블루머는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 불린다. 진정한 양성평등이란 무엇일까. 모든 일을 남녀가 동등하게 하는 것? 성적 차이를 인정하고 각 성의 우위적 특질을 중심으로 철저히 성역할을 나누되 동등한 가치로 평가받는 것? 20세기의 양성평등은 전자의 관점에서 외쳐졌다. 여성이 겉옷으로 바지를 입는 것은 남성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자전거나 말을 탈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의 의복에 실용성이 더해지는 것은 ‘여성의 인간화’의 출발이었다. 그래서 20세기의 여성 의복혁명은 여성해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블루머 이후 니트보커스 등 남성의 바지들을 여성용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하의는 점점 짧아졌다. 20세기 초반 코코 샤넬은 여성이 바지를 입어도 기품이 있고 여성성이 반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메리 퀀트는 짧은 하의의 종결점을 찍으며 실용적인 여성의복의 섹슈얼리티를 극대화시킨다.

 

영국과 여성의 시대가 열린 1960년대

해가 지지 않던 나라 영국이었지만 패션, 문학 등 문화에 있어선 계속 프랑스에 뒤져 있고 베끼기 급급했다. 게다가 양차대전 이후 헤게모니를 쥐게 된 미국이 비약적 문화적 성장을 이루니 자존심은 더욱 상했다. ‘영국적’인 것에 대한 오랜 갈증은 1960년대 비틀즈를 비롯해 영국의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대전환점을 맡는다. 거물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여전히 패션은 가정에서 부녀자들이 가족들의 것을 만들고 부띠끄에서 부유층의 주문을 받아 맞춤 제작하는 영역이었다. 최초로 산업혁명을 하며 근대산업사회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패션도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중심엔 메리 퀀트가 있었다. 메리 퀀트처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아 정신적 피폐함이 없었던 새 세대들은 새롭고 자유로운 문화 트렌드를 이끌었다. 성경에서 최초의 여성인 이브는 남성의 갈비뼈로 만든다. <메리 퀀트>에서 메리 퀀트는 1960년대가 갈비뼈(종속적 존재)에 불과했던 여성이 부각되는 시대라 표현한다. 메리 퀀트는 여성뿐만 아니라 조국 영국의 갈비뼈 시대를 열었다. 1960년대 이후 런던 역시 주요 패션 메카가 된다.

 

미니스커트와 이념 없는 혁명

메리 퀀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델 트위기다. 비달사순의 보브컷, 빳빳한 속눈썹, 20대 초반 느낌의 발랄함과 가는 체구, 미니스커트, 다양한 스타킹 패션. 196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트위기는 실제로 메리 퀀트의 모델이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그녀의 전성기 때를 상징하는 지배적 이미지들이 메리 퀀트가 제시했던 룩이었다. 특히 메리 퀀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니스커트다. 흔히 그녀를 미니스커트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억울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앙드레 쿠레주가 최초이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는 1960년대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퀀트>에서도 관련 얘기가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미니 스커트하면 대개 메리 퀀트만 떠올리는 것은 힙라인에 딱 붙고 파격적으로 짧은 오늘날의 미니스커트를 제시한 사람이 그녀여서일 것이다. 메리 퀀트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핫팬츠도 제시했는데 둘 다 여성의복에 있어 혁명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재밌게도 메리 퀀트의 혁명엔 페미니즘이 없다. 그저 그녀 평생의 고민인 ‘어떻게 하면 여성이 더욱 예뻐 보일까’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낯선 데이지 그녀

하이패션(디자이너패션)에 합성섬유를 마구 섞고 캐주얼스러운 옷을 많이 만드는 메리 퀀트는 당대 패션계의 이단아였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의 이 패션 거물이 우리에겐 낯설다.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브랜드라 매장도 없고, 전공자들도 수업 시간에 많이 배우는 디자이너가 아니다보니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꼽는 경우도 적다. 확인차 집에 있는 패션책과 전공책들을 찾아봤는데 기억이 맞았다. 단 몇 줄로 스쳐 배우고 넘어갔었다. 2006년 국내 화장품브랜드인 미샤의 BI 카피 사건 때문에 메리 퀀트의 데이지 마크는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 화장품브랜드로만 아는 사람도 있다(메리 퀀트는 후에 화장품 사업에도 손을 대는데 현재는 일본 기업에 경영권을 전부 넘겼다). 아무래도 메리 퀀트의 패션 스타일이 동양에선 우리나라보다 일본 취향(실제로 메리 퀀트의 옷과 화장품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였고 그녀 역시 일본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했다)이기 때문에 국내엔 런칭이나 직접 진출이 없는 게 이해는 되지만 명성에 비해 너무 알려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메리 퀀트> 출간이 반갑고, 이번 기회로 메리 퀀트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할머니 일기장에서 찾는 보석 같은 영감과 자극

<메리 퀀트>는 올해 출간된 동명의 자서전을 번역한 책으로 메리 퀀트가 직접 쓴 책이다. 할머니 일기장처럼 주섬주섬 추억 보따리 꺼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래서 사진 자료가 대단히 적다. 중간 중간 메리퀀트의 사진은 있지만 본문 속에서 얘기하는 상품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으니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이니. 올해 메리 퀀트는 79세, 그래서인지 회고하는 과거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지도 않고 부정적일 수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승화된다. 예를 들면 바람둥이라던 남편에 대해선 소제목과 달리 본문엔 그런 면들이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동반자로 표현되는 부분이 훨씬 많다. <메리 퀀트>는 학생, 디자이너, 엄마, 아내 등 모습과 역할은 다르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이 물씬 묻어나는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직접적이고 일목요연한 브랜드 소개와 비즈니스나 디자인 팁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은 책이었다.  노 디자이너가 현재 입거나 입으려는 옷이 지금 20대들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감각 있어 존경스럽다. 특히 그녀 책 전체가 보여 준, 어떤 거창한 기조 없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가슴에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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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잠복] 대작가의 초기작과 거니는 1950년대의 일본

 

 

http://der_insel.blog.me/120166344281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소설, 연극 등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로로든 접하게 되는 작가다. 1950년 등단 이래 1992년 사망하기까지 40여 년 동안 세이초는 장편 100여 편 중단편 1000여 편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썼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 단행본이 750여종에 달하고 66권이 나온 전집이 완간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엄청난 다작 작가인지 가늠할 수 있다. 흔히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로 소개되고 독자들도 그렇게만 알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미스터리 소설은 소비성과 오락성이 강한 대중통속소설의 일환으로 등장 발전하여 순수문학에 비해 내용도 가볍고 집필 속도도 빠른 경향이 있으며, 양산형 장르문학이나 라이트노벨로 이런 이미지가 더 강하게 굳혀져 있다. 그래서 세이초의 다작과 작품성을 평가 절하해 예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이초의 작품세계는 대단히 방대하다. 물론 세이초가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로 일가를 이루었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추리·미스터리 관련이지만,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작가였고 소설의 경우 순수소설과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역사소설 등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작가였다. 초기작인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 일본 최대 상업 문학상인 나오키상에 후보로 올랐다가 도리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사실이나, 역사소설 집필을 위해 몰두한 일본사에 대해 훗날 학계와 맞서고 학문적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점은 세이초란 인간과 그의 문학 세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자가 한 작가의 작품들에 접근하는 방법엔 대표작을 중심으로 읽는 방법과 초기작부터 시작해 시대 순으로 읽어 나가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방법으로 세이초의 문학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지난 달 출간된 <잠복>은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총 여섯 권으로 기획한 모비딕의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은 1965년에 일본의 문학평론가 히라노 겐이 여섯 권으로 펴낸 ‘신조문고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단편집(신조사)’를 번역한 책이다. 권 순서는 다르지만 일본판과 제목도 수록단편도 같은 단편집 <잠복>은 세이초의 첫 미스터리소설인 [잠복]을 포함하여 1955년에서 1957년 발표한 여덟 편의 미스터리소설을 담고 있다. 단편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1950년대는 2차 대전 종전 후 전장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고 패전과 식민지 상실로 입은 경제적 정신적 타격을 한국전특수로 인한 경기부흥으로 극복하는 시기이다. 궁핍한 가정형편으로 학력도 소학교 졸업으로 그쳤고 마흔이 될 때까지 노점상과 인쇄공, 각종 부업 등 별별 일을 했던 세이초는 상금을 받기 위해 글을 쓰면서 등단한 작가였다. 초기단편집인 <잠복>엔 그런 다사다난했던 세이초의 경험과 당시의 일본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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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그르친 완전범죄 [얼굴] - 1956

무명의 연극배우였던 료키치는 그의 연극을 본 이시이 감독의 눈에 띄어 감독의 신작 <봄눈>에 단역으로 캐스팅된다. 대여섯 장면만 나오는 단역에 불구했지만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은 료키치, 이번엔 파격적인 주연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다. 료키치는 불안하다. 료키치에겐 씻을 수 없는 과거가 있고 그 과거를 아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껏 조용히 살았다. 전국 개봉하는 영화의 주연, 오랜 무명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온 상황, 성공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파국을 부르는데.

 

 

어느 잠복형사의 일지 <잠복> - 1955

도쿄에서 발생한 기업 중역 강도 살인사건, 아무런 단서도 없어 한 달째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우연히 노상 불심검문 중 범인인 야마다가 체포된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 야마다는 처음엔 단독범행이라 진술했다가 공범이 있고 자신은 강도에만 가담했을 뿐 살인까지 저지른 것은 공범인 규이치라고 초기 진술을 뒤집는다. 야마다를 취조하면서 이시이가 자신에 신병에 비관해 자살하려고 했고 죽기 전에 옛 연인을 만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안 경찰은 이시이가 연인을 만나러 갈 것인지 아닌지로 의견이 나뉘고 결국 수사를 두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시이가 연인을 만나러 갈 것이라 예측했던 유키는 그녀가 규슈에 살고 있는 사다코라는 것을 알아내고 사다코의 집 앞에서 잠복수사를 한다. 계속되는 잠복, 평온한 사다코의 일상, 이시이는 사다코를 만나고 유키는 이시이를 검거할 수 있을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만 저를 꼭 찾아주세요 <귀축> - 1957

열여섯부터 인쇄소 일을 하던 소키치는 스물일곱에 함께 인쇄소에서 더부살이했던 오우메와 결혼하고 합심해 노력한 끝에 서른둘에 작은 인쇄소를 차리게 된다. 처음엔 하청으로 시작했지만 꼼꼼한 일솜씨로 신용을 얻은 소키치의 사업은 번성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소키치는 요릿집 접대부인 기쿠요와 불륜에 빠지고 오우메 사이에서 자식이 없던 그는 기쿠요와 3명의 아이를 낳으며 철저한 이중생활을 한다. 하지만 최신 장비를 가진 대형 인쇄소가 지역에 들어서면서 소키치의 사업은 기울게 되고 생활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기쿠요가 오우메를 찾아오면서 8년간의 두 집 살림이 종결된다. 당신의 아이니 책임지라며 세 아이를 두고 떠나는 기쿠요, 오우메의 등쌀 속에서 세 아이들이 죽거나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데.

 

 

씁쓸하고 다시 생각하기 싫은 내 시골 기자 생활 <투영> - 1957

도쿄에서 신문기자를 하던 다무라는 상사와의 불화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아내 요리코와 무작정 낙향한다. 하지만 금세 퇴직금은 바닥나고 다무라가 취업이 잘되지 않자 요리코가 카바레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무라도 곧 그 지역에서 가장 영세하고 다른 기자들에게 무시 받는 3류지 요도신보에서 일하게 된다. 요도신문은 오직 시정 비리를 캐는데 혈안이 된 신문, 그래서 시의회와 시청의 눈엣가시다. 어느 날 다무라의 취재원 중 한명이었던 미나미가 시체로 발견되고, 다무라는 냄새를 맡는데 이건 특종이다!

 

 

나의 너무 좋은 기억력이 무섭다 <목소리> - 1956

신문사 전화교환원인 도모코는 전화교환원 특유의 직업병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예민한 감각과 좋은 기억력으로 전화 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구별하고 잘 알아챈다. 어느 날 야근하던 도모코는 사회부 기자의 부탁을 받고 전화를 건다. 그러나 도모코는 잘못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약간 장난스럽지만 퉁명하고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는다. 도모코는 잘못 건 번호의 주소를 확인하는데, 다음날 신문에서 자신이 전화를 걸었던 주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고 충격에 휩싸인다. 목격자는 아니지만 범인의 목소리를 들은 도모코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그 얘기가 기사화되었다. 그러나 반년 동안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로 수사가 종결된다. 퇴사 후 결혼하고 전업주부가 된 도모코는 남편 시게오가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계속 일을 구하지 못하다가 약품 관련 상사에 취직했다는 시게오는 다달이 꽤 많은 월급을 받아왔다. 도모코 뿐 아니라 시게오 본인도 정확히 어떤 회사인지 알지 못하고 걸핏하면 집에서 세 명의 회사동료와 마작을 하니 수상하기 짝이 없지만 넉넉하고 꼬박꼬박한 월급에 애써 참는다. 어느 날 세 회사 동료 중 한명의 전화가 걸려오고, 도모코는 그 목소리가 과거 살인사건 범인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는데.

 

 

도쿄에 사는 그녀가 지방신문을 읽는 이유는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 1957

도쿄에 사는 요시코는 도쿄에는 팔지 않는 Y현 K시의 유명신문 고신신문을 구독한다. 구독하면서 며칠치 예전 신문도 구매하길 원하는 요시코, 배달된 지방신문을 매일매일 탐독한다. 그리고 구독한지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원하는 기사를 찾은 그녀는 구독을 중지한다. 문제는 괜히 구독신청과 구독중지시 사유를 적은 것이었다. 고신신문에 연재 중인 [야도전기]란 소설이 재미있을 것 같아 구독하고 소설이 재미없어져서 구독을 중지한다는 것이었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었을 문제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야도전기]의 작가 류지는 수상함을 느끼고 그녀를 찾는다. 요시코가 고신신문을 읽는 이유는 무엇이고 류지는 무엇을 알아차렸던 걸까.

 

 

그와 그녀의 <일 년 반만 기다려> - 1957

전쟁 중엔 남자가 부족했기에 여자들의 취업이 쉬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남자들이 하나둘 돌아오면서 필요 없어진 여직원들은 대량 해고되었다. 여전 졸업 후 바로 입사했던 스무라 사토코 역시 그 희생양 중 한명이었다. 그의 남편 요키치는 남자였지만 중졸이었기 때문에 전후 인력이 넘치게 되면서 경쟁우위가 없어 역시 실직하였다. 재취업에 실패한 요키치는 주부로 눌러앉고, 졸지에 가장이 된 사토코는 새로운 일자리를 여럿 전전하다 에너지개발 붐에 따른 토목경기활황에 주목,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보험을 판다. 사토코의 예상은 적중했다. 일이 위험해 보험의 수요는 많은데 공사장이 오지인 경우가 많아 보험판매원들의 방문이 거의 없어 엄청난 실적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자 요키치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사토코를 질투하며 그녀에게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한다. 참다못한 사토코는 요키치를 죽이고 정당방위인 면이 많고 페미니스트이자 인기 평론가인 다키코의 지지가 더해져 여론은 사토코를 동정하는 일색으로 흐른다. 그런데 사토코의 비밀을 폭로하는 사내가 등장하는데 1년 반만 기다려?

 

 

내가 살기 위해선 스승을 없애야 한다 <카르네아데스의 널> - 1957

패전 후 국가주의적 역사론이 몰락하면서 그 입장에 섰던 수많은 역사학과 교수들이 추방당했다. 오쓰라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애제자였던 구무라는 빠르게 유물론적 사관으로 기조를 바꾸면서 피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처지가 뒤바뀐 그들, 오쓰루는 각종 저술과 강연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는 구무라가 부러워한다. 초라해진 스승에 대한 우쭐함도 잠시 오쓰루는 다시 강단에 서게 되고 구무라처럼 유물사관을 펴는 진보사학자가 되어 구무라의 입지를 위협한다. 또 시대가 바뀌어 좌익사관이 불리해지자 오쓰루는 가장 먼저 우익으로 전향하며 구무라보다 교과서 시장을 선점한다. 바다 한가운데 난파했을 때 한 사람만 붙잡고 있어야 살 수 있는 널빤지를 두 사람이 붙잡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을 밀어내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카르네아데스의 널’ 문제와 같은 구무라와 오쓰루의 관계, 구무라는 결단을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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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초가 표방한 사회파 미스터리는 복잡한 트릭이나 장르적 기교가 없다. 그래서 열심히 머리 굴리며 추리해 짜릿한 쾌감을 얻길 즐기거나 기술적 정교함이나 자극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에겐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사적인 사회문제나 사회구조적 모순을 반영하는 사회파 미스터리는 장르문학을 즐기는 동시의 작품 발표 당시의 시대적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로 상징되는 1950년대 일본 영화산업의 진일보, 전국 개봉하는 영화가 없었다면 계속 연극배우만 했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얼굴]에서 료키치의 범죄는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인쇄소의 흥망성쇠가 담긴 [귀축]의 또 다른 스토리텔링 축은 불륜에 대한 끔찍한 대가로 스스로 자기 아이들을 죽이거나 죽는 것을 봐야 하는 아버지이다. [일년 반만 기다려]나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종전 이후 고용과 학계가 어떻게 급변하는지, 후자의 경우 변화하는 세태에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잠복]이나 [투영], [지방신문을 보는 여자], [목소리]엔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나 일의 방식들이 있는데 내용 자체는 지금 읽어도 세련되고 공감되어 매력적이다.

 

 

당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한 문학들의 강점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로서 소중한 유산이 되는 동시에 역사의 굴레에 의해 현재와 맞닿는 작품의 어떤 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이초는 스토리텔링의 천재였다. 쉼 없이 샘솟는 상상력과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관찰력은 학력도 나이도 콤플렉스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세이초의 수많은 작품들은 한번으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리메이크된다. 그 저력과 매력의 이유는 책을 직접 읽으면 알 수 있다. 분명 1950년대의 풍경을 담은 <잠복>의 단편들은 예스러움이 생동하고 있는데 지금 읽어도 재미와 시사점이 있다. 단편 안에서도 시나리오 씬을 나누듯 장을 나눈다거나([귀축],[목소리]), 시간과 시점이 엇갈린 일기의 토막을 나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용이 전개되는([얼굴]) 등 기법 면에서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또 수사 과정에 대한 묘사나 세밀한 설정과 인용들은 세이초의 방대한 취재량과 풍부한 지식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한편 우리가 외국 장르문학 작품을 볼 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번역이다. 물론 해당 외국어능력은 기본이지만, 장르문학의 번역은 얼마나 학벌이 대단하고 교수 등 프로필이 화려한지는 상관없다. 장르에 대해 잘 이해하고 문장을 쉽고 감칠맛나게 풀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비딕에서 펴내는 ‘세이초월드’ 번역의 대부분을 맡은 김경남의 <잠복> 번역은 퍽 마음에 들었다. 역사전문출판사였고 그 동안 임프린트를 따로 내지 않았던 역사비평사가 모비딕이란 장르문학 전문 임프린트를 만들고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 북스피어와 함께 세이초 선집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의외였고 어떤 결과물들을 낼지 궁금했다. 특히 <잠복>의 경우 모비딕이 독자투자모금(북펀드)을 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만큼 어떨지 무척 기다렸던 책인데 기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한 편 한 편 주옥같고 흥미진진하였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가장 붐이던 시대에 만들어진 세이초 문학의 원형들이 담긴 <잠복>, 이후엔 어떻게 작품들이 발전하는지 계속 세이초를 탐닉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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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여행 - 루벤스의 스페인에서 고갱의 타히티까지
요아힘 레스 지음, 장혜경 옮김, 김소희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예술가의 여행] 화가의 여행에서 엿볼 수 있는 것들

 

 

http://der_insel.blog.me/120160881231

 

여기 열세 명 화가들의 여행기가 있다. 서유럽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고 더러 여행지가 겹치기도 하지만, 국적도 시대도 다른 이들의 여행이다. 시간적으로는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 공간적으로는 멘체스터에서 영국까지 굉장히 광범위하다. 하지만 재주 있는 작가는 재치 있는 문장과 많지 않은 분량으로, 13명을 네 가지 주제로 나눠 우리를 안내한다. 화가의 여행에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주 주제인 미술사적 측면에 있어서 화가의 여행은 후원의 역학관계, 미술 양식의 변화, 화가에 대한 배경 지식 등을 알 수 있고 미술사 연구에서 점점 관심이 높아지는 주제라 한다.

 

 

하지만 어떤 독자에겐 이 책이 탁월한 경제경영서로 보이기도 하고, 정치·사회학 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예술가의 여행>은 독자의 관점과 관심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읽고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그 다양한 면들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한 이 책의 제사처럼 우리가 책 제목을 보고 주로 떠올릴 여행의 낭만이나 여행이 창조적 영감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은 오히려 가장 안 느껴진다. 한편 <예술가의 여행>은 저자가 서문을 완전한 서평 한 편처럼 썼다(다른 이들이 굳이 서평을 쓸 이유를 못 느낄 만큼). 그래서 목차대로 책의 기본 내용을 숙지하려거나 쇼핑 중이라면 다른 정보 찾지 말고 저자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화가의 여행은 서유럽 수공업자의 천명에서부터 출발한다. 장인과 도제로 상징되는 중세 서유럽의 길드 시스템에서 수공업자들에게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공부였다. 대를 이어 장인이 되는 데 있어, 아버지께 전수 받고 거주 지역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타 지역의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의 기술과 융합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화가도 넓은 의미로 보면 일종의 수공업자다. 자본(후원)이 결합하면서 화가의 여행은 도제수업·장인수업 차원을 넘어 규모와 목적이 확장된다. 16세기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브랜드화를 알았다. 단순한 이니셜 모노그램에 불과했지만 작품마다 붙인 AD는 자기 작품의 상품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뒤러의 성공적인 마케팅엔 영리하고 수완 좋은 아내의 역할이 컸다.

 

 

예술과 외교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한 화가도 있었다. 루벤스는 벨기에와 이탈리아·스페인·영국을 돌아다니면서 외교사절로서 충실하면서 귀족들에게 안정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도 할 수 있었다. 왕과 교황의 미묘한 신경전 사이에서 누구도 불쾌하지 않게 현명한 처신을 한 베르니니도 있다. 홀라르의 사례로 보듯 예술가의 외교활동은 정치적으로 왕과 귀족에 가깝게 접근하면서 훌륭한 예술자문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흔히 전쟁은 이동의 자유를 위협한다고만 생각하지만 기회가 되기도 한다. 루벤스나 벨리니, 홀라르의 여행은 전쟁 시기와 맞물려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 비판할 사례들도 있지만, 동방문화 탐방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를 습득하면서 서유럽의 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한 화가들도 있다. 술탄 사망 후 오스만과 벨리니 모두 체류의 증거를 없애려 했을 만큼 위험한 동거였지만, 술탄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밑에서 일하며 오스만 문화와 미니아튀르 회화를 접한 벨리니는 독특한 화풍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살아 있는 고대를 체험하고 싶었던 들라크루아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려 알제리와 모로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판타지를 한껏 탐구했다. 이국과 그 문화에 대한 화가들의 호기심은 에크하우스·메리안·호지스·고갱·놀데처럼 대륙을 뛰어넘어 남태평양이나 남미로 떠나는 것으로 발전한다.

 

 

<예술가의 여행>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류 역사에 있어 화가의 기여에 놀라게 된다. 화가는 신분은 높지 않지만 직업적 특성 때문에 여러모로 특수한 계층이었다. 화가는 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는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기록가였다. 그래서 각종 탐사에 참여 했고 식견이 상당했던 인물도 많다. 싱켈과 호지스는 유럽에 새로운 인종들의 모습을 그려 전했고, 메리안은 곤충 그림을 그리다가 당시 과학자들보다 곤충에 대해 훨씬 정확하게 알았다. 인류가 남극을 발견하는 순간에도 화가가 있었다(호지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하면서 독일에 근대적 박물관이 생기는데 기여했던 싱켈은 영국의 공장 건물을 스케치하며 새 시대의 꿈을 꿨다.

 

 

여성 문제에 있어 미술이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6세기 뒤러의 아내 아그네스가 미술상으로서 능력을 발휘했다면 17세기의 메리안은 직접 화가 활동을 한다. 미술가 집안에선 원한다면 딸도 미술을 배우고 관련 일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척 시대 설탕이 아닌 곤충을 찾는다고 조롱받았고 그녀의 그림책은 여자들의 자수 취미 관련으로 소비되었지만, 메리안은 수리남으로 떠나 화폭 가득 자신이 좋아하는 곤충들의 면면들을 담았다. 18세기의 카우프만의 사정은 더 낫다. 이탈리아에서 볼로냐와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 회원을 거쳐 영국 왕립 미술아카데미 창립 멤버가 된다. 10살 이상 어렸던 난네를이 피아노 잘 치는 소녀로 그쳤던 것과 달리, 카우프만은 자신이 가능한 최선의 상업적 성공을 이루고 화가로서 입지를 세운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들보다 훨씬 이동이 힘들었던 옛날 사람들이 더욱 글로벌하게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니 자괴감이 확 치밀며 골이 난다. 0.5초 만에 역사에 남은 비범한 인물들의 얘기니까 그런다고 합리화해본다. 참고로 <예술가의 여행> 한국판엔 원서에 없는 것이 있다. 감수자인 카이스트 김소희 교수(미술사학 전공)가 각 부가 끝날 때마다 ‘김소희의 예술가 이야기’라는 추가 해설을 달아놓은 것이다. 짧은 글이지만 책에 실린 화가들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맨 뒤에 ‘더 읽어보면 좋은 책’을 적어놓았긴 한데, 전부 독일어 원서라(번역된 책이 하나도 없는 걸까) 많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히사이시 조는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환상을 품지 말라고 했다. 누구나 하는 경험은 인간의 폭을 넓혀주지 않는데, 남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경험하기가 생각 이상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가장 쉽게 단시간에 경험의 양을 늘릴 수 있고 가장 쉽게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평소의 일상과 공부를 통해 배우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사소한 여행 한번에서 얻을 수 있고, 여행을 많이 할수록 시야나 사유가 넓고 깊어진다. <예술가의 여행>은 여행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또 결코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암묵지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이다. ‘화가의’ 여행을 다룬 ‘미술’서적이지만 읽으면서 여행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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